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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ro Dec 29. 2023

이발

잡담

형이 머리를 깎으러 갔다. 동네 오래된 이발관이다. 형은 이 이발관을 십 수년째 다니고 있다. 단골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이발사는 나이가 지긋하신 분이다. 이 분은 또 술을 즐긴다. 그래서 그런지 해가 갈수록 기력이 영 달려 보였다. 그날도 형은 아무 생각 없이 머리를 깎으러 이 이발소에 갔다. 이발소안은 이미 손님 한 분이 머리를 자르고 있었다. 형은 이발사 뒤로 놓인 소파에 앉아 무료함에 앞 손님의 머리 깎는 모습에 눈이 갔다. 형은 오늘따라 이발사가 더 초췌해 보인다고 느껴졌다. 얼굴도 푸석푸석하고 눈동자도 허리멍덩한게 분명 어제도 한 잔 했음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빼빼 마른 체형에 나이보다 더 늙어 보이는 이발사. 그래도 그는 옛날의 이발사의 자부심을 갖고 흰가운을 입은 채 가위질을 하고 있었다. 그런 이발사가 손님의 웃머리를 빗으로 들어 올려 가위질을 하려고 할 때 손이 갑자기 덜컥 부르르 떨리며 머리카락 끝에서 헛 가위질 하는게 형의 눈에 들어왔다. 찰라의 순간이었다. 형은 깜짝 놀랐다. 엉덩이가 소파에서 덜썩거리고 입에서 “이크”라는 소리가 자기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이발사는 자신도 자신의 모습에 흠칫 놀라 형을 쳐다보고 말았다. 둘은 눈이 맞았고 이발사는 멋쩍은 듯 비굴한 미소를 씨익지어보였다. 체형이 왜소해 후줄근한 모습에 흰가운까지 입어 그 모습이 더 초라해 보이는 이발사의 어정쩡한 미소와 덜덜 떨고 있는 손을 보자 형은 그만 머리를 깎아야겠다는 생각이 확 달아나버렸다. 형은 이발사와 눈이 마주친 상태에서 겸연 쩍은 미소로 화답하고 급히 전화가 온 것처럼 통화하는 척하며 이발소를 나왔다. 그리고 그 길로 형은 다시는 그 이발소로 걸음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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