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조체 글쟁이의 삐딱한 세상-꼴통

105. 감사히 먹겠습니다

by Zero

1994년 2월 22일 오후 2시. 머리를 짧게 깎은 청춘들이 하나 둘 모 부대 앞으로 모여들었다. 그들은 곧 부대에서 나온 책임자에 의해 가족과 형제, 애인과 작별을 하고 부대 안으로 모습을 감췄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이들은 연병장에서 신병 교육을 책임질 교관에 의해 서른 남짓한 인원이 한 내무반으로 묶이며 입교에 따른 절차를 밟았다.



입교 절차는 약 4시간 여 만에 대충 마무리되었다. 낯 선 막사에서 대기하고 있던 예비 훈련병들은 저녁이 되자 각 구대를 책임지는 내무반장의 인솔로 식당에 들어가 군대에서의 첫 식사를 했다.



식판에 짬밥을 받아 식탁에 앉자 내무반장은 밥을 먹기 전 “감사히 먹겠습니다”라는 구령을 복창하라고 했다. 우리는 영문도 모른 체 내무반장의 지시에 따라 “감사히 먹겠습니다”라는 말을 복창했다. 그렇게 우리가 내 지르는 복창을 듣고 나서야 내무반장은 선심 쓰듯 밥을 먹어도 좋다고 했다. 우리는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첫날의 긴장으로 주린 배를 채우려 허겁지겁 밥 알들을 입속으로 쓸어 넣었다.



사실 나는 당시, 밥을 먹을 때마다 외쳐대는 감사히 먹겠습니다의 이 “감사”가 도대체 무엇에, 누구에 대한 감사라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며칠 뒤 들은 얘기로는 우리가 밥 먹기 전 외쳤던 “감사히 먹겠습니다”의 “감사” 대상이 국민들이라는 것을 알았다. 우리가 군 생활을 하는 동안 국민들이 낸 세금으로 밥을 먹으니 그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매번 식판에 3찬의 반찬과 푸석푸석한 정부미에 보리가 섞인 짬밥을 받아 놓고 먹기 전 “감사히 먹겠습니다”라는 감사의 마음을 표현해야 했던 것이다.



그런데 군 생활을 마치고 제대한 후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때의 “감사히 먹겠습니다”라는 말은 참으로 말이 안 되는 말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의지에 반해 군에 끌려가 자유를 빼앗긴 채 한 창인 나이에 청춘의 3년을 손해 보는 것도 모자라 혹한기와 혹서기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면서 경계근무를 서는 것은 물론 부상과 죽음을 무릅쓰고 훈련을 받으며 국민을 지켜주고 있는 것은 청춘을 담보로 군생활을 하는 군인들인데 그들이 국민들로부터 감사하다는 말과 떡갈비와 신선로 같은 진수성찬을 받아도 시원찮을 판에 되려 먹을 게 없어 겨우 먹는 맛도 없는 알량한 짬밥 좀 준다고 감사하다고 말하라니 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이란 말인가.



국민의 세금으로 공짜 밥을 먹는 것은 분명 감사할 일이기는 하겠다. 하지만 군인이라는 3년의 희생은 그 국민의 희생이라고 생각하는 밥값보다 더 크다.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 던지는 게 무슨 대수이겠냐 만은 자신들의 희생이 더 큰데도 오히려 희생이 적은 사람들에게 감사하다고 말하라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아마 우리는 제도에 길들여져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이런 부조리함들을 세상 곳곳에서 겪고 있을 것이다. 지금 오늘날 군에 입대해 훈련을 받는 군인들이 아직까지도 밥을 먹기 전 이 “감사히 먹겠습니다”라는 구호의 외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그렇다면 이제는 이런 관습은 폐기해 버려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감사를 받아야 할 사람은 인생의 황금기를 반납하고 힘겹게 군 생활을 하며 국민의 평안한 지켜주고 있는 그들이기 때문에 말이다.


ps-나는 군 생활중 훈련과 작전을 뛰며 동기와 선 후배 등 4명의 동료를 먼저 하늘로 보내야 했다.


2022. 6.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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