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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문 Sep 13. 2023

아버지의 마음

<헐크>의 부정(父情)

70년대 어린 시절의 추억을 지배하는 여러 가지 이미지를 떠올려보니, 당시 TV화면의 장악력은 참으로 대단했다는 생각이 든다. 우선 초등학교 시절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양대 채널의 외화로 '6백만불의 사나이(TBC)'와 '특수 공작원 소머즈(MBC)'를 빼놓을 수 없다.


리 메이저스가 연기한 스티브 오스틴과 린제이 와그너가 연기한 제이미 소머즈의 인기는 주말의 재방송마저 놓칠 수 없게끔 만들었다. 아마 기억 속에 새겨진 첫 번째 외국인들의 이미지가 이들이 아니었나 싶다.

물론 형사 콜롬보도 있기는 하지만...


이들의 원제목을 살펴보면, "Six million dollar man"의 경우 국내제목과 같지만, 특수공작원 소머즈의 경우는 "Bionic woman-초인적인 여성"이 원제목이다. 지금도 인상적인 것은 6백만불의 사나이가 시속 60마일로 달리는 장면과 소머즈가 손으로 테니스공을 터뜨리는 인트로다.


성우들을 기억하는가? 6백만불의 사나이 스티브 오스틴은 성우 양지운이, 소머즈는 주 희가 맡았었다. 가끔씩 주인공들이 상대프로그램에 등장하는 바람에 목소리가 달라져 야릇한 혼동을 주기도 했다.


6백만불의 사나이가 끝난 공백을 자연스레 메워준 드라마가 바로 같은 '사나이' 시리즈인 "두 얼굴을 가진 사나이(1978)"였다. 더구나 주인공인 데이비드 배너 박사(빌 빅스비)의 목소리를 성우 양지운이 맡았기에 목소리의 바통터치도 함께 이뤄진 것이다. 원제목은 "Incredible Hulk -믿을 수 없는 거인".



인크레더블이란 단어를 초등학생이 소화하긴 쉽지 않았다. 감마선 과잉 노출로 분노가 극에 달하면 초록색 거인(루 펠리노 粉)으로 변하는 당시의 설정은 그야말로 획기적인 것이었다 (당시 TV는 흑백이기에 왜 초록색인지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한 회에 보통 1회의 변신이 이뤄지므로 50분의 분량 중 30분쯤 되면, 주인공의 눈색깔이 변하곤 했다. 그리고 거인이 모든 사태를 진압하고 나면 어김없이 맥기라는 기자가 간발의 차이로 그의 뒤를 쫓았다. 맥기의 목소리는 성우 배한성이 맡았다.

흔히 어릴 적에 괴물은 악역을 담당하기 마련이었는데, 헐크는 처음으로 역지사지(易地思之)를 일깨워준 캐릭터였다.  ---------외모로 판단하면 안 돼!-----------

지금 어린이들에겐 슈렉이 그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여하튼, "두 얼굴을 가진 사나이"는 내 어린 시절의 소중한 아이콘 중의 하나다.

이 안 감독의 "헐크(2003)"에서는 에릭 바나가 나왔지만 우선 외형상으로 영화 속 헐크는 TV와는 달랐다. 이 안 감독은 헐크에 킹콩의 콘셉트와 와호장룡의 비행기술을 도입했다(적어도 가공할 파괴력과 고공점프는 충분한 볼거리다).  내용면에서도 두 작품은 상당히 멀게 느껴졌다.


"두 얼굴을 가진 사나이"의 배너박사는 철저히 혼자였던 반면, 영화 "헐크"에서의 배너박사는 실험 제물로 아들을 택하고 있다. 비뚤어진 과학자의 지독한 집착은 혈연을 최악의 인연으로 만들어 버리고, 아들의 삶에 가장 두려운 상처만을 남겼다.


물론 세상의 모든 아버지가 인자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만 각인되는 건 아니다. "로드 투 퍼디션"에서의 톰 행크스처럼 가족을 위해 살인을 하는 아버지가 있고, "샤인"에서처럼 강박에 가득 차 아들을 미치게 만드는 부정(父情)도 있다. "빌리 엘리엇"에서 아들의 희망을 위해 고단한 오늘을 견뎌내는 아버지와 만화 "공포의 외인구단"에서 까치의 아버지처럼 허구한 날 술만 마셔대는 무기력한 Daddy도 있다.


"공포의 외인구단"에서 가슴에 남는 장면이 있다. 매일 비틀거리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동네사람들이 비웃을 때 아들은 술 취한 아버지를 부축하며 집으로 향한다. 그리고 속으로 말한다.

'아무리 주정을 부리셔도 전 부끄럽지 않아요. 내 아버지니까요'


누구에게나 아버지는 큰 산이요, 거목(巨木)이다. 아무리 불효자라 할지라도 아버지는 그에게 역사(history) 일 수밖에 없다. 영화 "헐크"에서는 이런 부자간의 관계를 광기 어린 애증으로 묶어버렸다. 비록 마지막 장면이 암시하는 화해의 의미를 대충은 이해하겠지만, 이미 보편적인 정서(情緖)에서 멀찍이 벗어난 관객에게 속편에의 예감은 큰 유혹이 되질 못했다.

한편, TV시리즈 "두 얼굴을 가진 사나이"의 주인공 빌 빅스비는 자신의 세 살박이 아들이 헐크로 변하는 아빠를 보고 사실인 줄 알까 봐 무척 고심하며 TV를 보지 못하게 당부했다고 한다. 아버지의 마음이란 바로 그런 게 아닐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아들은 원인 모를 병으로 6살이 되던 해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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