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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문 Sep 21. 2023

<대부>의 배신

그놈이 배신자다

한 단체의 선거에 관여한 적이 있다. 대표를 뽑는 선거인데 과열이 되자 정치인 못지않게 진흙탕이 되어 갔다. 학연, 혈연, 지연을 총동원하는 걸 넘어 상대진영은 우리 측을 비난하는 가짜뉴스를 살포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우리 측에서도 뭔가 정보가 새어 나가는 불안감이 작동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길 선거를 단 몇 표 차이로 지고 한참을 후유증에 시달렸다. 그러다가 영화 한 편을 고른 것이 <대부>였다.


'대부'를 검색하니 영화 '대부'는 한참 아래에 자리 잡고 있다. 그 사이의 공간은 각종 대부업체의 광고가 채우고 있다. 영화 속 대사처럼 '시대가 달라졌다'.

넷플릭스에 '대부'가 있었다. 2시간 56분이다. 클릭하기도 겁난다. 시작하면 중단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일단 포스터 이야기부터 해야겠다. 저 어두운 실루엣의 말론 브란도. 그 옆에 Godfather라는 글자를 조종하는 그림. 왜 제목이 '대부'인지 대충은 알았지만, 이제 확실히 깨달았다.


1972년작으로 1973년 국내개봉, 1977년 재개봉. 그리고 2010년 디지털 필름복원으로 3차 개봉했다.

넷플릭스에서도 4K로 복원됐다고 나오는데 원판이 4K가 아니던 시대라 그 화소를 만들 순 없고 다만 기가 막히게 잡티 없는 깨끗한 화면이었다.


1977년 동네 벽보에 붙었던 포스터를 첨 봤다. 도대체 무슨 영화인가 궁금해도 넘사벽이었다. 당시로는 미성년자관람불가, 지금의 청불이니까. 그래서 고등학교 때 비디오테이프로 봤다. 그때도 감동을 받긴 했지만, 이 영화를 최고로 꼽는 이른바 '대부'빠들의 인생고백이 너무 넘쳐나던지라 나는 살짝 비껴갔었다. 대부 골수빠 선배는 술만 마시면 '콜레오네가 말이야...' 하며 영화이야기를 하는 게 좀 짜증 날 때도 있었다. 그 마초선배는 결국 조직에서 배신당해 큰 고난을 치렀다.


돈 비토 코를레오네(말론 브란도)의 허스키한 목소리만으로도 소름이 돋는 시작부 장면은 그의 존재감으로 영화가 꽉 차는 느낌이 들 정도로 묵직했다. 그런데 실제로 그가 등장하는 러닝타임이 짧다는 건 의외였다. 한마디로 대부는 중년이 되어 봐야 진면목인 작품이다. 인생에 도사리고 있는 배신과 위법과 증오와 복수를 경험해야만 알 수 있는 영화인 것이다. 결국 고등학교 때 본 건 그저 활극에 다름 아니었다. 이 영화는 이탈리아계 미국인들이 피 흘리며 일군 이른바 사업조직, 부드럽게 말해서 패밀리 비즈니스에 관한 영화다. 가족을 끔찍이도 아끼는 이태리 가문들끼리 벌어지는 사투. 한치도 물러설 수 없다. 물러서는 순간 내가 죽기 때문에.


예전에는 등장인물의 이름도 많고 누가 누굴 배신하는지 헷갈리고, 왜 코를레오네를 찾아와 그리 청탁을 하는지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비토의 막내딸 코니(탈리아 샤이아-'록키'의 애드리안)의 결혼식에 온 손님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비토에게 얼굴도장을 찍으며 청탁의 줄이 끊이지 않는다.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억울함을 호소할 수 있는 대상. 그래서 그를 '대부'라고 부른다. 다만, 청탁하는 자는 언젠가 빚을 갚아야 했다. 기브 앤 테이크.. 정석이다. 단, 핏줄은 예외이다.


몰래 사진 찍으려던 FBI 카메라를 박살 내는 장면은 ‘신세계'에서 그대로 카피했다. 큰아들 소니(제임스 칸)는 워낙 다혈질이고 치밀하지 못한 탓에 비토는 둘째 마이클(알 파치노)을 신뢰했다. 하지만 영민한 마이클을 사업에 끌어들이기보다는 정치권에 진출시켜 의원이나 주지사로 만들려 했다. 이 대목은 '범죄와의 전쟁'과 유사한 대목이다. 아이비리그에 다니는 마이클은 요조숙녀 케이(다이앤 키튼)와 열애 중이다.


비토 코를레오네는 법조계, 정관계 인맥이 두터운 보스였다. 그는 인형놀이처럼 세상을 조종할 힘이 있었다. 그걸 이용하려고 다른 패밀리들이 그를 찾아와 청탁한다. 하지만 마약사업은 죄질이 나쁘다는 이유로 일거에 거절하고, 얼마 후 코를레오네는 피습당한다.



아버지가 피습당하자 코를레오네의 리더십은 붕괴되고 이를 수습할 사람은 오직 마이클 밖에 없었다. 그가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떠나야 할 때 케이는 사랑한다고 말해달라고 매달리지만, 마이클은 '지금은 말 못 해'라고 잘라버린다. 그는 아버지를 닮아 냉혈한이었다. 어쩌면 더 무서운 인간이다. 금발의 영국계인 케이는 마이클의 이탈리아 핏줄이 이해불가하다.



다시 보니, 역시 '대부'는 명불허전이다. 최고다.  말론 브란도가 크리스마스에 과일을 사다가 피습당하는 그 유명한 총격장면을 위에서 찍은 장면, '보니 앤 클라이드'의 기시감이 느껴지는, 기관총 세례로 누더기가 되는 소니의 살해장면. 그리고 마지막 코니딸의 세례식에 대부로 참석한 마이클.  신부님의 신앙문답에 '예'로 대답할 때  교차편집으로 진행되는 처절한 복수의 장면들.  마이클의 영혼은 악의 근원에 한걸음 더 나아갔다.


개봉 이후 이탈리아계 미국인들에게 한동안 비난을 받았지만, 이 영화는 미국 갱스터무비의 초석이 되었다. 단 1초도 버릴 장면이 없는 완벽한 편집과 촬영은 반세기가 지난 지금 봐도 그저 감탄이 쏟아진다. 이후 나온 모든 유사작품은 '대부'를 각주로 달고 있다.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는 '대부 1편'으로 그의 필모그래피를 구름 위로 끌어올린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1945년 언저리인데 70년대 초반에 그 레트로 화면을 완벽하게 재생해 낸 것은 수수께끼에 가까운 능력이다.


시대가 변해서 이제는 포스트 마약범죄 시대이다. 액션과 복수극을 위한 하드웨어는 당시와 비교불가할 정도로 발전하였지만, '대부'가 가진 그 카리스마와 아우라는 단지 누아르를 넘어선 인간드라마였기에 어떤 작품도 '대부'를 능가하기란 어려워 보인다. 그건 그 시대만이 허락한 특권이자 이제는 돌아올 수 없는 깊은 향수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최고의 명대사는 비토가 마이클에게 당부하는 말.

"바르지니와의 타협(meeting)을 주선하는 놈, 그놈이 배신자다. 명심해라."



"선거도 끝났는데 이제는 두 분이 만나서 화해하셔야죠.“ 지난 선거에서 끝내 속내를 드러내지 않아 의심되는 후배와 통화한 후 온몸에 소름이 쫙 끼쳤다. 왜 졌는지 알겠다. 바로 너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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