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쉼표
“엄마, 성경 필사 노트 주문할 때 됐는데.”
어김없이 주문의 날이 찾아왔다. 엄마는 성경을 필사하며 마음의 안정을 되찾고, 원하는 바를 기도한다.
어찌 보면 예수님의 말을 덕질하는 셈이다.
나 또한 꽤 긴 덕질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 시작은 중학생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2병’이라는 말이 생길 만큼 예민하고 감정적이던 그 시절, 나는 나만의 사춘기 대처법으로 ‘오빠들’을 덕질하기 시작했다. 각종 방송 스케줄을 챙겨 보고, 앨범을 모으고, 콘서트를 통해 실물을 영접했다.
그렇게나 열렬히 '오빠들'을 사랑했지만, 덕질의 끝은 이윽고 찾아왔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며 나의 덕질 본능은 잠시 잠들었다. 학교 적응과 학업 탓에 몸을 사린 것 같았다.
그러나 휴지기는 길지 않았다. 입시를 앞둔 고3 시절, 몸도 마음도 지쳐 있던 그때, 또 다른 오빠가, 아니, 동생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동생을 덕질하며 힘들었던 고3 시절을 잘 버텨낼 수 있었다. 이후 대학 시절, 취준 시절까지 덕질은 이어졌다. 그리고 이십 대 후반이 되어서야 비로소 덕질 유전자가 천천히 소멸하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내 덕질 유전자는 언제나 내가 가장 힘들었던 순간마다 발현되었다. 그 시절의 나는 무의식적으로 구원자를 원했는지도 모른다. 현재의 과제를 이겨내고, 남은 미래를 씩씩하게 걸어가기 위해서.
일부 사람들은 덕질에 부정적인 시선을 보낸다. 누군가를, 무언가를 사랑하는 마음을 유치하게 혹은 한심하게 바라본다. 하지만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그 덕질로 인해 누군가는 앞이 보이지 않는 절망 끝에서 다시 ‘삶’을 택한다는 것을.
덕질의 순기능은 대중문화 속에서도 자주 등장한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 속 팬들은 자신의 ‘최애’를 보며 웃고, 울고, 내일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 그것은 스타에게도 마찬가지다. 팬들의 사랑을 받는 그들 역시, 그 사랑으로 무대 위에 설 용기를 얻는다. 장기간 덕질 경험자로서, 팬과 스타의 유대를 가볍게 묘사하지 않고 진심과 애정으로 그려줘서 고마웠다.
덕질은 삶을 살아갈 이유이자, 하루를 버티게 하는 활력이다. 지금 삶이 무료하거나 고통스럽게 느껴진다면 덕질을 해보는 건 어떨까. 그 대상이 사람이든, 동물이든, 물건이든 상관없다. 그것이 지친 당신의 삶을 조금이라도 숨 쉬게 해 준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부디 당신의 덕질이 힘겨운 하루 끝, 따뜻한 '일상의 쉼표'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