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Zero Dec 25. 2023

풍경

잡담

음…낭만이라고 할까요. 아무튼 그 시절에는 그런게 있었죠. TV에는 서로 손을 잡고 하얀 입김을 뿜으며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들과 많은 인파로 북적이는 명동 거리에 빨간 냄비를 세워놓고 종을 흔들며 성금을 모금하는 구세군 사람들. 모두들 추운 날씨에 코트의 깃을 세우고 목도리와 장갑을 낀 채 어디로들 그렇게 분주히 걷고 있는지. 상점들의 노랗고 빨간 조명이 유독 따뜻하게 느껴지고 매진 푯말이 붙은 극장 앞에서 표를 구하지 못해 애타게 발을 구르는 젊음과 거리에 흘러나오는 감성의 노래들. 구십 년대의 크리스마스와 연말 분위기는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들뜨게 했죠. 연인이 없는 싱글들에게도, 물론 다음날 눈을 뜨면 별 볼일 없는 하루의 연속이지만 무언가 좋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설렘이 가득했던 그때. 십 대였던 그 시절 여자친구가 없어 항상 집에서 존 맥클레인 형사와 캐빈으로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을 달래야 했던 외로운 시간들 속에 늘 궁금했던  한 가지는 다른 사람들은 모두 이 시간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을까. 그들에게는 어떤 특별한 시간들이 주어져 있을까였어요. 이젠, 혹여나 짝사랑하는 여자에게서 연락이라도 오지 않을까 하는 크리스마스이브의 기대감과 설렘은 젊음과 함께 소리 없이 가버렸고 야간숙직근무를하는 오늘. 아직까지도 나이를 먹지 않은 체 나홀로 집에서 열심히 악당과 사투를 벌이는 캐빈과 나카토미 빌딩과 LA공항에서 테러범들을 상대하는 다이하드의 맥클레인 형사만이 손에쥔 리모컨 버튼에 하염없이 어제의 이야기를 하고있네요.

작가의 이전글 방귀와 달리기의 상관관계 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