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조체 글쟁이의 삐딱한 세상-꼴통

2. 여의도 면적과 해군함

by Zero

번역은 또 다른 창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국의 낯선 언어를 자신의 나라 사람들, 그것도 불특정 다수들이 이해하기 쉬운 말들로 바꾸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말입니다.



타국의 언어는 태생적으로 생소할 수밖에 없습니다. 삶의 방식이 다르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번역은 이와 같은 다른 나라의 생활에 깃든 언어를 우리가 알기 쉬운 우리의 말들로 바꾸는 것입니다. 그렇다 보니 그 일은 결코 쉬울 수 없습니다. 원작의 문장에 담긴 미세한 감정들을 손상시키지 않고 누구나 알 수 있는 적합한 언어들로 바꾸어야 하니까 말이죠.



태풍 마이삭과 하이선이 국토를 초토화시켰습니다. 많은 양의 비도 문제였지만 이번 태풍은 바람에 의한 피해가 제일 컸습니다. 방송국들은 저마다 앞 다투어 태풍의 경로와 피해 상황을 특보로 보도했습니다. 기상캐스터들은 바람의 강도가 초속 40m의 아주 강한 바람이니 각자의 안전과 주변 시설물에 대한 피해가 없도록 철저한 주의를 요한다는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습니다.



저는 기상캐스터의 당부를 들으며 한 가지 궁금증이 일었습니다. 그것은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드는 궁금증으로, 바로 초속 40m라는 바람의 세기가 과연 어느 정도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행히도 저의 이 의문은 이번 태풍 보도에서 조금은 해소될 수 있었습니다. 방송국에서 초속 40m는 시속으로 계산하면 130km로 달리는 자동차 위에 사람이 서있는 세기라고 알려 준 것입니다. 저는 그때서야 초속이라는 바람 세기에 대한 궁금증이 풀리며 태풍 마이삭의 강도가 실로 엄청난 것임을 실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TV 뉴스를 시청하다 보면 이번 태풍의 바람의 세기와 비슷하게 산불이나 태풍, 홍수와 같은 자연재해가 일어났을 때 그 규모를 설명하기 위해 “여의도 면적의 몇 배”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됩니다. 이는 시청자들이 피해 상황의 규모를 좀 더 구체적이고 정확히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배려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런 말을 들을 때면 피해 상황은 더욱 모호해져 버리고 맙니다. 그 말로는 피해 규모가 어느 정도 인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말하는 여의도의 면적을 제가 잘 알고 있지 못하기에 말입니다.



저는 여의도 면적이 언제부터 뉴스를 통해 사건사고가 일어난 피해규모를 비교하는 말이 되었는지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제 기억 아주 깊은 곳에 그 말이 담겨 있는 걸 보면 확실히 오래된 것임만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여의도는 서울이 지금과 같이 개발되기 전 한강에 있는 하나의 작은 섬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섬은 서울시의 개발사업으로 육지와 연결되며 이제는 실질적인 섬으로서의 지위를 상실해 버렸습니다.



그렇다면 요즘, 예전의 섬이었던 그 여의도의 면적을 구체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요. 아마 모르긴 몰라도 그 수가 그리 많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러함은 해군의 군함이나 어선등 선박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아나운서들은 군함과 선박의 크기를 설명할 때 이지스 급이니 세종대왕 급이니 또는 몇 톤 급이니라고 줄기차게 언급합니다. 하지만 그 급이나 톤이라는 게 도대체 어느 정도의 규모를 말하는 건지, 그쪽 일에 관련된 관계자가 아닌 일반인의 우리로서는 그 말을 듣고 군함의 구체적 크기를 도무지 가늠할 수 없습니다.



뉴스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질 때마다 그 사건의 규모를 설명하기 위해 앞에서 언급한 여의도 면적과 해군함처럼 항상 특정 대상을 비교 언급합니다. 그것은 언어에는 각자의 경험에 따라 대상의 사실에 대한 이해의 많은 차이가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특정 대상을 지정 비교해 줌으로 개별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오차를 줄여 조금이라도 더 사건을 정확하게 전달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비교의 대상이 듣는 이의 머릿속에 그 개념이 전혀 잡혀있지 않다면 그것이 비교 대상으로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비교”라는 방법은 우리에게 아주 유용합니다. 누구나 어떤 일들이 안개에 싸인 것처럼 모호할 때 누군가 자신이 알고 있는 주변의 사물이나 개념들을 비교 대상으로 삼아주면 머릿속이 명쾌하고 또렷해지니 말입니다. 하지만 그 비교 대상이 듣는 이가 모르는 것이라면 아무런 의미도 또 아무런 가치도 없는 일이라고 밖에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뉴스에서의 비교는 다른 나라의 작품 속 언어를 우리나라의 언어로 바꾸는 번역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독자가 제대로 알 수 없는 타국의 대상을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게끔 대중적인 언어로 바꾸는 번역 작업 말입니다. 이를 볼 때 여의도 면적이나 해군함, 그리고 어선등과 같은 선박의 규모를 급과 톤 수를 사용해 사건사고의 비교 대상으로 삼은 것은 당시로서는 낯선 외국 작품을 우리말로 쉽게 풀어놓은 번역처럼 아주 유용한 행위였음이 분명할 것이었습니다. 피해 규모나 군함과 어선등 선박의크기에 대해 감을 잡을 수 없었던 시청자들이 여의도와 해군함을 떠올리며 한 층 이해가 쉬워졌을 테니 말입니다.



하지만 한 번 번역되었던 많은 고전들이 끊임없이 다시 번역되는 건, 작품 속 문화와 정서들이 시대와 시간에 따라 조금씩 차이를 보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번역가는 그 시대에 맞는 문장을 찾아 치열하게 새로운 번역본을 내어 놓는 것일 테고 말입니다.



그러니 이처럼 하나의 작품에도 낡은 번역이 사장되고 새로운 번역이 계속 이루어지듯 여의도 면적과 해군함의 비교 역시 이제는 그 운명을 다한 것이 아닐까 저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구시대의 번역이 물러가고 새 시대의 번역이 계속 생산돼 듯 이제는 방송국의 피해면적과 선박의 비교 대상 역시 현세대의 정서에 맞는 새로운 것으로 바뀌어야 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2020. 1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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