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즘, 사람 앞에 서는 일이 자주 조심스러워진다.
그중에서도 인생을 오래 살아오신 어르신들 앞에서는 조금 더 작아진다.
말 한마디를 꺼내기도 전에 마음이 먼저 무릎을 꿇는다.
그분들의 주름, 눈빛, 느린 손끝에 담긴 세월이 나를 먼저 누그러뜨리기 때문이다.
고요한 아침처럼, 어르신과 마주한 순간은 늘 조심스럽고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내가 일하는 카페는 고령화가 심한 지역 한가운데 있다.
그래서일까, 하루에도 여러 어르신들이 다녀가신다.
어떤 분은 천천히 걸어오셔서 묵묵히 커피를 마시다 가시고, 어떤 분은 창가 자리에 앉아 오래도록 누군가를 기다리는 눈빛을 하신다.
그리고 아주 가끔은, 낯선 고백처럼 속마음을 털어놓는 분들도 계신다.
그날, 카페 옆 목욕탕의 업무를 도와주다가 할머니 한 분이 내게 말을 건네셨다.
“나는 너무 오래 살았어. 쓸모가 없어.” 그 말은 속삭이듯 들려왔지만, 내 마음엔 무겁게 내려앉았다.
잠시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쓸모라니.
누구에게 그런 말을 들으셨을까.
아니면, 혼자서 오래도록 그렇게 믿어오신 걸까.
그 생각을 하니 가슴 안쪽이 저려왔다.
나는 최대한 다정하게, 천천히 말씀드렸다.
“혼나요, 할머니. 그런 말씀 마세요. 살아계신 것만으로도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지 아세요?”
그 말에 할머니는 한동안 아무 말씀 없으셨다.
그리고 이내 눈가에 물기를 머금고, 조심스럽게 되물으셨다.
“그런가?” 그 한마디에, 내 안에 있던 따뜻한 무언가가 스르르 흘러내리는 걸 느꼈다.
그 순간 나는 알았다.
우리는 다들 누군가에게서 확인받고 싶은 마음으로 살아간다는 걸.
존재의 이유, 살아 있음의 의미, 쓸모라는 단어로 포장된 외로움들.
나는 요가를 가르치는 사람으로, 또 몸과 마음을 함께 바라보는 일을 해온 사람으로서 그분의 굽은 어깨와 마주 앉아, 오히려 내가 위로받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사람은 참 이상하다.
무너진 마음 하나가 다정한 말 한 줄에 다시 일어설 수 있다.
그리고 그 다정함은 꼭 정답을 말하는 게 아니라, 단지 함께 숨 쉬고 있다는 걸 알려주는 데서 시작되는 것 같다.
나는 요즘, 그런 마음을 배운다.
매일 카페에서 마주하는 어르신들 앞에서, 그분들의 느린 발걸음과 조용한 말투 속에서, 말보다 더 깊은 사랑을 듣는다.
살아 있다는 건, 누군가의 말 한 줄로 마음이 물결치고, 또 누군가의 눈빛 하나로 하루가 환해질 수 있다는 것.
나의 하루는 그렇게 ‘쓸모없다’ 말하던 한 생이 얼마나 고요한 빛을 내고 있는지를 배우는 시간이다.
그리고 나는 그 앞에서 자주, 마음이 녹아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