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계절] 미래(4)

by 지수

어느덧 시간은 9월의 중순으로 접어들고, 산속 온도는 빠른 속도로 차가워지고 있었다. 계절의 변화 속에서 해음은 홀로 굳건히 결심하고 있었다. 진돗개를 파란색 대문으로부터 구하고 말 거라고. 그래서, 이 세상이 회색빛이 아닌 초록빛으로도 반짝일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말 거라고.

9월 13일 금요일. 해음은 바로 오늘을 그날로 결정하였다.

‘오늘 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증거를 잡아야 해.’

해음은 오롯이 혼자서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다. 초록에게 더 이상 어떠한 짐도, 부담도 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을 한없이 끝으로 내몰았던 이 세상에게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아무리 산산이 무너져버린 존재라 할지라도 자신에게 소중한 것을 기꺼이 지켜낼 수 있다는 것을.



밤 11시경. 해음은 옆에 누워있는 산신이 잠든 걸 확인한 뒤 조용히 산속 한옥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빠르게 파란색 대문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확신할 수 없는 결과에 불안감이 폭풍처럼 밀려왔지만, 더 이상 용기를 미뤄선 안 된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야 이 개새끼야. 뭘 쳐다봐. 너도 내가 우습냐?”

마침내 파란색 대문 앞에 도착했을 때, 담 밖으로 집주인의 목소리가 아스라이 흘러나왔다. 이어 진돗개가 맞는 소리가 들려왔다. 내려치는 거친 소리와 희미한 신음소리의 반복에 해음은 금세 싸늘하게 굳어버렸다. 한순간 호흡을 멈추고, 손끝에서부터 차갑게 식어가는 감각을 느꼈다.

‘정신 차려, 박해음. 저곳에서 구해내려면 증거가 필요하다고.’

해음이 간신히 의식을 가다듬고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 녹음기를 켰다. 울컥 끓어오르는 감정을 삼킨 채, 대문 너머의 소리를 조용히 기다렸다.

“하여튼 마음에 드는 게 하나도 없어. 너 같은 걸 내가 왜 데려와선. 그때 그냥 네 새끼랑 불타서 죽게 놔두는 건데.”

진돗개를 향한 구타는 멈추지 않고 계속되었다. 해음은 조심스레 더욱 앞으로 나아가 핸드폰 카메라로 진돗개가 학대받는 모습을 촬영하였다. 분명히 이 장면을 남겨두어야 했다. 저토록 서슴없이 저지르는 죄에 대한 무게를 온전히 짊어질 수 있도록.

눈앞이 피로 얼룩지는 고통스러운 광경에 해음의 시야가 점차 흐려졌다. 저항 없이 흘러내리는 무해한 피를 씻어 내리기 위해, 두 눈동자는 슬픔, 절망, 분노 등 복합적인 감정이 마구 뒤섞인 눈물로 빠르게 채워져 갔다.

“그만하세요! 신고할 거예요!”

해음은 그릇된 폭력 앞에 목 놓아 소리쳤다. 속이 메스껍고 신물이 올라왔다. 두 손이 제멋대로 마구 떨려 왔다.

“아이씨-! 뭐 하는 년이야 넌-!”

해음이 다급히 촬영을 종료하고 애써 침착하게 핸드폰 화면 하단의 통화 아이콘을 터치했다. 집주인은 진돗개가 있는 곳에서 해음이 있는 곳으로 방향을 틀어 대문 밖으로 재빨리 걸어 나왔다. 두 눈이 풀린 채 쓰러진 진돗개는 해음을 향해 맥없이 두 눈을 깜빡였다. 해음은 숨 가쁘게 뛰어가며 숫자 키패드를 하나씩 눌러 나갔다.

곧, 해음의 뒤에서 차 시동이 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멈춰있던 트럭이 해음의 뒷모습을 선명히 비추고 주저 없이 해음에게 돌진했다. 뒤를 돌아본 해음의 손에서 핸드폰이 힘없이 미끄러져 나갔다. 핸드폰 액정은 단단한 콘크리트 바닥에 세차게 부딪혀 여러 조각으로 부서졌다. 그 파편에 무릎이 베이고 새빨간 피가 고여 흘러내렸다.

해음은 차마 증거가 담긴 핸드폰을 줍지 못하고, 달려오는 트럭을 피해 쉼 없이 달렸다. 턱 끝까지 숨이 차도록 노력했지만, 트럭과 해음 사이의 거리는 더욱 가까워져만 갔다. 이윽고, 트럭이 해음의 뒤까지 따라붙었고, 해음은 끝내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말았다.

세상의 모든 소리가 사라진 것 같았다. 오로지 자신의 심장 소리만 들렸다. 해음은 도망쳐야 한다는 본능 앞에서, 그저 거대한 공포 속에 몸이 굳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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