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조체 글쟁이의 삐딱한 세상-꼴통

41. 골프, 갤러리 그리고 정숙

by Zero

주 5일제 근무가 시작되었습니다. 현대인의 일상에는 적지 않은 여유가 생겼습니다. 우리는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들을 알차게 보내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합니다. 늦은 나이에 공부를 시작하는가 하면 여행으로 자아를 찾고자 하는 사람 또는 스포츠 관람을 통해 일상의 스트레스를 털어버리려 고군분투하는 것입니다.


​여가 시간의 활용은 과거 각자의 취향에 따라 제각각이었습니다. 그중 80년대 프로야구 개막은 많은 사람들을 운동 경기 관람으로 끌어들였습니다. 사람들은 TV앞에 모여 저마다 야구라는 스포츠의 묘미에 푹 빠져들었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스포츠 관람에 대한 시민들의 욕구는 야구만으로는 부족했습니다. 더 많은 스포츠를 통해 인간 승리의 환희를 느끼고 싶었던 것입니다.


​ 그 욕구 충족은 70년대 경제개발의 성과로 이루어진 86 아시안 게임과 88 올림픽이었습니다. 그리고 90년대 후반 한국 선수들의 해외진출로 메이저리그와 월드컵을 비롯해 LPGA 골프가 국내에 중계되며 그 절정을 맞이하게 됩니다.


​ 우리나라 80년대의 스포츠관람은 당연 야구가 으뜸이었습니다. 추석이나 설날에 펼쳐진 천하장사 씨름이나 겨울의 농구와 배구도 만만치 않았지만 역시 야구를 능가할 수는 없었습니다. 간혹 한일전의 축구 경기가 있을 때는 전 국민이 열광하기는 했지만 그건 한일전이라는 특수 상황의 경기일 뿐이었고 골프 또한 그때까지는 일반 서민들에게는 그저 접근 불가능한 생소한 운동일 뿐이었던 것입니다.


​ 골프는 이처럼 당시만 해도 가진 자들, 즉 부유층의 전유물이었습니다. 하지만 98년 박세리가 해저드에 빠진 공을 쳐내기 위해 양말을 벗고 물에 들어가 한국인 최초로 LPGA우승을 거머쥐는 게 TV로 전 국민에게 중계되며 대중과 가까워지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평소 자신이 접근할 수 없었던 골프가 이렇게 다가오자 그 재미를 좀 더 만끽하기 위해 야구나 축구처럼 유명선수의 경기장을 직접 찾기까지 했습니다.


​ 야구나 축구 같은 스포츠는 경기를 보기 위해서 운동장을 직접 찾은 사람들을 관중이라 부릅니다. 하지만 골프에서는 그들을 관중이 아닌 갤러리라 칭합니다. 이 갤러리라는 말의 근원에는 여러 설이 있었습니다. 그중 하나는, 예전 귀족들과 부유층들만이 감상할 수 있었던 미술품 관람에서 유래됐다는 것으로 미술관에서 작품에 손을 대지 못하게 하기 위해 로프를 설치해 줄 바깥에서 감상시키던 것과 비슷해 그렇다는 것입니다.


​ 아무튼 골프 관중을 갤러리라 칭하는 용어의 유래가 이러하듯, 골프 경기 관람에서도 갤러리들에게 요구되는 엄격한 무언의 약속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선수가 샷을 날릴 때 미술관에서처럼 정숙을 유지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골프라는 운동이 넓은 필드에서 작은 홀에 공을 넣어야 하는 하는 것인 만큼 예민한 소리 하나라도 선수의 집중력을 흩트려 놓아 경기력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 그런데 저는 바로 이 대목에서 골프라는 운동에 적잖은 반감을 가지게 됩니다. 왜냐하면 운동이라는 것은 어떠한 환경에서도 선수의 정신력으로 그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관중을 받아들인 운동에서 관중의 직접적인 경기 방해가 아닌 이상 어떤 이유에서든 관중을 탓하는 것은 진정한 프로라고 볼 수 없기 때문에 말이죠.


​ 그런데 골프는 갤러리의 응원이나 야유, 또는 작은 소란스러움으로 제대로 경기를 펼치지 못했을 때는 선수들이 그 책임을 갤러리에게로 돌리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갤러리의 비 매너로 경기에 제대로 집중을 못해 실수를 했다면서 말입니다.


​ 물론 유럽 축구에서 가끔 보이는, 관중이 그라운드로 뛰어 들어가 경기를 방해하는 것과 같은 행동은 당연히 관중의 문제가 맞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런 류의 방해가 아닌 단순히 샷이나 퍼팅을 할 때 관중이 조금 어수선하게 한다는 이유만으로 갤러리를 탓한다면 무관중 경기가 아닌 관중 경기인 이상 그것은 부당하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 야구의 월드시리즈 결승전이나 축구의 월드컵 결승전 같은 것을 보십시오. 월드시리즈 결승전에 승패가 걸린 결정적인 순간의 투수나 타자, 또 월드컵 결승전에서의 공격수들이나 수비수, 골키퍼. 그들 또한 경기의 무게로 볼 때 극도로 예민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던지는 공 하나하나에 희비가 엇갈리고 골문 앞에서의 결정적인 순간에 팀의 운명이 자신의 손과 발끝에 달려 있는 상황이니 그 긴장이 오죽하겠습니까.


하지만 그들은 관중의 야유와 함성 그리고 여러 가지 신경에 거슬리는 상황을 오로지 정신력으로 버티며 게임에 임합니다. 자신이 경기장 분위기에 좌우되어 실수를 했다고 관중 탓을 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이는 관중을 입장시켜 경기를 펼치는 대부분의 다른 운동들도 비슷합니다. 그게 관중을 입장시켜 경기를 치러는 운동선수의 진정한 자세라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 비근한 예로 예전에 올림픽에 출전하는 우리나라 양궁 선수들이 관중들에게 받을 수 있는 정신적 대미지를 극복하기 위해 수만 명이 운집한 야구장에서 훈련을 했다는 일화가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그들은 왜 그렇게까지 하며 훈련을 했단 말입니까.


​ 운동 경기는 육체를 쓰는 격렬한 동작들로 거칠어 보이지민 섬세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다 보니 인간이 하는 일이니 만큼 결정적인 순간 주위의 작은 변화 하나에도 정신력이 흔들려 승패가 뒤바뀌는 일이 자주 발생합니다. 이는 운동경기에 있어 주위의 환경이 선수의 심리에 미치는 영향이 그만큼 크다는 것입니다. 특히 관중들이 운집해 자신만을 보고 있는 경우라면 더 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고 말이죠.


​ 그러나 골프 같은 경우, 자칭 프로라는 선수들이 갤러리의 조금 신경에 거슬리는 행동으로 제대로 된 경기력을 펼치지 못했다며 자신의 부족한 정신력이 아닌 갤러리 탓으로 돌리는 것은, 엄청난 부와 명예를 거머쥐는 프로페셔널 운동선수로서의 자세라고 하기에는 분명 문제가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2021. 4.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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