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발표시간에 친구가 피구 올림픽대표가 되겠다고 하자 11살 헨리는 이어서 이렇게 말한다.
“우린 유명해지는 것에 대해 얘기 할 수 있지만 그건 실존주의적 위기에서 벗어나려는 위안 아닌가요? 내 말은, 토미 넌 결국 피구가 올림픽 스포츠가 아니란 걸 깨닫게 될 거야. 우리의 유산은 이력서에 뭘 써 넣거나 은행 계좌에 돈이 얼마나 많은가가 아니라 우리의 삶이 얼마나 행운이며 뭘 남길 수 있는 지를 아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지금 여기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 사는 동안 최선을 다 해야 합니다. 이것이 유산에 관한 제 생각입니다.”
지능만 천재가 아닌 조숙하고 철든 헨리는 싱글맘인 엄마 수잔(나오미 왓츠)와 동생 피터의 보호자 역할을 한다. 매일 주식을 하며 가난한 엄마를 웨이트리스에서 해방시켜주겠다고 말하는가 하면 창고에 틀어박혀 기가막힌 발명품을 고안하는 취미를 가졌다.
그에 비해 엄마는 따뜻하고 성실하지만 약간 철이 없다. 매일 게임을 즐기는 엄마에게 오히려 훈계하는 건 아들. 하지만 고단한 엄마에겐 게임도 필요하다.
영화 <북 오브 헨리>는 싱글맘이 겪어야 하는 모든 과정을 담아냈다. 그건 삶의 큰 기쁨과 잔잔한 일상을 넘어 무서운 파도와 심장을 뜯기는 고통까지 포함한다.
어쩌면 훌륭한 아들을 길러내는데에는 엄마의 순진함도 오히려 한 몫하는게 아닐까. 철없는 엄마를 보며 아들이 먼저 철드는 것도 하나의 육아 방법인듯. 그럼에도 엄마는 삶의 든든한 방패막이라는 건 변함이 없다.
영화는 가장 미국스러운 이야기다. 21세기 지구상에서 어쩌면 가장 패밀리다움을 유지하는 국가의 이야기. 그래서 우리와는 멀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영화에서 다루는 면면은 우리에게도 깊이 다가오는 측면이 있다. 현명한 엄마(혹은 아빠)가 되는 것은 가장 자기다운 엄마이면 되는 것이다.
영화는 잔잔하게 시작해서 슬픔의 문턱을 지나는 가 싶더니 후반부 위기에 빠진 소녀를 구하는 긴장감으로 마무리 된다.
엄마는 엔딩에서 자녀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는데 곱고 인상적이다.
"차례 차례 떨어지는 꽃잎은 혼자 떨어지는 게 아냐
곳이어 봉오리와 줄기도 같이 떨어지지.
꽃이 사라진다고 영원히 사라지지도 않아.
꽃은 땅 속으로 스며들어
흙을 기름지게 만들고
그 자양분으로 정원을 아름답게 만들어 주는 거야"
순전히 나오미 왓츠가 나온다고 해서 보게 된 작품. 역시 그녀의 연기는 몰입을 유도한다. <21그램>에서 슬픔에 관한 연기의 진수를 보여준 그녀는 주름이 늘긴 했어도 여전히 아름답고 깊이있는 연기력을 선보인다.
헨리역의 제이든 리버허는 <미드나잇 스페셜>에서 초능력을 가진 아이역을 소화했던 베테랑 아역배우로 여전히 대단한 배역을 소화해 내는 능력을 보여주었다. 조연들의 역할도 무난한, 따뜻하고 사려깊은 영화로 기억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