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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ro Jun 14. 2023

건조체 글쟁이의 삐딱한 세상-꼴통

89. 음식과 술, 외향과 내성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좋든 싫든 회식을 한 번쯤은 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동안 업무로 쌓였던 스트레스도 풀고 직원들 간의 친목 또한 도모하기 위해 음식과 술을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자 하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전 이런 회식을 할 때마다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닙니다. 왜냐하면 술도 잘 못 마시고 성격 또한 내성적이라 여러 사람과 이렇게 어울려야 하는 술자리가 체질적으로 맞지 않아서 말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은연중에, 음식은 가리지 않고 아무거나 잘 먹어야 하고 술은 웬만큼 마셔야 하며 성격은 내성적이지 않은 외향적인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는 인식을 갖습니다. 그리고 특히 남자의 경우 이 모든 능력을 다 갖춘 남자라야 진정한 남자라며 치켜세우고 말이지요.



  저는 가끔 옛 군대 동료들과 한 번씩 모임을 갖는데 그 모임에 유독 음식과 술을 많이 권하는 형이 한 명 있습니다. 저는 앞에서도 이야기했듯 저는 배가 작아 체질적으로 음식을 한 번에 많이 먹지 못하고 술 역시 주량이 약해 다른 사람의 기대치만큼 많아 마시지 못합니다. 그런데 그 형은 술이 거나하게 취하고 술자리의 분위기가 무르익을 때쯤이면 항상 저에게 음식과 술을 더 먹고 마시라며 끊임없이 권합니다. 그럴 때면 저는 배가 부르고 취기가 올라 더는 못 먹고 못 마시겠다고 하는데 그러면 항상 그 형은 입이 짧고 술이 약하다며 핀잔을 줍니다. 저는 그럴 때면 “형! 많이 먹고 많이 마시는 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우리가 이렇게 이 자리에 함께해 서로 정을 나누는 게 좋은 거 아니야. 내가 적게 먹고 적게 마시면 음식 좋아하는 사람과 술 많이 마시는 사람이 더 먹고 더 마실 수 있어 좋지 뭐”라고 말하며 그 위기를 모면하고는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일이 매번 계속해서 반복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 형도 악의가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는 것쯤은 저도 잘 압니다. 그저 좋아하는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는 게 즐겁고 그 자리가 좋아 더 먹고 더 마셨으면 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매번 이런 일이 반복적으로 벌어질 때마다 저는 참으로 답답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러함은 외향적이냐 내성적이냐를 따지며 그 사람의 됨됨이를 짐작하고 그것으로 그 사람을 좋은 사람 또는 나쁜 사람으로 판단하는 것 역시 같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서로 처음 어울리는 자리에서 내성적이면 그 사람은 사회성이 부족하다며 그 사람의 진정한 모습을 알기도 전에 평가절하해버리고 또 그와는 달리 외향적이면 역시 그 사람의 진정한 모습을 알기도 전에 사회성이 좋고 사람 참 괜찮다며  평가절상 해  버리는 것이자요.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절대 일 방향일 수만은 없습니다. 모든 일에는 외향적인 사람이 적합한 일과 내성적인 사람이 적합한 일들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만약 이런 경우 그 일을 맡은 사람들의 성격이 교차된다면 우리가 생각했던 만큼의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은 굳이 두 말할 필요도 없지 않겠습니까.



  인간은 손가락의 지문이 저마다 개별적으로 다 다릅니다. 이는 식성과 성격 또한 마찬가지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게 인간입니다. 그런데 그런 인간이 모두 똑같이 잘 먹고 잘 마셔야 하며 외향적이어야 한다면 그게 말이 되겠습니까. 또 혹여라도 정말 그렇게 된다면 그런 세상이 과연 살만한 세상일까요.



   입이 짧아 음식을 가려 많이 먹지 못하거나 술을 좋아하지 않아 조금밖에 마시지 못하면 우리는 언제나 남자 답지 못하다는 인식을 가집니다.. 우리나라 사람은, 남자는 무조건 무엇이든 다 잘 먹고 잘 미셔야 된다는 강박을 가지고 있는 듯합니다. 그런데 왜 그래야 하는 것입니까. 과연 남자 다움이라는 것이 진정 무엇입니까. 모든 남자들이 술을 다 잘 마시고 음식을 가리자 않아야 꼭 남자다운 것입니까. 또 왜 모든 사람의 성격이 내성적이면 안되고 외향적이어야 한다는 것입니까. 그것이 남자의 덕목이라고 여기는 우리의 그 생각의 기준은 과연 무엇입니까.



  음식이 내 입에 맞지 않고 내 몸에 술이 맞지 않으면 안 먹고 안 마셔도 되는 것입니다. 또 왁자지껄하게 떠들고 사람과 어울리는 것 또한 좋아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그러함이 싫고 혼자 조용히 자기만의 시간을 줄기는 사람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는 제발 그런 것들을 가지고 그 사람의 남자답니 그렇지 않니와 사회성이 좋으니 인간성이 나쁘니 같은 이 말도 안 되는 판단을 그만 좀 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2022. 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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