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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ro Jun 12. 2023

건조체 글쟁이의 삐딱한 세상-꼴통

5. 금기 1(돈)

우리나라 사람은 대화 주제에 있어 몇 가지 금기가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 하나가 바로 돈입니다. “재산은 얼마나 되나요? 월급이 얼마죠? 한 달 수익이 어느 정도 됩니까?”라는 말 말이죠. 우리는 누군가 자신에게 이와 같이 돈에 대한 물음을 던지면 본능적으로 불쾌감을 가집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 대부분은 누구든지 돈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면 민감한 반응을 보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돈에 대한 금기에 대해 한 번 말해보고자 합니다. 우리는 왜 돈에 대해 말하길 주저하는 것일까요? 무엇이 그와 같은 질문을 받는 우리들의 기분을 위축시키고 불쾌하게 만드는 것일까요?



   우리가 잘 아는 유명 개그맨 중 박명수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코미디언이지만 굳이 코미디를 좋아하지 않더라도 많은 이들이 알고 있을 사람입니다. 그런 유명인 박명수의 돈에 대한 생각은 다른 연예인들과 사뭇 다릅니다. 그는 유재석과의 한 방송에서 자신들의 출연료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유재석은 박명수의 출연료 언급에, 방송에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실례라며 농담조로 그를 타박했습니다. 그러자 박명수는 “왜 이런 말을 하면 안 되는 것이냐. 우리도 이제 이런 말 좀 하자. 언제까지 우리는 이런 것들을 숨겨야 하느냐”라고 유재석의 말에 응수했습니다.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그날 유재석의 말에 공감했을 테지만 저는 박명수의 말을 듣고 그간 무언가 꽉 막힌 것 같았던 채증이 뻥 뚫리는 듯한 시원함을 느꼈습니다.



   연예인을 비롯해 노동자나 자영업자, 정치인, 공무원 또는 농부나 어부 할 것 없이 우리나라에서 돈을 버는 사람들 대부분은 자신의 노력으로 떳떳하게 돈을 법니다. 그들 모두는 법을 어기며 불법적으로 돈을 편취하는 것이 아니라 합법적으로 버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의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로 굳이 떠벌릴 필요야 없겠지만 그렇다고 애써 감추어야 할 일도 아니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 누군가는 적게 또는 누군가는 많이 번다고 부끄러워할 일도 미안해할 일도 없다 이 말인 것입니다.



   물론 상황이야 다를 수 있겠지만 경제적으로 성공한 해외 유명인들의 자서전을 보면 그들은 자신들이 벌어들인 돈을 당당하게 밝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허리우드 배우들의 자서전은 돈에 대한 이야기들로 가득합니다. 그들의 책에는, 언제, 어떤 작품으로 얼마를 벌어 들렸는지가 아주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돈에 대한 이야기를 기피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서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입니다. 그들은 자신이 벌어들인 돈에 큰 자부심을 느끼고 그것이 곧 자신의 가치에 대한 입증임을 확신함이 분명한 것 같아 보였습니다.



   그럼 여기서 이야기를 살짝 돌려 친구의 일화 하나를 소개하고 넘어가 볼까 합니다. 제가 소개하려는 이 에피소드는 저의 돈에 대한 사고를 바꾼 큰 사건으로, 제가 왜 돈에 대해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되었는지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일이라 여기에서 한 번 다루고 가고자 하는 것입니다.



  시간은 이십여 년 전입니다. 고등학교 동창인 친구가 결혼 정보회사를 찾아갔습니다. 그는 미모의 여직원과 상담 중 연봉이 얼마냐는 물음에 천팔백만 원이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여직원은 놀라운 표정을 지으며 믿을 수 없다고 말을 했답니다. 어떻게 그렇게 적은 연봉이 있을 수 있느냐면서 말입니다. 그러자 친구는 자신의 말을 믿지 못하는 여직원에게 계산기를 빌려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받는 월급과 상여금, 수당을 계산해 자판에 두들긴 후 당당하게 직원 앞에 내밀었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직원은 계산기에 선명하게 찍힌 일천 팔백이라는 금액을 보고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저는 친구의 말을 듣고 그 자리에서 배꼽을 잡고 박장대소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좀 지나자 친구가 너무 멋있어 보였습니다. 저였다면 분명 그런 상황에서 자신의 초라한 연봉이 부끄러워 말하기를 주저했을 것이기 때문에 말입니다. 그것도 이성의 여자직원 앞이었으니 더욱더 말입니다. 그러나 친구는 저와 달랐습니다. 그는 당당했습니다. 남자로서 천팔백만 원 밖에 안 되는 초라한 연봉에 주눅 들지 않고 그렇게 당당하기 밝힐 수 있다니. 오! 이 얼마나 멋진 모습이란 말입니까.



