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밤 9시도 안됐는데 호스텔 주변의 식당은 대부분 문을 닫은 상태였다. 퀸 스트리트를 따라 내려가 보니 피자, 케밥, 한식집 등은 아직 문이 열려 있었다. 참고로 이 가게들의 특징은 대부분 이란, 인도, 중국, 한국 등 이민자들이 운영한다는 점. 늦은 밤까지 일을 한다는 건 뉴질랜드에 남기 위해 그만큼 사력을 다해 산다는 의미일지도.
그런데 그중에도 꼭 욕 얻어먹을 짓을 하며 자국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인간들이 있다. 그 첫 번째는 케밥 가게의 주인 할아버지가 되시겠다. 케밥을 처음 먹어보기도 했고, 뉴질랜드에서의 첫 주문이라 호기심에 경계심 없이 마음의 문을 연 것이 문제였다. 외국에서 영어를 배우려면 시간이 많으신 노인분들과 친해지는 것도 좋다고 들었는데, 이 분의 영어는 도저히 손님을 응대할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그래도 친절한 응대와 환대에 감사해서 어느 나라에서 왔고, 지금은 어디에 머물고 있는지 등 어느 정도 대화를 이어갔더니 나와 친구가 되자고 하신다. 그리고 친구에게 식사를 대접한다는 듯 계산도 사양하셨다. 선의의 선을 넘게 된 것은 그다음 날이었다.
내가 여전히 호스텔에 머물고 있다고 하자 숙소비를 물어본다. 4인 여성 전용 방이 24~27달러 (한화로 약 2만 원 전후) 이였으니 일주일이면 15만 원 정도, 한 달이면 약 60만 원정 도인 셈이다. 아파트를 공유해서 쓰는 독방이 한 주에 200달러인 걸 감안하면 호스텔비가 저렴한 편은 아니었다. 내가 얼른 방을 구해서 나가고 싶다고 하자, 그는 뭔가를 장황하게 설명한다. 아들이 한 명 있고, 빈 방이 있으니 같이 살자는 것이다. 뭣이?! 알게 된 지 이틀 만에 남자들만 사는 집에서 동거를? 그러면서 대화가 자꾸 이상하게 흘러가는 게 느껴져서 나는 급히 가게를 빠져나왔다. 역시 세상에 공짜는 없다. 친구는 개뿔.
이후에도 나는 호스텔에서 흑인 남성이 질척이는 것을 물리치느라 애를 먹어야 했다. 또 한 번은 미들 퀸 스트리트에 위치한 피자집 앞의 벤치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검은색 비닐봉지를 든 중국인 남성이 머뭇거리며 다가왔다.
“오늘 밤에 뭐 해?”
“집에 갈 건데?”
“왜?”
왜라니? 잘 때 됐으니까 귀가하는 거지. 그러더니 자기랑 술을 마시러 가자고 턱도 없는 소리를 한다. 정말 왜들 이러니?
이게 끝이 아니었다. 며칠 뒤 방을 구하러 집을 렌트한 주인과 약속을 잡고 오클랜드 북쪽에 위치한 글렌필드Glenfield까지 갔다. 낯선 동네인데다 비까지 오고 있어서 집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길을 헤매다 플랫Flat 주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의 영어 실력도 문제지만 그의 발음은 도저히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목소리의 억양만 들어도 그의 피부색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가 말한 건물명을 찾아간 뒤 겨우 그의 차가 있는 곳을 발견했다. 역시나 그는 피자 가게 주인과 같은 피부색을 가진 인도인으로 보였다. 그리고 케밥 가게 주인이 그랬듯 내게 수작을 걸어왔다. 이번에는 한 단계 더 진화해서 유부남이다.
그가 보여준 집과 방은 기대 이하였다. 예의상 생각해보겠다는 말로 집을 빠져나왔다. 여전히 비가 거세게 내렸다. 오는데도 헤맸지만 가는 길은 더욱이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그때 집주인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다. 마침 오후 근무를 하러 나가는 길이니 버스 정류장까지 태워주겠단다. 어차피 방은 물 건너갔기 때문에 고맙지만 불편한 마음도 들었다. 그러나 해가 저물기 전에 숙소에 도착하려면 누구의 도움도 마다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내가 차에 타자 그는 슬슬 시동을 건다. 수작이 시작되었다.
"오늘 저녁에 뭐 할 거야?"
"호스텔에 있을 듯"
"내가 너한테 또 연락해도 될까?"
이게 뭔 소리야. 자식도 있는 양반이 이거 왜 이래? 그 역시 호스텔이 얼마냐고 묻길래 비싸고 불편하다고 좀 투덜댔더니 벌써 나랑 친해진 양 뜬금없이 들이대는 것. 케밥 가게의 이란 할아버지도 그렇고 호스텔 얘기만 나오면 보호본능이 느껴지나? 자칫 불륜으로 오해할 수 있는 제안이지만, 나는 그의 차에 탑승한 상태이다. 최대한 정중하게 거절해 줘야 한다.
"니가 만약 질문할 게 있으면...If you have any question...?"
행여라도 남녀 간의 데이트스러운 걸 기대하지 않도록 '연락'의 의미를 '문의'에 대한 응대로 한정 지어버렸다. 물론 차에서 내리는 직전까지 그의 수작은 일체 모른 척 외면했다.
그러나 웬걸. 몇 달이 지난 후 “Hi”하며 또다시 친한 척을 한다. 당연히 모르는 번호길래 무시했더니 왜 답이 없냐고 또 한 번 질척. 누구냐고 물어보니까 왜 자기를 모르냐는 식으로 서운해하고 앉아있다. 번호를 아직까지 기억해서 연락하는 것도 뻔뻔하고, 굳이 메신저까지 등록해서 연락하는 건 뭐람. 소름이 끼쳐서 답장을 안 했더니 왜 답을 안 하냐고 끈질기게 메시지를 보낸다. 연락하지 말라고 딱 잘라 답한 뒤 메신저를 차단해버렸다.
이 황당한 일들은 뉴질랜드에 도착한 지 일주일도 안 돼서 일어났다. 때로는 호의도 거절할 줄 알아야 하나 보다. 타인의 호의를 의뭉한 수작과 구분하지 못하면 위험과도 직결되기 때문이다. 나는 말로써 거절할 수 있는 수준의 인간들이었지만, 만약 그들 중 무력이나 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다면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다. 과연 정상인을 만날 수 있을까 싶은 우울감이 몰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