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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ro Jun 08. 2023

건조체 글쟁이의 삐딱한 세상-꼴통

8. 자아도취와 폄하

   -먼저 이 글로 특정 업무에 몸 담고 있는 여러 종사자분들의 마음에 상처가 되었다면 진심으로 사과드리는 바입니다-



살면서 누군가로부터 인정받는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자신이 몸 담고 있는 업계의 경쟁이 치열하면 치열할수록 그 일은 더욱 요원해진다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스스로의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 어떤 행동을 하고 있을까요? 혹시 그 누군가를 깎아 내림으로 본인의 욕망을 채우고 있지는 않은 걸까요.?



옛날 이발소 아저씨들은 묵묵했습니다. 그들의 손에 쥐어진 바리깡과 가위는 주인의 성격처럼 투박하고 겸손했습니다. 당시 남자들 헤어스타일은 스포츠나 상고머리 둘 중 하나였는데 그래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 시절 이발소 아저씨들은 자신을 찾아온 손님의 머리 스타일에 수다스럽게 특별한 토를 달지 않았던 것입니다.



   시간이 흘러 동네 이발소들은 미용실에 밀려 차츰 문을 닫거나 외진 골목으로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그들이 떠난 자리에는 세련된 인테리어의 고급 미용실들이 들어섰습니다. 그렇게 이발소의 숫자가 줄어든 만큼 미용실은 뭇 남성들로 북적거리게 되었고요.



   제 소싯적에는 이발소와 미용실의 성 구별이 확실했습니다. 남자는 이발소 여자는 미용실. 하지만 이제 더는 미용실이 여자들만의 공간이 아닙니다. 나이 지긋하신 일부 어르신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남성들이 당연하다는 듯 미용실을 찾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럼 저는 언제 처음 미용실에 발걸음을 했을까요. 제 머릿속에 1990년 무렵으로 기억되고 있으니 고등학생 때였던 것 같습니다. 제가 그 시절 뭇 남자들의 곱지 않은 시선을 감당하면서까지 이발소가 아닌 미용실로 꾸역꾸역 기어 들어간 것은 당시 인기리에 방영 중이던 외화 주인공의 머리 스타일을 따라 하고 싶어서였습니다. 스포츠와 상고머리만을 고집하는 이발소에서 미국배우의 개성 있는 머리를 요구하기는 힘들었기에 말입니다. 미용실은 이발소에 비해 다양한 취향을 가진 여성 고객들을 상대하고 있어 개성 있는 머리를 요구하기가 훨씬 수월했기 때문이었던 것이죠.



  그렇게 시작된 저의 미용실 이용은 머리가 희끗거리는 나이만큼이나 벌써 수십 년이 되었습니다. 십 대 시절부터 시작된 일이다 보니 어느새 세월이 그렇게 흐른 것입니다. 아무튼 고등학생 때부터의 적지 않은 시간이다 보니 그 오랜 시간만큼 제가 옮겨다닌 미용실의 수도 만만치 않게 되었습니다. 때론 미용실 사정과 때론 저의 사정들로 불가피하게 미용실을 옮겨 다녀야 했기 때문에 말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유야 어떻든 이처럼 여러 미용실을 옮겨 다니며 특이한 점 하나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새로운 미용실로 옮길 때마다 그곳의 미용사들이 내 머리를 살피며 이전 미용실의 미용사가 제대로 깍지 못했다는 말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행태는 특이하게도 미용실을 옮겨 다닐 때마다 반복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앞사람을 폄하하며 실력 좋은 사람처럼 말한 그들도 또 다른 미용실로 옮기면 똑같이 다음 사람에게 제대로 깍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저는 미용실을 옮겨 다닐 때마다 그 많은 미용사들 중 이전 미용실의 미용사가 제대로 깎았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없습니다. 이런 현상은 보험업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특정 보험을 하나 들고자 설계사로부터 설계를 맡기면 이미 제가 가입한 보험에 대해 그들은 하나 같이 이전 설계사가 적절한 설계를 하지 못했다는 말을 늘어놓는 것입니다.



   이런 경험은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들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모르긴 몰라도 많은 사람들이 저와 같은 경험을 한 두 번씩은 다들 겪어보지 않았을까요. 물론 이러한 일은 이 두 직종에 특정된 것만은 아닙니다. 우리 주변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프로가 자신이 맡은 일에 자신감을 갖는다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실력으로 자신이 마주하는 대상에게 인정을 받는다는 것. 그것 만큼 가슴 뿌듯하고 더 할 수 없이 좋은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만 자신의 실력을 인정받기 위해 타인을 깎아내리는 행동은 결코 프로의 자세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또 그와 같은 언행이나 행동 역시 남들로부터 정당성을 인정받는 것도 힘들 것이고 말입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이런 행동에서 좀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요. 진정한 프로답게 타인의 실력을 폄하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실력으로 결과를 보여 주는 것으로 말이죠.



  아무튼 저는 이처럼 자신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타인을 깎아내리는 작금의 세태를 보며, 아무 말 없이 손님 머리를 만지며 가위질만 하던 그 옛날 이발소 아저씨들의 침묵이 그저 존경스러울 뿐입니다.


2020. 1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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