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닐하우스>의 점입가경
문정(김서형)은 시력을 잃은 태강(양재성)과 치매를 앓고 있는 태강의 아내 화옥의 간병인이다. 태강은 전직 교수로 2층 양옥집에 살고 있는데 자식은 해외에 있어 영상통화만 한다. 그러니 삼시 세 끼를 차려주는 문정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한다. 어느 날 의사 친구 희성(정종준)에게 초기 치매진단을 받게 되자 태강은 앞날의 걱정이 태산 같다. 문정은 가끔씩 자학의 행동으로 자신의 빰을 후려치는데 상담소에서 만난 정신지체 3급 장애인 순남(안소요)은 그런 문정에게 끌린다. 그리고 철없이 떼를 쓴다. "언니, 우리 같이 살래요?"
우연히 선택했는데 운 좋아 제대로 걸리는 영화가 있다. <비닐하우스>도 그런 경우다. 영화는 마지막까지 반전의 반전을 거치면서 관객의 손에 땀을 뿌린다. 이 시나리오는 그래서 웰메이드다. 억지가 아닌 '그럴 수 있겠구나'를 반복하게 되는 연출이다.
동시에 현대를 사는 가족의 모순을 그린다. 어떤 이는 유복해도 자식과 떨어져 살고, 어떤 이는 가족이 없고, 어떤 이는 가족이 있어도 함께 살 수 없는 경우의 수가 나온다. 그러면서도 쉽게 내뱉는 말이 "우리 같이 살면 되잖아요?"다.
같이 산다는 건 물리적으로 한 공간에 머무는 걸 의미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같이 살자는 건 우기는 것이다. 그래서 틈만 나면 남의 공간을 파고드는 욕망이 스멀스멀 기어오른다. <기생충>에서 남의 공간에 얹혀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우화처럼 보았는데 <비닐하우스>역시 자력으로 살 집을 마련하지 못하는 존재들의 외로움을 쓸쓸히 내뱉는 풍자에 다름 아니다.
"엄마도 여기 있는 게 좋잖아. 따뜻한 밥 먹고 과일 먹고."라고 말하는 문정이 자신에게 엉겨 붙는 순남을 내칠 때는 냉정하다. "다시 센터로 가면 되잖아요."
장애인 센터와 치매환자의 요양원은 극 중에서 대칭을 이루는 구성이다. 이들이 진정 원하는 곳은 따뜻하고 부드러운 밥이 나오는 집이다. 결핍은 그렇게 사회 하층부에서부터 차오른다.
결국 문정의 진심은 순남에게 향한다.
"순남 씨 이제 어른이잖아. 그렇게 맞을 거면 참지 말고, 도망치지 말고 맞서요. 정 안되면 죽여버리던가."
김서형의 문정은 새로운 캐릭터의 탄생이다. 부일영화상 여우주연상은 당연한 귀결이다. 이 밖에도 눈먼 태강역을 소화한 양재성의 연기에도 박수를 보낸다. 늘 TV에서 뵙던 조연 할아버진데 연기력이 이 정도인 줄 몰랐다. 순남역의 안소요 역시 진한 인상을 남겼다.
절망과 탄식으로 장식하는 엔딩은 오히려 장렬하게 다가왔다. 그건 극 중에 등장하는 모든 모순과 질곡과 중압감을 일순간에 날려버릴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라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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