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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ro Jun 15. 2023

건조체 글쟁이의 삐딱한 세상-꼴통

11. 코메디

   660년 7월. 김유신을 필도로 한 오만의 신라군이 탄현을 넘어 황산벌로 진군한다. 급보를 전해 들은 백제 의자왕은 군신을 모아 대책을 강구한 후 계백으로 하여 신라군을 저지하게 한다. 이에 계백은 처와 자식을 자신의 손으로 베고, 죽음을 각오한 결사대 오천을 뽑아 황산벌로 출병한다.



지금으로부터 천 오백 년 전은 전쟁의 시대였습니다. 그 시대는 중국 대륙이 전쟁으로 혼란스러웠던 오백 년동안의 춘추전국시대와 비견해도 뒤질 것 없는 말 그대로 참혹의 시대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 나라로 나뉜 국토는 늘 전쟁으로 초토화였고 왕과 귀족들은 영토 확장과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 힘없는 백성들을 끊임없이 전쟁터로 내 몰았던 것입니다.



   이준익 감독의 영화 “황산벌”은 이러한 시기 백제 패망의 마지막 전투였던 황산벌에서의 전쟁을 삼국사기를 바탕으로 만들었습니다. “왕의 남자”를 연출해 사극의 천만 관객 시대를 만든 감독은 영화 곳곳에 코믹한 대사와 해학적인 장면들을 삽입해 자칫 딱딱하고 지루 할 수 있는 내용을 재미있게 풀어놓았습니다. 이런 감독의 익살 때문인지 이 영화의 장르는 “코미디”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한 때 삼국지와 초한지, 손자병법등에 심취했던 적이 있습니다. 사내의 기질이 나타나기 시작한 청소년 시절이었습니다. 당시 지성들은 그 책을 필독서라 했습니다.



   책에는 수많은 전쟁영웅들이 등장했습니다. 무명의 수 천만의 군사들은 죽음으로 그들의 영웅성을 완성해 주었습니다. 이때 장군의 공은 찬란했고 병사들의 죽음은 간결했습니다. 그 간결함은 죽음을 다루는 문장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건조했습니다. 나는 그 책들을 읽으며 나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죽음의 무게를 가볍게 생각하게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입을 포기한 채 군에 자원 입대했습니다. 그때 나의 나이는 만 18세였습니다. 복무 중 무장공비 침투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젊은 혈기에 죽음이 두렵지 않던 나와 동료들은 실전의 기회에 흥분했습니다. 부대는 즉시 현장으로 출동했고 동료들과 나는, 탈출 매뉴얼에 의해 자신의 동료에게 사살된 적군의 시체를 목격했습니다. 일렬로 뉘어진 그들의 죽음에서는 어떠한 감정도 읽을 수 없었습니다. 그저 죽음의 공포가 한 바탕 휩쓸고 간 쓸쓸함 뿐이었습니다.



  늦여름에 시작된 작전은 초겨울까지 이어졌습니다. 낙엽이 지기 시작한 강원도의 추위는 맹렬했습니다. 작전은 주야가 따로 없었습니다. 적군이 여럿 죽고 아군과 민간인의 희생 또한 만만치 않았습니다. 처음의 기백과 패기는 시간이 갈수록 바닥을 드러냈습니다.



주간수색에서 야간 매복으로 작전 변경이 자주 일어났습니다. 매복 군장을 챙기지 못해 야전상의 한 장으로 강원도 산의 겨울밤을 버틸 때, 너무 추운 나머지 의지와 상관없이 턱관절이 떨려 이가 부딪히며 주위의 적막을 깨트리고는 했습니다. 아군지역에서 발생한 국지전이 이 정도라면 전면전의 참담함은 어떠할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나와 동료들은 그날의 일을 통해 영화나 훈련이 아닌 전쟁이라는 실전의 처참함을 조금씩 깨닫게 되었습니다



   영화 “황산벌”을 보고 난 저는 이 영화의 장르가 코미디로 분류돼 있는 것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전쟁이 어떻게 코미디가 될 수 있는 것일까요. 저는 도무지 그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단순히 익살스러운 장면이 조금 연출되어 있다고 비극이 희극으로 불리는 게 과연 옳은 것인지 나는 여기에 대한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울러 우리는 진정한 희극과 비극의 뒷모습이 어떠한지를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 또한 함께 말입니다.



   저는 평범한 회사원로서 영화 관련 일을 해보지 않아 어떤 기준으로 그들이 영화의 장르를 구분 짓는지 알지 못합니다. 아마 내가 알고 있는 얕은 지식으로는 알 수 없는 그들만의 깊은 고민과 원칙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법칙들은 각박한 현실에서 인간의 내면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보는 심오한 철학을 가져야 하는 게 아닌가라고 저는 생각해 보았습니다



   영화는 계백이 사병(극 중 이름 “거시기”) 한 명을 부대가 몰 살 되기 전 탈출시키는 걸로 끝이 납니다. 전쟁에서 홀로 살아남은 “거시기”는 고향으로 돌아가 논을 매고 있는 어머니와 극적인 재회를 합니다. “거시기”의 어머니는 벼가 자라는 무논에서 뽑던 피를 내던지고 나와 흙 묻은 손으로 “거시기”의 얼굴을 매만지며 기쁨의 눈물을 흘립니다. 나는 이 한 장면에서 104분이라는 영화의 러닝타임 중 가장 깊은 여운을 느꼈습니다.



   저는 마지막으로 사전에서 “코미디”라는 단어의 의미를 찾아봤습니다. 사전에는 코미디가 “희극”이라고 정의돼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희극”이라는 단어를 찾아봤습니다. 희극은 “실없이 익살을 부려 관객을 웃기는 장면이 많은 연극”이라고 정의되어 있었습니다. 관객을 웃기는 장면이 많은 연극이라고 말이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현실의 전쟁은 실없이 익살을 부려 관객을 웃기는 그런 가상의 연극이 절대 아님을 우리는 알아야 할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2020. 1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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