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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ro Dec 26. 2023

흔적

잡담

소작농의 자식이었어요. 민속촌에서나 볼 수 있는 짚으로 지붕을 엮은 초가집이었고요. 아버지는 매일 술에 빠져 주정을 하는 사실상 가장의 능력을 상실한 사람이었지요. 어릴 때부터 땔감부터 시작해 밭농사 논농사를 어머니와 형과 함께 오로지 날 몸으로 버텨냈어요. 시골이다 보니 하루에 버스 몇 대 들어오지 않는 오지 같은 동네였죠. 시내 한 번 나가려면 겨울에는 칼바람을 받아내며 기본이 한 시간여 정도를 버스를 기다려야 했죠. 학교는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12년을 십리길을 걸어 다녔고요. 영화를 좋아했고 시인과 촌장 그리고 동물원의 노래를 들으며 혼자 눈물흘리던 감수성을 가졌고요. 고등학교 졸업 후 구미의 공장에 취직했어요. 삼성코닝이라고 TV브라운 관을 만들어 내는 공장의 3차 협력업체 직원이었고요. 거기서 육 개월 일하고 군에 입대하기 전 집 앞 벌꿀통을 만드는 공장에서 다시 육 개월 정도 일했어요. 그곳에서 인쇄하는 방법도 좀 배웠고요. 그리고 군에 입대했죠. 특전사에서 4년 6개월 하사관으로 근무했어요. 장기복무를 하고 싶었지만 산악무장구보와 천리행군이 부담스러워 전역했어요. 군에서 다쳐서 혼자 수술도 겪었고요. 군의관이 부모님 동의를 얻어야 된다고 했지만 자식이 군에서 다쳐 수술한다는 걸 알면 걱정을 할까 봐 연락 못한다고 했고 결국 동의서에는 제가 자필로 동의한 후 수술받았죠. 제대 후 3년 정도 백수로 놀았어요. 그리고 전문대학교 경찰경호학과에 입학해 1년 공부하고 제적됐어요. 친구에게 카드 사기를 당하는 바람에 학비도 없었고 카드값 변재를 위해 일을 해야 했으니까요. 그 기간 경찰의 억울함으로 유치장에도 있어봤고요. 그렇게 중고자동차 상사에서 차량 관리하는 기사로 최저임금을 받으며 1년 일했어요. 일하면서 퇴근 후 경찰특공대 시험 준비를 위해 운동을 했고요. 퇴근 후 저녁도 먹지 않고 네 다섯 시간씩 했죠. 진눈깨비가 내리는 크리스마스이브날 아무도 없는 운동장에서 혼자 눈비를 맞으며 뛰었어요. 자동차 상사 퇴사 후 은행경비원으로 취직해 4년 일했어요. 경찰특공대시험 응시가 행정상의 이유로 힘들었어졌어요. 자동차 상사까지 5년 동안 일하며 돈 한 푼 안 쓰고 사기당한 카드값 다 변재 했어요. 그리고 경비원 그만두고 119 구조대 시험을 준비했죠. 소방법규와 한국사, 국어를 다시 공부했어요. 최종에서 2번 탈랐했죠. 음주운전 전과가 한 번 있어서요. 젊은 날의 실수죠. 다시 교도관무도 특채 시험을 한 번 쳤어요. 형서소송법과 교정학을 공부했지요. 어머니가 암에 걸려 병시중했고 연이어 아버지가 암에 걸려 병수발 했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형의 도움을 받아 합기도 도장을 운영했어요. 자영업에 소질이 없어 2년 만에 폐업했죠. 그리고 지금 일하는 직장에 시험을 쳐 합격해서 9년째 일하고 있어요. 일을 하면서 뭘 좀 더 배우고 싶어 사이버대학에 입학해 부동산에 대해 공부하다 전과해 문예창작학과 학위 수여했고요. 민법은 부동산 배울 때 조금 공부했고 입사준비하면서 경비지도사시험 응시를 위해 법학개론과 민간경비론과 경호학 공부했고요. 대출 꼈지만 평수 작은 오래된 아파트도 한 채 장만했고요. 아 그리고 권투와 검도 합기도도 좀했고 마라톤도 뛰어봤네요. 군에서는 태권도와 특공무술도 좀 배워봤고요. 스쿠바로 심해 40미터까지 내려가봤고 패러글라이딩과 암벽등반도 해봤어요. 바리스타 자격증도 있네요. 군 생활 중에는 수상인명구조 훈련도 받아봤고 96년 무장간첩 침투사건 때 현장에서 작전 뛰었고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 때 현장에서 인명구조도 했고 동기, 후배, 선배 이렇게 동료 세 명도 잃어봤고요. 읽은 책은 군에 가기 전 읽은 책들 제외하고 제 방에 대략 1천7백 권 정도 있네요. 이게 대충적인 제 삶의 흔적이예요. 물론 누락된 것도 여럿 있갰지만 뭐 대충 이런 경험과 환경에서 자라고 키워온 사고로 이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죠. 제 글을 읽는 분들이 저 사람은 뭔데 이런 생각의 글을 쓸까 이해하는데 좀 도움이 될까 하고 이렇게 치부가 되는 제가 살아온 이력을 대충 설명했네요. 제가 글을 올리면 늘 읽어주시고 라이킷을 눌러주셔서 감사해요. 앞으로 더 좋은 글 쓰도록 노력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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