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조체 글쟁이의 삐딱한 세상-꼴통

31. 팁

by Zero

세계가 하나로 엮이면서 서로의 문화가 혼합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각 나라만의 고유한 영역이었던 삶의 방식들이 급속히 허물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함에 발맞춰 우리는 해외여행을 떠나기 전 그 나라의 특별한 풍습들이 어떠한 것이 있는지를 먼저 살피는 습성이 생겼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와 다른 삶의 방식을 가진 그들에게 혹여나 실수를 저질러 누를 끼치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에서 말입니다.



중국이나 동남아등 아시아권 여행은 나라들의 경제 수준 차이로 유럽이나 미주보다 비용이 저렴해서 우리나라 사람이 자주 찾는 곳입니다. 그런데 인건비와 물건 값등 이 동남아시아의 경제 사정이 전후 70년대의 우리나라 모습과 비슷해, 그 시절 빈곤의 아픔을 겪어야 했던 우리 부모세대들이 여행 중 무분별한 팁을 뿌려 그 지역 시장 질서가 혼탁해지고 말았습니다.



동남아시아 시장을 혼탁하게 만든 이 대표적인 팁 문화는 원래 서구권에서 이루어지던 관행으로 아시아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세계가 하나로 엮이고 문화가 섞이며 우리 아시아권까지 파고들어 즐거워야 할 여행이 한순간 불쾌해지는 일까지 벌어지고 만 것입니다.



여러분도 대충 알고 있듯 서구에서는 호텔이나 음식점 등에서 종업원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팁을 지급합니다. 이때 손님이 종업원에게 지불하는 팁은 음식점 같은 경우 보통 음식값의 10% 정도를 적정선으로 본다고 합니다. 그런데 동남아 같은 경우, 정 많고 마음 약한 우리나라 사람들이 차마 그런 적은 금액을 줄 수는 없어 늘 적정선보다 많은 팁을 지급함으로 아런 불편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팁은 원래 앞에서도 언급했듯 아시아에서는 존재치 않던, 미국이나 유럽 등 서구권에서나 있던 관행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세계 어느 곳을 가더라도 이 팁을 지급하는 것이 당연한 하나의 절차가 되어 버렸습니다.



팁이라는 용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시중을 드는 사람에게 고맙다는 뜻으로 일정한 대금 이외에 더 주는 돈”이라고 정의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런 고마움에 대한 선의가 바탕이 된 자의적인 팁이 마치 당연한 기본권처럼 요구되는 현재의 모습을 볼 때마다 제 경제 상식으로는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럼 저는 왜 이 팁이라는 문화를 납득하기 힘들다고 하는 것일까요. 그 이유에 대해서는 미국이나 유럽의 어느 한 호텔에 투숙할 때를 가정해 설명해 보겠습니다. 이는 제가 아주 오래전부터 생각해 왔던 것입니다.



먼저 제가 호텔에 도착하면 도어맨과 벨보이가 문을 열어주고 짐을 객실까지 옮겨줍니다. 그리고 제가 며칠을 머물게 되면 하우스키퍼가 방을 청소하게 되는데 이럴 때 역시 관례적으로 팁이라는 것을 줍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 번 따져보겠습니다. 도어맨, 벨보이, 하우스키퍼들은 당연히 그 일들을 하라고 호텔 측에서 고용해 급여를 주고 일을 시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그들 자신이 호텔 측으로부터 급여를 받는 것은 고객에 대하여 그와 같은 노동력을 제공하기 때문이라는 말입니다. 그들이 고용주로부터 급여를 받지 않고 자영업 개념으로 호텔 측에 보증금을 걸고 영업권을 획득해 급여없이 팁만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그렇지 않고 급여를 받는 이유인 이와 같은, 노동자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해놓고 다시 고객에게 봉사를 해줬다며 금전을 받는다면 도대체 그들은 호텔 측으로부터 왜 급여를 받고 있다는 말입니까.



