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 엘리엇>의 신산함

어린이날이 더 쓸쓸하다

by 블루문

어릴 적 어머니가 우리 남매를 데리고 창경원에 간 적이 있다. 그날은 어린이날이었다. 늘 바빴던 아버지는 회사에 갔고, 어머니가 의지적으로 애들을 끌고 나섰다. 뭘 봤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데, 석양이 비쳐올 때 고단한 버스 속에서 묘한 서글픔이 느껴졌던 게 생각난다.


십여 년 전, 어린이날을 맞아 오전엔 아이와 극장에 갔고, 오후엔 수영장엘 갔다. 잠수시간이 길어진 아이는 이제 물공포증을 어느 정도 이겨낸 듯 보였다. 수영장에서 처음 보는 아이와 함께 신나게 노는 걸 보니 흐뭇했다.


그 친구는 붙임성이 좋은 예쁘게 생긴 열 살 배기였다.

“넌 어디 사니?”

“이 근처 주택단지에 살아요”

“누구랑 같이 왔니?”

“저 혼자 왔어요”


그냥 거기까지만 물어볼 걸 그랬다.

“엄마는 어디 가시고?”

“일하러 가셨어요.”


“아빠는?”

“... 아빠는 안 계세요. 태어날 때부터 안 계셨어요.”


그 말을 하고 아이는 다시 깊은 잠수를 했다. 그리고 보니 어린이날에 아이를 데리고 놀러 가는 부모만 있는 게 아니다. 휴일에도 마트는 문을 열었고, 대중교통은 놀러 가는 가족들을 실어 날랐다. 그들의 자녀들은 어디선가 외롭게 놀아야 하고 지는 석양을 보며 묘한 서글픔을 감내해야 한다.


그날 저녁에 마트에서 사진을 찾는데 고객 한 명이 사진이 잘 안 나왔다며 주인을 꾸짖었다. 죄송하다고 머리를 조아리는 주인에게 고객은 책상을 힘껏 내려치고 돌아갔다. 공휴일 밤 열 시까지 일한 대가가 겨우 고함질인가.


집에 돌아와 TV로 <빌리 엘리엇>를 보았다. 광산노조파업을 선동하는 빌리의 아버지와 형. 하라는 권투는 안 하고 발레를 배우는 빌리. 일찍 세상을 떠난 엄마의 빈자리가 유독 크게 느껴지는 이 집 분위기에서 빌리는 춤을 통해 새처럼 훨훨 나는 유체이탈, 세상을 초월하는 기쁨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의 재능을 발견한 교사 윌킨슨 부인의 어려운 설득으로 그의 아버지의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BE1.jpg?type=w773


BE2.jpg?type=w773


시위대를 뚫고 탄광으로 향하는 버스. 그 안에는 파업 주동자인 빌리의 아버지가 타고 있다. 그걸 바라본 형이 뒤따라와 아버지를 붙잡는다. 미쳤어요?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빌리는 겨우 열한 살이다. 우린 희망이 없지만 그 아이에겐 기회를 줘야 하잖니?”

아버지는 형을 붙잡고 통곡한다.


이 장면을 볼 때마다 어김없이 눈물이 솟구친다. 젤 웃픈 장면은 오디션을 보기 위해 런던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빌리 부자의 대화.


“아빤 런던 가 보셨어요?”

“아니.”

“왜 여태 안 갔어요?”

“왜 내가 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영국의 수도잖아요?”

“런던엔 탄광이 없잖아....”


아, 이 썰렁하면서도 서글픈 답변이라니.

BE4.jpg?type=w773


결국 합격통지가 오고, 열한 살 아들을 왕립발레학교로 떠나보내는 아버지의 심경은 착잡하지만 그래도 아들의 미래에 촛불하나 꽂는다.


“아빠, 가서 싫으면 돌아와도 되죠?”

“농담하냐, 네 방 세 놨다.”


빌리가 떠나고 아버지와 형은 다시 헬멧을 쓰고 갱도로 향한다. 빌리가 떠나고 윌킨슨 부인은 빈 체육관에서 담배 한 대를 물고 생각에 잠긴다. 갱도의 숨 막힘과 텅 빈 체육관의 쓸쓸함, 이 두 장면을 삽입한 감독은 인생의 쓸쓸함을 제대로 알고 있다.


그 어린이날은 맑고 시원했다. 수영장을 나오니 서서히 해가 저물었다. 혼자서 수영장에 온 아이는 막대사탕을 물고 종종걸음으로 사라졌다. 돌아오는 길에 비친 석양에서 또다시 서글픔이 밀려왔다. 누군가에게 어린이날은 평일보다 더 잔인한 날이기도 하다. 이 쓸쓸함을 우리는 함께 나눌 수 있어야 한다.


keyword
이전 15화<대부>의 배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