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계절] 미래(3)

by 지수

“그러니까, 저기 파란색 대문집이다 이거지?”

정오 무렵, 가장 햇빛이 밝은 시간. 해음과 초록은 전봇대 뒤에 숨어 나무들이 알려준 집을 지켜보고 있었다. 눈부신 한낮의 햇살이 마치 그 집만을 피하듯 비켜서 있었다. 집은 마을에서 꽤 떨어진 외딴곳에 위치해있었고, 성인 남녀가 집 밖에서 마당을 내려다볼 수 있을 만큼 담이 낮았다.

해음은 진돗개에게 줄 간식 봉지를 들고서 초조한 마음으로 집주인이 나올 순간만을 기다렸다.

“그런데 해음아, 좀 위험하지 않을까? 내가 알아서…”

“쉿-!”

해음이 다짜고짜 초록을 전봇대 뒤편의 담벼락 쪽으로 밀치며 자신의 입술 위로 검지를 대어 보였다. 초록은 조용히 두 눈을 깜빡이며 해음을 내려다보았다.

“끼이익-”

곧이어 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체격이 왜소한 중년의 남성이 밖으로 걸어 나왔다. 남자는 잠시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집 앞에 주차되어 있던 하얀색 트럭에 올라탔다. 그리고 천천히 속도를 높이며 자신의 집에서 멀어져 갔다. 해음은 전봇대 너머로 고개를 빼꼼히 내민 다음 트럭이 사라지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았다.

“가자, 초록아.”

해음의 바로 뒤에서 숨죽이며 담벼락에 바짝 붙어 있던 초록은 비로소 자유의 몸이 되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둘은 파란색 대문집을 향해 신중하게 주위를 살피며 걸어갔다. 뒤이어 담 너머에 서서 찾고 있던 진돗개가 있는지 들여다보았다. 집 마당 구석에 상처투성이에 삐쩍 마른 진돗개 한 마리가 자신의 집 앞에 기운 없이 웅크리고 있었다.

“진돗개야…! 언니가 간식 들고 왔어…!”

해음이 소곤거리는 목소리로 말을 건 후, 진돗개에게 가까이 다가가 간식 봉지를 흔들어 보였다. 진돗개는 고개를 들어 다소 관심 어린 눈빛으로 해음과 간식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 후 서서히 자신의 몸을 일으켜 해음이 있는 쪽으로 조심스레 걸어갔다. 그러다 해음의 뒤에 서 있는 초록을 발견하곤, 급히 방향을 틀어 자신이 있던 마당 구석으로 되돌아갔다. 진돗개는 자신의 자리에 서서 경계 태세를 취한 채 초록을 지켜보았다.

초록은 진돗개를 계속 바라보다 진돗개에게 점점 가까이 다가갔다.

“멍멍-!”

초록의 움직임에 진돗개가 갑자기 미친 듯이 짖어대기 시작했다. 그 눈빛엔 두려움과 혼란이 뒤섞여 있었다. 초록은 진돗개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인 뒤 재빨리 발걸음을 뒤로 물렸다.

“초록아, 왜 그래?”

“더 이상 가까이 오지 말래.”

“너 설마 동물이랑도 대화할 수 있는 거야?”

“듣는 것만 돼. 그래서 20년 전에 너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었던 거야.”

“그렇구나……. 그런데 왜 저렇게까지 널 경계하는 걸까? 넌 전혀 위협적이지 않잖아.”

“날 자기 주인과 같은 성인 남자로 보고 있어.”

해음이 안쓰러운 눈길로 바닥에 잔뜩 몸을 붙인 진돗개를 바라보았다. 오랜 시간 이어진 학대가 조금의 비슷한 자극에도 공포와 무기력에 떨게 만들었다. 해음은 이대로 그 감정을 지나칠 수 없었다. 그 감정이 얼마나 잔인한 것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초록아.”

“응?”

“네가 직접 간식 좀 줘보자.”

해음이 간식을 꺼낸 뒤 초록의 손에 쥐여 주었다.

“내가 마음을 열 수 있을까?”

“열게 만들어야지. 오늘이 안 되면 내일, 내일이 안 되면 또 그다음 날. 아무리 긴 시간이 필요하다고 해도 끝까지 해볼 거야. 두려움 없이, 주어진 매일을 살 수 있도록.”

해음의 말에 초록이 나긋이 고개를 끄덕였다. 초록은 어쩌면 맑은 바다 같은 해음이 나무인 자신보다 더 단단한 존재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자신은 단지 부러지지 않으려 버텨왔을 뿐이었다. 하지만 해음은 수많은 상처를 안고도 여전히 파도처럼 살아있었다. 20년간, 해음은 상처만 받지 않았다. 그 상처 속에서 자기도 모르는 힘을 계속 간직하고 있었다.

“일단 오늘은 이 거리에서 간식만 두고 가자. 초록이 너에게 적응하고 신뢰할 만한 시간이 필요해 보여.”

다음 날 정오, 해음과 초록은 어제처럼 간식을 들고 진돗개를 찾아왔다. 초록이 조심스럽게 땅바닥에 간식을 내려놓자, 진돗개는 뒷다리를 바짝 움츠린 채 눈을 굴리며 냄새를 맡았다. 금방이라도 도망칠 듯했지만, 끝내 뒷걸음치지는 않았다.

해음은 그 순간을 가만히 숨죽이며 지켜보았다.

‘봐. 조금씩 괜찮아지고 있어.’

해음과 초록은 매일 낮 12시가 되면 진돗개를 찾아가 간식을 주고 갔다. 진돗개는 서서히 초록에게 한 발짝씩 다가가고 있었다. 초록과 시선을 마주한 채, 더 이상 짖어대며 뒷걸음질 치지 않았다.

다만, 학대로 인한 몸의 상처들은 하루가 다르게 늘어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해음의 마음 또한 나날이 붉게 물들어갔다. 내일엔, 이 아이를 영영 볼 수 없을까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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