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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문 Oct 15. 2023

어떻게 살 것인가

<1987>이 전하는 메시지

영화 <1987>을 바라보는 MZ세대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여러 이야기로 설득을 해 보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가장 아프게 다가온 그들의 말은 다음과 같았다.


"왜 꼭 누군가가 희생되어야 하나요? 그건 불공평하잖아요."



1987년 1월, 입학을 앞두고 등록을 하러 갔던 대학가의 분위기는 살벌했다.  서울대 언어학과에 다니던 박종철 학생이 사망했다는 뉴스가 터진 것이었다. 그때는 언론이 진실을 보도하기 어려운 시기였기에 다들 무슨 일인가 궁금했다.


그리고 3월,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 마이마이를 선물 받고 해맑게 웃던 김태리처럼 나 역시 들뜬 마음으로 꿈에 그리던 대학문을 열었다. 하지만 캠퍼스의 분위기는 내가 기대한 낭만 대신 긴장으로 가득했다.



"턱 하니 억 하고 쓰러지는 막걸리~"


그 해 오월, 모든 대학축제는 독재정권에 대한 풍자가 주를 이뤘다. 광주의 진실을 깨닫고 시대의 오욕을 체감한 젊은이들이 하나둘씩 투사가 되었다. 그러나 나는 애써 외면하며 앞서기를 주저했다. '그런다고 세상이 달라지겠어?'


87학번에겐 다큐멘터리에 다름 아닌 영화 <1987>. 인물 하나하나가 실제처럼 묘사되어 소름이 끼쳤다. 특히 대공처장 김윤석은 살아있는 악마 그 자체. 하지만 그에 맞선 사람들이 있었다.





그가 교회까지 쳐들어와 난장판을 만들고 바라본 스테인드 글라스에 비친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마치 하느님의 영으로 보이는 비둘기들이 그 악마에게 쫓기는 설경구를 돕는 장면은 마지막 문익환 목사님의 외침과 함께 역사를 관통하는 한줄기 빛처럼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6월이 왔다. 연세대 이한열 학생이 전경이 쏜 직격탄에 맞아 사경을 헤맸다. 우리는 학기말 고사를 거부했다. 스크럼을 짜고 행진할 때 나는 심장이 두근거렸다. 멀리 서 있는 다스 베이더 같은 전경들의 마스크는 보기만 해도 무서웠기에. 계속되는 집회가 숨이 막혀 근처 영화관으로 도망쳤다. 낡은 재개봉관에서 상영중인 <영웅본색>의 주윤발에 완전히 매료되었고, 두 시간 동안 모든 현실을 잊을 만큼 푹 빠져들었다. 하지만 영화관을 나와 작열하는 태양이 나를 비추는데 갑자기 눈물이 흘렀다. 설명할 수 없는 묘한 슬픔의 감정이었다. 그날 밤, 이한열 열사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삼십육 년이 지나 영화로 다시 만난 그 해 여름을 장준환 감독은 거의 완벽하게 재현해 냈다. 그리고 그때 앞서갔던 학우들에게 용서를 빌 기회를 주었다. 어두운 극장에서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의 의미를 나는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다.



<1987>은 내가 서 있는 이 자리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다시 곱씹게 만드는 영화다. 지난 삼십여 년, 미안했기에 치열하려고 노력했다. 엊그제 5년간 수행한 연구의 공로를 인정받아 수상을 하러 간 곳이 우연히도 연세대학교였다. 상을 받은 후 뒷동산에 있는 이한열 열사의 동판 앞에 섰다. 햇빛은 그의 모습을 통과하여 내게 찬란히 비취었다. 또다시 울컥했다. 박종철과 이한열, 나는 그들의 희생 위에서 삼십여 년을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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