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보안과 노병
봄날의 나른한 오후. 낮잠에 취해 있을 때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그는 군 생활을 같이한 동기로 울산에 근거지를 둔 친구입니다. 그가 잠에 취해 있는 저를 깨운 이유는, 예전 우리가 복무했던 부대 인근에 업무차 들를 일이 있어 부대를 한 번 방문해보려 하는데 위병으로부터 거절을 당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위병에게 부대 출신이라는 것을 이야기해 보라고 했습니다. 친구는 이미 이야기했지만 위병은, 비록 부대 출신이라 하더라도 지금은 민간인 신분이기에 보안상 출입을 시킬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혹시 부대 내 아는 사람이 있으면 출입 가능하니 동기나 선후배 중 아직 근무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름을 가르쳐 달라고 해서 저에게 전화를 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아직 전역하지 않고 장기복무 중인 동기와 알만한 선후배 몇 명의 이름을 이야기해 주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리고 하루가 지난 다음날 그에게 전화를 걸어 어제 부대 방문은 잘 이루어졌는지 물어보았습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에서는 실망이 묻어있었습니다. 제가 알려준 사람들이 훈련 중이거나 전출을 갔다는 이유로 결국 부대 방문을 하지 못한 채 정문에서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면서 말입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듣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젊은 날의 청춘 5년을 목숨을 담보로 피와 땀을 묻고 전역한 노병에게 어찌 이런 문전 박대를 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그러면서 나라를 지켜줘서 고맙고 군인이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라는 것입니까. 저는 이런 그들이 못내 섭섭하면서 또 한 편으로는 그들의 이중성이 가증스러워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비록 부대 출신이기는 하나 이제는 민간인 신분이기에 보안상 부대 방문을 불허한다는 그들의 원칙은 당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친구 역시 사전 허락을 받지 않고 찾아간 것도 분명 잘 못입니다. 하지만 제가 짜증이 나는 것은 “보안상”이라는 그들 부대의 논리적 모순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저는 무엇을 보고 그들의 논리가 모순이라고 비난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이런 모습 때문입니다. 몇 년 전 MBC 방송국에서 “진짜사나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을 제작 방송한 적이 있습니다. 그 프로그램은 유명 연예인들이 실제 군부대를 방문해 며칠 동안 현역 군인들과 함께 각 부대에서 내무생활 및 특징적인 훈련들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전 국민이 시청하기 쉬은 황금시청률 시간대라고 불리는 주말 예능 시간에 방송을 하는 것이고요. 또한 일은 그뿐만이 아닙니다. 국방부는 진짜사나이 외에도 특별한 날 방송국과 신문 등 언론 매체들을 통해 일반부대는 물론 배일에 가려져 있어야 할 특수부대의 훈련 모습들을 수시로 노출시 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TV와 언론매체, 그것도 심지어 예능에 까지 부대시설과 훈련 내용들을 다 보여주면서 다른 사람도 아닌 부대 출신 노병이 자신이 젊음을 바친 곳을 한 번 방문해보고자 했다고 보안상이라는 이유를 들어 그것을 불허한 그들의 논리를 과연 어떻게 납득해야 할까요.
물론 서로가 제일 좋은 방법은 앞에서도 이야기했듯 공식적인 절차를 걸쳐 부대를 방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단체가 아닌 개인이 공식적인 절차를 거쳐 부대 방문을 요청한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하겠습니까. 또 그런 이유로 공식절차를 밟더라도 일개 개인에게 허가가 떨어지기나 하겠습니까. 그리고 친구의 일에서 한 가지 더 화가 나는 것은 위병소의 접객 태도 때문입니다. 위병소에는 분명 책임자급인 위병 장교와 위병 선임하사가 있었을 터인데 입구에서 사병 선에서 일처리를 끝냈다는 것입니다. 최소한 책임자인 위병 장교나 위병 선임하사가 위병소 안으로 안내해 커피라도 한 잔 대접하면서 사정을 이야기를 했더라면 그나마 이해라도 하겠는데 말입니다.
군에서 보안이라는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는 제일 중요 사항입니다. 그렇다 보니 그 보안을 지키기 위해 외부에 부대를 노출시키지 않는 군의 노력은 실로 가상한 것이고요. 하지만 앞에서도 이야기했듯 방송국의 특집 방송과 예능프로등을 통해 전 국민에게 부대의 실상을 여실이 보여주면서 늙은 노병이 자신의 청춘이 서린 곳을 한 번 보고자 했다고 그것을 보안이라는 이유로 거부한 그들의 행동을 저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런 일이 자주 벌어져 부대 업무에 큰 지장을 초래하는 것이라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그들의 대처가 너무 과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만약 그러한 일들로 개인 출입이 불가능한 것이었다면 위병 장교가 차에 태워 부대를 한 바퀴 돌아 나오는 정도였어도 좋았을 것을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