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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ro Jun 17. 2023

건조체 글쟁이의 삐딱한 세상-꼴통

103. 제갈량 콤플렉스

소설 삼국지가 있다. 너무나 유명한 작품이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어른, 아이,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아마 모르는 이가 없을 것이다. 중국이 삼국으로 나뉘어있던 시대 패권을 차지하기 위한 각 나라 군주들의 치열한 전쟁사.


  위, 촉, 오라는 세 나라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 삼국지는 유독 촉나라의 왕인 유비에 주요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작품 초반부에 보이는 유비와 관우, 장비의 도원결의를 시작으로 유능한 인재 제갈량을 영입하기 위한 삼고초려의 모습까지.


  유비는 초야에 묻혀사는 제갈량을 자신의 책사로 만들기 위해 의형제 관우와 장비의 불만에도 불구하고 세 번이나 초가를 찾아가는 모습을 보이며 부단한 노력을 한다. 이에 제갈량은 천하삼분지교라는 계책을 유비에게 들려주며 그의 청원을 결국 받아들이며 삼국지 전면에 등장해 바야흐로 제갈량의 시대를 펼치게 된다.


  이렇게 삼국지에 등장한 제갈량은 소설 말미 오장원의 별이 되기까지 작품 전반에 걸쳐 앞을 내다보는 뛰어난 지략으로 촉나라 유비 군의 전투와 행정에 큰 공헌을 한다. 그는 위기 때마다 상대가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할지를 예견해 그에 맞는 전술을 구사하면서 유비군을 위기에서 구해내고 각 개별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 등 실로 신기에 가까운 능력을 선보인다. 이에 우리는 삼국지를 읽으며, 어찌 보면 유비보다 극적인 전술을 짜 내는 제갈량의 모습에 더 많은 매력적을 느끼는 것일지도 모른다.


  요즘 TV를 시청하고 있으면 남녀 간의 연애사 또는 특정인들의 인생사는 물론 가족, 정치, 경제, 세계사에 이르기까지 연예인을 비롯해 자칭 전문가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의 문제 분석과 해결방안 일색이다.


  그들은 하나 같이 그 모든 사태의 문제들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말한다. 그리고 그 문제들이 장차 어떻게 변화하고 흘러갈 것인지를 짐작하고 거기에 맞는 해결책은 바로 이것이라는 투로 문제 해결 방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마치 삼국지의 전쟁터에서 힘든 난관을, 앞을 내다보는 통찰력과 깊은 지혜로 문제를 성공적으로 해결해 나가는 제갈량처럼 말이다.


나도 젊은 시절 한때는 그랬다. 지인 누군가 무슨 문제가 있어 조언을 구한다든가 아니면 정치, 경제, 국제정세 등 사회에 큰 이슈가 있으면 내가 그 방면에 정통한 사람마냥 사건의 흘러갈 방향과 거기에 따르는 해결책을 스스럼없이 말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와 돌이켜보면 참으로 부끄럽다. 얄팍하고 알량한 지식으로 내가 세상을 다 아는 것처럼 떠들고 다녔으니 말이다. 내가 아는 것이라고는 겨우 인생 50년을 살며 경험한 얕은 경험치 몇 가지와 책을 읽으며 깨달은 보잘 것 없고 미천한 지식이 고작인데 그런 내가 마치 세상을 전부 아는 것처럼 떠들고 다녔으니 말이다. 세상은 내가 알고있는 것과 내가 겪고 생각한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다단한 곳인데 말이다.


  나는 이제 용기가 생겼다. 모르는 걸 모른다고 할 용기가 생겼다. 내가 인간사나 세상사를 모른다고 할 용기가 생겼다. 나는 삼국지의 제갈량처럼 앞을 내다보며 문제를 해결할 그런 능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고 말할 용기가 생겼다. 그냥 평범한 촌부에 불과할 뿐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그 용기가 말이다.


2022. 5.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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