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21세기를 앞둔 겨울 CCTV 제조를 하는 정직테크의 "이상하고 못생긴" 경리 김영미 과장(이유영)은 세상이 끝날 거라고 믿는다. 그녀가 미수금을 조사하면서 짝사랑하는 구도영 기사(노재원)가 횡령하는 것을 알고 그 돈을 메꿔주기 위해 부업으로 날밤을 샌다. 그걸 아는 구기사는 장례식장에서 영미에게 자수(?)를 하지만 때는 늦었고 김과장까지 덤테기를 쓰고 감옥에 간다. 출소하는 날, 두부대신 두유를 사들고 나타난 구기사의 부인 유진(임선우)과 엮인 영미는 자기가 모르던 새로운 세상속으로 들어가 움추렸던 날개를 펴기 시작하는데...
<69세>를 연출했던 임선애 감독의 최신작 <세기말의 사랑>은 상업영화라기엔 매우 부족하고 독립영화라기엔 러닝타임이 긴 "이상한"작품이다. 관객들은 영미의 삶을 보며 고구마 먹고 체한 느낌이 들다가 "삼육두유"를 보는 순간 25년전, 사반세기전에는 저런 인물들이 많았지라는 깨달음을 얻는다. 나 또한 호구였던 시절이 있었으니까. 거절하지 못하고 영리하지 못해서 언제나 남의 삶에 내 에너지를 갈아 넣었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구기사의 부인인 유진은 목조차 가누지 못하는 누워있는 장애인인데 성질이 지랄맞다. 영미는 어쩌다 그녀의 돌봄을 시작하면서 이전에 알지 못했던 더 비참한 삶을 응시하게 된다. 못생기고 흉터로 가득한 그녀의 삶은 움직이지 못하는 미녀에게 압도된다. 알고보니 유진 역시 깊은 채무의 삶을 살고 있었다. 세상이 망하기를 바랐던 영미는 제대로 세상으로 이끌려 나오게 된다.
영화는 마이너 감성이고 여성영화에 가깝다. 엄마들이라면 뭉클하게 다가오는 지점이 있다. <미스 홍당무>가 떠오르는 "미스 세기말"로 이유영이 열연했다. 단점이라면 아무리 치아를 이상하게 분장해도 이유영은 예쁘다는 점. 착하고 호구같은 사람들이 짊어지고 가는 이상한 세상이 펼쳐진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우리 역시 한두번은 아주 이상하게 살아오지 않았는가. 약자들의 낮은 포복은 오늘날도 현재 진행중이다. 점점 더 눈에 띄지 않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