   이후로 저는 누군가 제가 받는 월급이 얼마인지를 물어보면 저는 아무런 숨김없이 다 말해줍니다. 급여의 기본급과 수당, 그리고 세금과 같은 공제내역이 얼마여서 제가 받는 실 수령액은 이것이라고 말입니다. 굳이 떠벌일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물어보는 것에 대답을 주저할 이유도 없다는 생각의 변화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앞에서도 이야기했듯 제가 버는 그 돈은 제 나름의 정당한 노동으로 대가로 떳떳하게 버는 돈이기에 말입니다.



  저는 물욕이 적은 편입니다. 지금까지 했던 어떤 일에서도 제가 받는 월급이 적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말 그대로 안분지족 하는 타입이었지요. 사실 저는 요즘 밥벌이로 하고 있는 제 일 또한 노동력에 비해 월급은 많은 편이라 생각합니다. 예전에는 이 보다 더 강도 높은 노동에도 더 적은 월급을 받은 적도 많았으니까요.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친한 친구는 이런 저를 보고 돈에 욕심 좀 가지라고 충고하고는 합니다. 하지만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아가자는 게 제 삶의 방식이다 보니 돈 욕심을 가진다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습니다.



   아무튼 저는 늘 돈보다 인간 됨됨이가 우선이라는 생각으로 지금까지 살아왔습니다. 저의 이러한 개똥철학은 옛 선조들의 고전을 읽고 정립된 사고였습니다. 이름 높은 선조들의 문헌에는 언제나 돈과 관직을 멀리하며 청빈한 삶이 최고의 가치라고 새겨져 있었기에 말입니다.



    그런데 제가 뒤늦게 깨달은 것은, 저는 애초에 가난한 사람이고 문헌을 남긴 그들은 기본적으로 재력이 받쳐주는 양반 출신들이 대부분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청빈을 외치던 시절 저 같은 평민은 글을 배울 수도, 책으로 자신의 생각을 남길 수도 없는 경제적 빈곤의 시절이었습니다. 즉 청빈 낙도를 외치던 문헌 속 선조들은 신분이 양반 귀족, 하다 못해 최소 중인 이상으로 기본 재력이 받쳐줘 삶에 쪼들리지 않고 먹고사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사람들이었다는 말입니다.



   물론 우리나라 사람들의 돈 이야기에 대한 금기는 개별적으로 각자 다 다른 이유가 있겠지만 저는 이처럼 방송이나 책을 통 해 물욕을 멀리하라는 가르침의 옛날 선비정신에 바탕을 둔 이유 또한 적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돈과 관직을 멀리하라며 무소유를 외치던, 있는 자들의 청빈한 선비 정신 말입니다. 하지만 가진 것 없는, 그 시대로 따지면 재물을 만져보기도 힘들어 하루하루 먹고사는 게 문제였던 평민인 우리가 여유 있는 그들의 가치를 따르며 살아왔다는 게 요즘은 한심하게 생각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돈에 대해 이야기하면 속물로 취급받는 이 우리들의 돈에 대한 금기 풍조가 이제는 하루빨리 깨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래서 외국의 유명인이나 자산가들처럼 자신의 수익을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그런 날이 어서 왔으면 하고 말입니다. 우리 모두는 누구에게 꿀릴 것 없이 합법적으로 정당하게 돈을 벌어 그 돈으로 먹고 살아가니 말입니다.


2020. 1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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