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ero 연대기2-유
아이는 학교 문고실을 매일 드나들었습니다. 한국전래동화를 비롯해 다양한 책들을 읽을 때 아이는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처럼 또 다른 세상에서 보는 신비함 느꼈습니다. 책 속의 세상은 다툼도 없고 욕심도 없었습니다. 아이는 그런 책 속의 세상이 너무 좋아 수업이 끝나면 언제나 문고실로 달려가 책과 함께 현실에서는 가 닿을 수 없는 상상의 세계로 빠지곤 했습니다.
3학년이 된 아이는 위생점검을 위해 목욕을 하고 오라는 선생님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말을 듣지 않은 아이는 팬티만 입은 체 선생님의 명에 따라 각 학년 교실마다 들어가 선후배들 앞에서 창피를 당했습니다. 아이는 여러 또래들의 시선에 어찌할 줄을 몰랐고 그 일로 성격은 더욱 내성적이 되었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 아이는 종종 엄마를 속이고 학교를 가지 않았습니다. 그런 날이면 엄마 눈에 띄지 않는 집 뒤 숲 속에서 하루 종일 시간을 보냈습니다. 누구 하나 말 상대가 되어 줄 수 없는 공간에서 아이는 개미와 이름 모를 곤충들과 함께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학교 수업을 마칠 시간까지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보낸 후 집으로 돌아오곤 했습니다. 아이는 분명 어머니는 모를 거라 믿었지만 성인이 되어서야 과연 그랬을까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내성의 시간은 흘렀습니다. 4학년 무렵 선생님은 아이의 머리에 이가 있다며 스님과 같은 민머리로 머리를 깎아 오라 했습니다. 아이는 조금 짧게는 자르겠지만 민머리는 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선생님은 그럴 거면 학교에 나오지 말라고 했습니다. 아이는 그로부터 학교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아이의 어머니는 아이를 어르고 달랬지만 아이는 요지부동이었습니다. 그렇게 한 달여가 지났습니다. 선생님으로부터 학교에 나와도 된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아이는 다시 학교에 나갔습니다. 그런데 그때부터 수업을 마치면 선생님으로부터 돈 오십 원을 아이를 따로 불러 돈 오십 원을 며칠 동안 따로 받게 되었습니다. 아이는 영문을 몰랐습니다. 하지만 매일 받는 돈으로 과자를 사 먹을 수 있어 그저 좋았습니다. 그렇게 몇 주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아이는 평소 한 마을에 사시는 당숙과 어머니의 이야기를 우연히 듣고 난 후에야 학교에 영향력이 당숙이 어머니와 함께 선생님을 찾아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졸업을 앞둔 소년은 동무들과 선생님을 따라 대구에 자리한 과학관 견학을 가게 되었습니다. 학교에서 버스를 타고 한 시간여를 달려 도착한 시내의 풍경은 소년의 눈에 신기하기만 했습니다. 소년이 살고 있는 시골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기 때문입니다. 버스에서 내린 동무들은 신기한 도시의 모습에 마음이 들떠 장난치고 노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때 선생님이 느닷없이 소년의 따귀를 때렸습니다. 소년은 무슨 영문인지 몰라 얼얼하게 부어오르는 뺨을 어루만지며 눈물을 글썽였습니다. 선생님은 소년의 눈물은 외면한 체 왜 제대로 따라오지 않고 장난이나 치느냐고 아이를 나무랐습니다.
소년은 억울했습니다. 장난은 소년이 친 게 아니라 소년을 앞서가던 말썽꾸러기 친구 몇 명이 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내성적인 성격에 수줍음 많은 소년은 자신의 장난이 아니라는 것을 선생님에게 말하지 못했습니다.
졸업이 다가왔습니다. 소년은 푼푼이 모은 돈을 털어 친구 두 명과 선생님께 드릴 선물을 마련했습니다. 선물은 시장에서 산 목도리였습니다. 글씨가 예쁜 누나에게 부탁해 편지를 써 마음을 담아 정성껏 포장해 드렸습니다. 선생님도 반 아이들에게 자신이 직접 쓴 서예를 족자로 만들어 기념으로 하나씩 주었습니다. 아이는 끝 번호도 아닌데 제일 마지막에 족자를 받았습니다. 선생님은 학급 친구들에게 족자를 나누어 준 후 소년에게 마지막 족자를 전하며, 자신이 실수한 작품이 있어 어쩔 수 없이 그것을 주게 되니 이해를 바란다고 했습니다. 소년은 어머니께 선생님으로부터 받은 족자를 가져다 드렸습니다. 어머니는 선생님에게 받은 선물이라며 무척 좋아하셨습니다. 소년은 어머니의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며 선생님의 실수한 작품을 받아왔노라는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한 사정을 알리 없는 아이의 어머니는 그저 자식이 선생님으로부터 선물을 받았다는 그 자체가 기뻐 족자를 장롱에 넣어 오래도록 소중하게 보관했습니다. 소년은 그렇게 초등학교를 졸업했고 여러 가지 서툰 일들로 가득했던 유년은 잊힌 듯 말없이 지나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