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중후반에서 서른이 되면 찾아온다는 서른병. 누군가는 나보다 높은 직급을 달고 당당한 커리어 우먼이 되어 있고, 누군가는 사랑하는 남자와 알콩달콩한 가정을 꾸릴 나이. 그에 반해 나만 뒤처진 것 같은 조급함과 우울감은 남아서 열심히 살 의욕도, 그렇다고 떠날 용기도 주지 않는다. 아~ 어쩌란 말이냐!
31살의 나 역시 갑작스러운 해고 통보로 회사와 맞짱을 뜨게 되며 우울증과 극심한 서른병을 앓게 된다. 부당 해고와 부당 전보로 회사와 싸우며 마녀가 되어버린 나. 회사와의 싸움에는 이길 수 있었지만, 자축할 수 없을 만큼 출혈은 심했다. 회사 경력 대신 전력(專力)을 쌓은 내가 다시 업계로 돌아가긴 어려웠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일하기 싫어, 떠나고 싶어’ 증후군에 빠져버렸다.
온전히 취업과 경력 쌓기에만 매달렸던 이십 대. 내가 가장 행복했을 때는 외국계로 이직을 성공했을 때. 가장 불행했을 때는 회사에서 퇴직당했을 때. 내 행복과 불행은 오로지 회사에서 비롯되었다. 뭐라도 되어 있을 줄 알았던 삼십 대의 나는 우울증에 걸린 백수. 도대체 몇 번이나 회사를 그만둔 건지 기억도 안 날 정도로 지저분한 이력서. 뭐가 잘못된 건지를 생각할수록 자존감이란 녀석은 점점 내 곁에서 멀어져 갔다. 살아갈 의미도 없어졌다. 하지만 죽고 싶지는 않았다. 그냥 다시 살 순 없을까?
그렇게 불행했던 내 이십 대에게 미안해서 무작정 퇴직금만 들고 뉴질랜드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났다. 만 30살이 되는 생일까지 남은 165일만큼은 이십 대로서 하고 싶은 일을 맘껏 하게 내버려 두기로 했다. 워크 비자로 전환하고 싶은 유혹도 있었지만 더 이상 누군가에게 고용되기보다 충분히 내 시간을 즐기기로 한 것이다.
오하쿠네(Ohakune) 모텔에 자리 잡은 임시 사무실(?)
그 대신 직접 나 스스로를 고용하기로 했다. 어딘가로 걷다 보면 길은 나오는 법. 뉴질랜드에서 만들었던 –방문자가 하루에 30명도 안 오던- 블로그를 통해 책을 내게 될 줄이야! 꿈이 망가졌다고 생각하고 내 멋대로 살고 나니 오히려 최종적으로 바랐던 꿈이 벌써 이루어진 것이다. 그 지저분했던 경력에서 쌓은 노하우가 책으로 나올 수 있었고, 유수의 기업을 다니는 직장인들에게 강의를 함으로써 내 이름으로 된 사업자명도 나올 수 있게 되었다. 도대체 뉴질랜드에서 무슨 일이 있었길래 세상의 슬픔을 다 머금고 있던 우울증 환자가 행복을 논하는 이야기를 하게 되었을까?
이 글을 보고 있는 여러분은 대부분 서른이란 나이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테다. 지나온 이십 대에 아쉬운 부분이 있거나 그리울지도 모른다. 또한 앞으로 펼쳐질 삼십 대는 좀 더 성숙하고 지혜롭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 것이다. 즉, 새로운 시작이 펼쳐질 기로에 서있다는 것.
혹시 나이가 많아서, 또는 경력이 단절될까 봐, 하고 싶은 일을 망설이고 있다면 앞으로 들려줄 이야기가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었으면 한다.
뭔가를 능률적으로 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대신 우리가 가장 행복해야 할 지금의 삶을 천천히 살펴보았으면 한다. 그동안 앞만 보고 뛰어오느라 어디 다친 데는 없는지 마음을 돌봐주고, 일에만 갇혀 사느라 지나치고 있었던 당신만의 취미나 재능이 낭비되고 있지는 않은지에 관해서 말이다.
일도, 꿈도 잃은 채 한국을 떠났지만 기적처럼 꿈을 되찾게 된 나의 이야기를 통해 당신에게도 용기를 주고 싶다. 지금 하던 일에서 행복을 발견하거나, 새로운 꿈을 위해 떠나거나. 목표가 무엇이든 당신만이 그릴 수 있는 미래를 위해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