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거짓말과 결혼
저는 40대 후반입니다. 조금만 있으면 곧 오십입니다. 그러나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습니다. 미혼인 것입니다. 어릴 적 가정형편이 좋지 않다 보니 제 아내와 자식에게 그러함들을 똑같이 겪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결혼이라는 것을 포기했습니다. 저 혼자만 감당하면 끝날 고통을 제 욕심을 채우고자 처와 자식에게 대물림 할 수는 없기 때문에 말입니다.
일부 주변인들 대부분은 저의 이런 생각과 판단이 잘 못 되었다고 말합니다. 저는 그들에게 무엇이 잘 못 된 것인지를 물어보았습니다. 그러면 그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똑같은 말을 합니다. 비록 지금 경제적으로 힘들더라도 가정을 꾸리게 되면 다 살아가게 되어있다고 말이지요.
그러면 저는 그들에게 또 이런 반론을 펼칩니다. “맞습니다. 당신의 말처럼 어떻게든 살아는 갈 것입니다. 전쟁 중에도 죽지 않는 한 결혼을 하고 애를 낳고 부모 봉양하며 살아가지 않습니까. 그런데 문제는 그 삶의 질이라는 것 아니겠습니까”라고 말이죠.
저는 또 그들에게 이런 말도 합니다. 지금 저에게 한 20억 원 정도만 준다면 당장 결혼 할 수 있다고. 그러면 그들은 격하게 당황들 하죠. 그러면 저는 한 발 물러나, 혹시 제가 당신 말을 듣고 결혼을 했는데 삶이 힘들어 돈을 몇 억 빌려 달라고 하면 빌려 줄 거냐고. 제가 결혼을 해서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에 처하면 당신들은 저에게 아무 도움도 줄 수 없고 그 고통은 오롯이 제가 짊어져야 하는데 그런 무책임한 말을 하지 말라고. 그러면 그들은 더 이상 저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물론 그들의 그러한 관심이 저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제가 모르는 바는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사람으로 이 세상에 나왔으니 무조건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아야 한다는 그들의 논리를 긍정할 수는 없습니다. 인간으로 태어났으면 당연히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아야 한다고들 말하는데 왜 결혼과 출산이라는 행위는 인간이기에 꼭 해야만 한다는 것입니까.
며칠 전 텔레비전을 통해 서민들의 소소한 일상을 담은 프로그램 한 편을 보았습니다. 그게 예전에 방영된 재방송인지 본방송인 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그건 차치하고 일단 프로그램은 일흔에 가까운 시골 부부의 이야기였습니다. 남편은 늦은 나이에 레저스포츠에 빠져 수상보트, 제트스키, 동력 페러글라이딩을 하면서 즐겁게 노년을 보내는 모습이 카메라에 담겼습니다. 반면 아내 되는 분은 고추를 따고 씨 마늘을 까고 이것저것 농사일을 하느라 쉴 틈이 없어 보였습니다. 아내는 일은 등한시 한 체 자신의 시간을 즐기는 남편을 보며 답답하다는 듯 젊은 시절을 회상했는데 그때, 자신에게 시집오면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게 하겠다고 했으면서 지금까지 이렇게 힘든 농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한숨 지었습니다. 그 말을 옆에서 듣고 있던 남편은 마차 전장에서 승리를 거두고 돌아오는 장군처럼, 그런 말로 지금의 아내 되는 사람을 설득해(저속한 말로는 “꼬셨다”)결혼을 했다면서 아주 자랑스러워했습니다. 저는 그런 남편의 모습을 보며 참 어이가 없었습니다. 그까짓 결혼이 뭐길래 거짓말까지 해가며 결혼을 해야 된다는 말입니까. 사실 정도의 차이일 뿐 엄밀히 말하면 그게 요즘 우리 사회의 골칫거리인 보이스피싱과 같은 사기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누구에게는 한평생의 인생이 달린 일인데 그것을 마치 전장에서의 공훈으로 훈장을 받은 것처럼 대단한 사람인 마냥 자랑스럽게 말하다니요.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 사람들은 결혼을 하기 위해 배우자가 되는 사람에게 약간의 거짓말을 해서 마음을 얻은 것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합니다. 또 결혼을 못한 주변 사람들이 있으면 그들에게 거짓말이라도 해서 여자의 마음을 얻어 결혼을 하라는 조언까지 해주고 말입니다. 다들 그렇게 하는 거라면서요. 하지만 저는 인간이라는 이유로 결혼이라는 것을 하기 위해 그렇게까지 해야 한다는 것을 제 가치관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렇게까지 해서라도 인간의 자격을 얻고 싶지도 않고요. 그래서 전 그냥 이렇게 살렵니다. 결혼하지 않고 처자식 없이 남은 생을 혼자서 그냥저냥 하게 말입니다.
물론 부모, 형제자매등 가족들이 다 떠나고 난 후의 외로움과 처자식이 없어 노년에 병이라도 얻어 몸이 아프거나 힘들 때 혼자 감당해야 될 그 무게의 무서움을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앞에서도 이야기했듯 그런 이유로, 저 좀 덜 외롭고 편하고자 거짓말까지 해가면서 저는 그렇게 결혼하고 싶지는 않다는 말입니다. 결코.
2022. 10.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