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진의 어머니는 우진보다 앞서 눈을 떴다.
“괜찮으세요?”
해음이 이제 막 의식을 회복 중인 우진의 어머니를 살펴보았다.
“왜 살렸어요…….”
“네?”
“날 왜 살렸냐고요…….”
우진의 어머니가 원망의 눈초리로 해음을 쳐다보았다.
“저기요.”
“우진이는 죽었나요…? 그 아이라도 편하게…”
“당신. 제정신이에요?”
“…….”
“…지금 이 세상엔 존재하지 않지만, 자기 목숨보다 자식을 더 위하는 사람이 있었어요. 그 사람은 어떻게든 같이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했어요. 이 세상에 단둘만 남겨졌어도, 자식을 위해 포기하지 않고 부모로서 책임을 다하며 살아갔어요. 자기가 무너지면 분명 자식도 무너질 테니까.
그리고…자신이 어떻게 되든, 어떤 끝을 맺든 상관없이, 오로지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만으로 선택하고 행동했어요. 생의 마지막까지요. 그게, 그 사람이 살아가던 방식이었어요.”
우진의 어머니는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지지 말고 강해지세요. 그리고 행복해지세요. 지금 우진이가 가장 바라는 건, 즐겁게 미소 짓는 엄마의 얼굴일 테니까요.”
우진의 어머니는 조금씩 얼굴을 일그리며 어깨를 들썩이기 시작했다. 이내 한동안 소리 내어 울음을 토해냈다. 다소 진정이 되자, 그동안의 이야기를 조심스레 해음에게 들려주었다.
그녀는 각종 글쓰기 공모전에서 수상을 받은 촉망받는 새내기 작가였다. 하지만 국문과 교수인 우진의 아버지를 만난 이후, 봄날의 새싹처럼 잎을 틔우던 그녀의 삶은 뿌리째 흔들리기 시작했다.
우연히 ‘작가의 밤’ 연회에서 마주친 두 사람은 한순간에 사랑에 빠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진을 가지게 되었다. 갑작스러운 임신 소식에 그녀는 불안하고 초조했다. 우진의 아버지는 그런 그녀와 묘하게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어느 날, 갑자기 한 여성이 그녀를 찾아와 머리채를 붙잡고 자신의 신세를 한탄했다. 그녀는 우진의 아버지가 이미 다른 여성과 결혼해 아이까지 둔 유부남이라는 사실에 깊은 배신감과 절망을 느꼈다. 그리고 세상이 무너질 만큼의 수치심과 공포심을 느꼈다. 삶을 압도하는 부정적인 감정이 한순간에 배 속의 아이에게 옮겨졌고, 우진은 태중에서부터 죄인으로 자라났다.
그녀는 몇 번이고 우진의 아버지를 찾아가 이 상황을 정리해 주길 부탁했다. 하지만 우진의 아버지는 그녀를 매몰차게 외면했다. 그리고 모든 상황의 책임을 그녀에게 떠넘겼다. 급격한 우울감과 무력감에 휩싸인 그녀는 더는 글을 쓰지 않았다. 우진을 홀로 출산한 뒤 점점 더 극심한 정신병과 생활고에 시달렸고, 다시금 우진의 아버지를 찾아가 생활비와 양육비를 요구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반응은 이전과 다르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녀를 불륜녀이자 미혼모로 낙인찍었다. 더러운 오물처럼 취급했다. 심지어 그녀의 가족마저도. 그런 상황에서 우진을 키우기란 결코 녹록지 않았다. 그녀는 서서히 미쳐갔다. 그녀의 모든 원망의 화살은 눈을 뜨고 감을 때마다 마주하는 우진에게 향했다. 우진이만 태어나지 않았다면 자신이 글을 못 쓰게 되는 일도, 생활고에 시달리는 일도, 마을 사람에게 벌레만도 못한 취급을 받는 일도 없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우진의 존재를 부정하는 일이 결국 자기의 존재를 부정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최선을 다해 우진을 피하고 방치했다. 어쩌다 대화를 할 때면 모진 말들로 우진에게 상처를 입혔다. “너 같은 건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 “너 때문에 내 인생이 망가졌다”는 그녀가 우진을 보고 자주 내뱉던 단골 대사였다.
이어, 마을 전체가 우진과 그녀를 함께 외면했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 하지만, 마을 전체가 우진과 그녀를 방관했다. 우진과 그녀를 향한 방임의 그늘 속에서, 그녀는 점점 더 온전히 무너져 갔다. 모든 삶의 의욕이 짓이겨 사라져 갔다. 결국, 그녀는 세상에 대해 백기를 들고 우진과 함께 생을 마감할 결심을 했다. 그녀는 우진에게 말했다. 지옥 같은 삶을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더 행복할 거라고. 죽으면 끝이 보이지 않는 이 고통도, 슬픔도 모두 다 해결될 거라고. 그러니, 이제 그만 함께 죽자고.
우진은 그저 조용히 그녀의 뜻을 따랐다. 그녀는 외부로 향하는 모든 창문을 닫은 다음 연기를 피웠다. 그리고 우진이 처음 마주하는 평온한 얼굴로 우진의 옆에 나란히 누웠다. 그렇게 우진과 그녀는 지옥보다 더 지옥 같았던 이번 생과의 이별을 준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