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조체 글쟁이의 삐딱한 세상-꼴통

38. 교통위반과 거증책임

by Zero

“삐~~ 익”


“충성! 신호위반 하셨습니다. 차를 갓길로 빼시고 면허증 제시해 주십시오”


“네? 저는 정상적인 신호에 통과했는데요”


“황색불에 교차로 진입하셨습니다. 위반이 맞습니다”


“아니에요~교차로 진입 후 황색불로 바뀌었는데요”


“제가 봤을 때 분명 황색불로 바뀌고 나서 들어오셨습니다”


“.......”



요즘은 블랙박스가 있어 분쟁의 소지가 줄었지만 예전에는 교통위반 시 경찰과의 다툼이 잦았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앞의 상황처럼 황색불에 진입했느냐 안 했느냐의 실랑이를 들 수 있겠습니다. 우리나라 도로교통법에는 교차로 진입 후 황색불로 신호등이 바뀌었다면 신속히 교차로를 벗어나라고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공권력을 가진 경찰로부터 신호위반 단속을 당하게 되면 설령 내가 교차로에 진입하고 나서 황색불로 바뀌었다 하더라도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오래전 교정직 채용 시험을 준비하며 형사소송법을 공부한 적이 있습니다. 형사소송법은 우리나라의 형사사건 송사의 진행에 관한 법입니다. 즉 형사소송의 절차를 다룬 절차법으로 그 법에는 무죄추정의 원칙과 법정증거주의 그리고 거증책임이라는 게 있었습니다. 이는 쉽게 말해 판사가 법정에서 유죄를 확정하기 전까지는 명백한 범죄자라 해도 일단 무죄로 본다는 것과 유죄를 판단할 시에는 그 입증 책임을 법정에서 죄가 있다고 주장하는 쪽이 객관적 증거로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쉽게 말해, 범죄자로 지목된 사람은 일단 무죄이고 그의 죄를 묻기 위한 거증책임(죄가 있다고 지목한 사람의 죄를 입증해야하는 책임)은 형벌을 주장하는 측에서 객관적인 증거로서 증명해야 한다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형사소송법을 도로교통법 단속에 적용시키보면, 일단 무죄추정의 원칙에 의해 단속당한 자는 무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위반을 주장하는 경찰 측이 영상이나 사진 등의 객관적 증거를 이용해 단속당한 자의 위반을 입증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우리의 도로교통법 위반 처벌은 형사소송법에 나와 있는 이 세 가지 원칙이 항상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무죄추정의 원칙도 법정 증거주의에 의한 거증책임도 모두 당한 자가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는 증거를 찾아서 증명해야 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 무죄인 사람에게 당신의 무죄를 당신이 증거를 찾아 입증하라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지금까지 당연시되어왔던 것이라는 말입니다.



공권력은 항상 시민들보다 우위에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시민들은 공권력을 가진 그들이 “그랬다”라고 주장하면 아무리 억울해도 방법이 없습니다. 그렇다 보니 교통위반에 있어 경찰이 “했다”라고 말하면 비록 형사소송법에 무죄추정의 원칙과 법정증거주의 그리고 거증책임의 원칙이 명확하게 명시되어 있어도 진실과는 상관없이 당연히 위법을 한 것이 되었던 것입니다.



경찰도 한 인간에 불과합니다. 그들도 신이 아니기에 실수를 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은 신호위반을 했다고 말하는 그들도 잘못된 판단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전의 사회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경찰이 오류를 범했을 수도 있지만 그들의 말은 어떠한 반박도 통하지 않는 불가침의 영역이었던 것입니다.



형사소송법에 명시된 원칙들이 도로교통법 위반 처리에 있어 공히 같이 적용되는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형사사건이건 민사사건이건 우리 사회는 죄가 있고 잘못이 있다고 소를 제기하는 쪽이 증거로서 자신의 주장의 정당함을 입증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일 아닐까요. 그래서 형사사건에서는 검사가 또 민사사건에서는 원고가 그 책임을 지는 것이고요. 그러니까 공공의 잘못을 다투는 이 도로교통법 위반과 같은 경우도 분명 위반을 했다고 주장하는 경찰측에서 말이 아닌 객관적 증거로 그 입증책임을 다해야하는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는 일인 것일테고 말입니다.


2021. 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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