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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ro Jun 10. 2023

건조체 글쟁이의 삐딱한 세상-꼴통

Zero 연대기3-소

  소년이 된 아이는 옆 마을에 자리한 중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소년은 늘 그렇듯 국민학생때와 마찬가지로 공부는 젬병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운동이나 음악, 미술 같은 예체능에 소질이 있는 것도 딱히 아니었습니다.



소년은 유년에 잔병치레를 많이 한 유약한 성격이다 보니 운동선수나 싸움 잘하는 친구들처럼 육체적으로 강인한 남자들을 동경했습니다. 소년은 한때 그런 친구들과 사귀며 자신도 그들처럼 그렇게 마초적인 남자로 그듭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꿈이었을 뿐 나약한 원초의 성격은 절대 바뀌지 않았습니다,



  소년은 학교와의 십리길을 언제나 걸어서 다녔습니다. 혼자 들판 길을 걷어야 했던 소년은 몽상에 빠질 때가 많았습니다. 그럴 때면 소년은 자신이 그렇게 동경했던 운동선수도 되고 유명 배우도 되는, 모든 것들이 한꺼번에 이루어지는 황홀함에 파란 하늘  곱게 떠있는 뭉개 구름이 그렇게 눈부실 수가 없었습니다.



  소년은 농번기 때면 논과 밭으로 노동을 다녔습니다. 특히 소년은 모를 잘 심었습니다. 어른 품 못지않게 해내는 소년의 노동력을 마을 사람들은 놓치지 않고 품앗이로 썼습니다. 그런 날이면 소년은 어머니뻘 되는 아주머니들 틈에 끼어 종일토록 무논에서 모를 심었습니다.



  소년의 집은 논 한 마지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철탑이 논 가운데 박혀 소출이 제대로 나지 않는 한 마지기가 채 안 되는 하답 중에 하답이었습니다. 그나마 그것마도 자신들의 소유가 아닌 소작이었습니다. 추수가 한 창이던 가을. 소년의 어머니는 소년과 소년의 형을 신새벽에 깨워 안개도 걷히지 않은 그 논으로 갔습니다. 소년의 어머니는 도랑에서 큰 돌을 하나 주워와 베어놓은 볏단을 들고 돌에 두들기기 시작했습니다. 소년과 소년의 형도 어머니를 따라 돌에 벼를 두드렸습니다. 그들의 논 옆으로는 소년의 형 친구의 집 논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그 논은 무려 다섯 마지기가 넘는 상답이었습니다. 기계를 소유한 형 친구의 집은 소년의 가족들보다 한 참이나 늦게 나와서 잠시의 시간만에 추수를 마무리하고 자리를 떠났습니다. 소년은 단단한 무언가에 머리를 얻어맞은 듯 멍하니 벼를 두드리다 말고 그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소년은 공납금 납부날이면 항상 교무실로 불려 갔습니다. 동네에서 제일 가난한 집이다 보니 공납금을 제때 맞추어 내기란 사실상 불가능했습니다. 소년이 교무실에서 공납금 납부의 당위를 선생으로부터 일장 연설 듣고 고개 숙여 교무실을 나와야 하는 일은 늘 해야 하는 하나의 연례행사였습니다.



  소년은 낡은 자전거를 타고 신문 배달을 다녔습니다. 학교를 미치면 신문 보급소에 들러 한아름의 신문을 자전거에 싣고 두 시간가량 마을을 돌며 신문을 돌렸습니다. 신문을 돌리는 지역은 소년이 살고 있는 동네로 마을에서 행세깨나 하는 유지들의 집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소년은 높고 웅장한 그들 기와집의 대문에 신문을 꽂으며 3년이라는 중학의 시간을 마쳤습니다.



그래도 소년에게 한 가지 위안은 초가집에 살아봤다는 거, 소와 개, 닭등을 키워봤다는 거, 산과 들과 강, 늪, 개울, 계곡, 저수지로 둘러싸인 마을에서, 봄의 부드러워진 무덤가 잔디에 피어나는 보랏빛 제비꽃을 봤다는 거, 청명한 가을 하늘 고추잠자리 날개 아래 노란 벼들이 익어가는 들녘을 봤다는 거, 겨울에 동산 올라 연을 날리고 쥐불놀이를 하고, 여름에 저수지에서 헤엄을 치고 비가 오고 난 후 계곡에서 동무들과 물장난을 치고, 강변 하얀 모래톱을 따라 달리기를 하고, 매미와 쇠똥구리를 잡고 눈 덮인 산에 개와 함께 토끼와 꿩 사냥을 가는 등, 우연찮게도 이모든 것들이 다 갖추어진 동네에서 자라, 개울가에서 조약돌을 던지는 황순원을 소나기와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시인 정지용의 향수와 같은, 교과서에서나 읽어 봤을법한 시골에서만 맛볼 수 있는 풍부한 자연의 감성과 정서를 마음껏 누리고 키울 수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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