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이야기(1994-1998)
보통 마라톤 동호회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은 5km를 25분 정도로 뛴다. 즉 1km당 5분 페이스다. 그 정도 수준이면 중급정도에 든다고 볼 수 있다. 좋은 운동화에 가벼운 기능성 복장으로 평지를 말이다. 하지만 우리 부대는 딱딱하고 무거운 군화를 신고 군장을 맨 후 소총을 들고 5km 산악을 22분에 들어와야 한다. 그냥 기록에 상관없으면 5km가 별 부담이 없다. 하지만 측정이기 때문에 정해진 시간 안에 무조건 들어와야 한다. 그렇기에 5km면 중거리정도라고 볼 수 있는데 그에 상관없이 처음부터 단거리 달리기 하듯 미친 듯이 뛰어야 한다. 산악이다 보니 오르막이 많은데 이때도속도를 늦추지 못한다. 조금이라도 뒤쳐지는 기미가 보이면 인사계와 선임하사 그리고 중사들이 가만두지 않는다. 뒤에서 소총으로 머리를 막 찍으며 두들겨 팬다. 그리고 제 시간 안에 못 들어오면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하고 재 측정을 해야 한다. 그러니 뒤쳐지는 하사들을 선임들이 가만히 놔둘 리가 없다. 사실 웃픈 이야기이지만 선배 중의 한 명은 하사 때 달리던 도중 너무 힘들어 항문이 열린 분도 있다. 좋은 표현으로 항문이 열렸다는 말이지 직설적인 표현으로는 x를 쌌다는 말이다. 이 측정을 일 년에 4번 정도 한다. 10km는 47분이 기준인데 보통 44분이나 45분에 다 들어온다. 한 마디로 죽어라 뛰어야 한다. 내가 제대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무장구보 때문이다. 내가 장거리에 약해서 이게 없었다면 나는 분명 장기 복무를 했을 것이다. 지금도 그 순간만 생각하면 숨이 차고 심장이 헐떡이며 이마에 진땀이 흐른다. 그런데 중사정도의 짬밥이 되면 그 전날 술을 진탕 마시고도 다 기록안에 들어 온다. 딱히 컨디션 조절을 안해도말이다. 그 짬밥이라는 경력의 신기함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