쉬운 이해를 위해 우리나라 분식집의 홀 서빙하시는 종업원을 예로 들어 다시 한번 설명해 보겠습니다. 우선 분식집주인은 손님들이 올 경우 주방에서 나오는 김밥이나 떡볶이, 라면 등을 손님 테이블로 가져다주기 위한 인력이 필요해 종업원을 채용하고 급여를 줍니다. 다시 말해 분식집에서 홀서빙을 하는 종업원은 김밥, 떡볶이, 라면 같은 음식들을 손님에게 날라다 주기 위해 식당주인에게 채용되었고 그 품팔이의 대가로 식당주인에게 급여를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주인으로부터 급여를 받는, 김밥, 떡볶이, 라면 등을 손님 테이블에 가져다주어야 할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을 해 놓고 손님으로부터 음식을 날라다 주었으니 팁을 내놓으라고 한다면 이 얼마나 황당스럽지 않겠습니까.



친한 동생과 몇 년 전 미국 여행을 한 적이 있습니다. 열흘 정도의 일정이다 보니 타국 음식에 지친 저희는 고국 음식이 적잖이 그리웠습니다. 그러다 마침 마지막 날 숙소가 한인 타운인지라 감칠맛 나는 찌개를 먹고 싶어 우리는 한국인이 경영하는 한 식당을 찾았습니다. 식당은 테이블 3개 정도가 놓인 작은 공간으로 저희는 자리를 잡고 김치찌개 2인분을 메뉴판에서 찾아 주문했습니다. 때를 넘긴 시간이라 그런지 우리의 음식은 곧장 나왔습니다. 이때 사장으로 보이는 여성 한 분이 우리 테이블과 불과 1미터 남짓한 거리의 주방에서 나온 찌개를 식탁으로 가져다주었습니다.



오래간만에 맛보는 고국 음식에 기분 좋게 식사를 마친 저희는 음식값을 치르려고 카운터로 갔습니다. 그러자 음식을 날라다 준 여성이 계산을 하며 팁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저희는, 팁은 선택인데 왜 꼭 의무처럼 지불해야 되는지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여성은 “미국여행이 처음이신가 본데 여기는 팁이 당연한 거다”라고 대꾸하며 우리의 말에 응수했습니다. 저는 “당신이 착각하는 모양인데 팁은 종업원이 자신의 기본업무보다 더 많은 노동력을 제공했을 시 그 노고에 따른 고마움의 표시로 고객이 지급하는 선택 사항이지 결코 의무가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덧붙여, 당신이 오늘 우리에게 1미터도 안 되는 거리에서, 당연히 해야 할 음식을 가져다준 것 외에 어떤 노력을 더했는지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여성은 그 말에 아무런 답변도 없이 그저 여기는 팁이 기본이라는 말만 되풀이했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건 여행을 하는 내내 현지인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식사를 했을 때는 그 누구도 우리에게 팁을 강요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호텔이 되었건 식당이 되었건 자신이 받는 급여의 노동력보다 더 많은 노력을 쏟아주면 고객으로서는 여간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팁은 그 노력에 대한 고객의 작은 보답입니다. 하지만 팁은 분명 선택이지 의무가 아니지 않습니까. 왜냐하면 회사는 종업원들에게 지급해야 할 인건비를 이미 방값이나 음식 값에 포함시켜 소비자 가격으로 책정해 놓았을 것이기 때문에 말입니다. 그리고 그 판매금으로 종업원은 회사로부터 급여를 받게 되는 것이고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업원들의 노동력에 대한 대가는 이미 고객이 지불한 것인데 다시 고객으로부터 봉사료라며 팁을 내놓으라는 것은, 회사 측으로부터 임금을 받지 않는 프리랜서라면 모를까 그렇지 않은 이상 이는 엄연한 이중 착취로 이제는 마땅히 사라져야 할 불합리가 아닐까라고 저는 생각하는 것입니다. 최초 이 팁이라는게 미국이나 유럽 등 서구권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 무슨 이유로 만들어져 정착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지금의 시대에는 분명 맞지 않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2020. 1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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