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빙>이 감동적인 이유
디즈니 플러스의 <무빙>의 인기가 심상치 않다. 요즘 모였다 하면 희수(고윤정) 너무 예쁘고, 봉석(이정하)이 귀엽다고 난리다. 희수의 아버지이자 주인공인 장주원(류승룡)은 극 중 괴물이라 불리는 구룡포 역이다. 아무리 맞아도 다시 치유되는 캐릭터. 그는 순수한 로맨티시스트다. 한번 행님은 평생 행님이고 의리에 몸을 던진다. 그런데 배신을 당하자 어쩔 줄 모르고 칩거한다. 거기서 다방 언니 황지희(곽선영)를 만난다. 이들의 로맨스는 처절하다. 피투성이가 되어서야 비로소 서로를 인식하는 만남의 시작부터 안타까운 헤어짐까지 짧다. 그런데 희수에게 그 초능력이 유전되었다.
하늘을 나는 슈퍼맨 문산 김두식(조인성)의 로맨스도 슬프고 짠하다. 아들 봉석이가 먼저 등장해서 하늘을 나는 초능력을 보여주고 이어 그 기원을 밝히는데 아버지 김두식이 안기부의 블랙요원으로 뭔가 큰 사고를 친 후에 같은 요원출신의 이미현(한효주)과 과수원에서 숨어 사는 망중한의 사랑을 아련하게 그렸다. 엄마 미현은 그 후 돈까스 집을 운영하며 은거하는데 행여 아들의 초능력이 노출될까 노심초사한다.
포브스지(Forbes)는 '무빙'을 "호소력 짙은 감정적 서사를 지닌 이야기. 탄탄한 스토리가 계속해서 흥미를 자극한다”라고 평했다. 미국 잡지 버라이어티는 '오징어 게임'에 이어 아시아에서 탄생한 히트작이라고 극찬했다. 한국의 독특한 슈퍼 히어로 이야기인 '무빙'의 성공 요인은 젊은 세대와 중년 모두를 아우르는 트렌디와 레트로 모드를 함께 다루는 데 있다. 그만큼 시청자 층이 두텁다. 그 삼십 년의 간극을 모두 이해하는 나로서는 부모들의 이야기에 더욱 공명하게 되는데 특히 감동하고 눈물짓는 지점이 어디인지 분명히 알게 되었다. 그건 자녀들을 위해 모든 걸 희생하는 부모의 모습이었다.
세상의 모든 부모가 마찬가지겠지만, K-부모만큼 자식들을 위해 살과 뼈까지 발라내어 희생하는 부모가 있을까. 오감이 특별히 발달된 미현은 아들이 잘못될 까 싶어 자신이 노출되는 매우 위험한 상황을 감내하고 적진으로 들어간다. 구룡포도 마찬가지다. 희수에게서 벌어진 사고가 우연이 아님을 깨닫고 학교로 쳐들어간다. 거기엔 그들을 잡기 위한 그물이 쳐 있다는 걸 알면서도. 또 다른 괴물 이재만(김성균)도 마찬가지다. 아들 강훈을 위해서라면 불구덩이라도 들어갈 판이다. 아마도 이런 장면들이 전 세계인들에게 감동을 선사하지 않을까.
대한민국에서 삯바느질로 자녀들을 훌륭히 키워낸 스토리는 너무나 많아서 열거하기 힘들다. 그렇다면 왜 우리나라의 자식사랑이 유별난 것일까. 오천 년 역사 가운데 외적의 침략을 받은 횟수는 거의 천 번에 가깝다. 평균 약 5년마다 한 번씩 바깥의 공격에 시달렸다. 중국 변방의 오십여 민족이 한 나라에 흡수되었지만, 유독 한반도만큼은 반만년 역사에서 그들에 동화되지 않았다. 그만큼 자손의 정체성을 지켜내기 위해 몸을 던져 온 부모들의 유전자가 우리에게 있다. 역으로 자녀들은 그런 사랑에 감읍하여 부모를 섬긴다.
아이의 교육을 위해서라면 한국의 부모들은 물불을 가리지 않고 지원한다. 사교육비를 지출해 본 부모들은 거기에 본인의 등심과 내장과 선지까지 담겨 있음을 알 것이다. 핵심 부위를 같이 끓였으니 깊은 맛이 나겠지만, 본인은 머리만 남은 것이다. 그런데도 자식이 잘 되길 바라기에 머리 고기까지 꺼내야 한다. 대학생의 수강신청까지 돕고, 이후 취업을 위해서도 동분서주한다. 그것뿐인가 결혼해서 손주를 낳으면 그걸 맡아서 키워주는 게 당연하다.
한편, 우리나라처럼 서른이 훌쩍 넘어도 부모와 동거하는 사례를 서구에선 이상하게 바라본다. 팔순 노모가 오십이 넘은 자식이 밥 잘 먹었는지 걱정하는 것을 보면 기겁한다. 그곳에선 자식과 부모의 결별이 스무 살에 이뤄진다. 자식이 어릴 때 물고 빠는 건 그들이 더하다. 하지만, 그 점성(粘性)은 이십 년 간만 유효하다. 사교육비는 상상도 못 하고 대학 등록금도 자식이 대출을 받아 해결한다. 좋은 직장에 취직하건 아니건 그다음은 알 바 아니다. 어쩌면 쿨한 MZ세대들은 이런 부모를 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녀들아, 한국에서 부모를 만난 것은 전생에 나라를 구했기 때문인 줄 알라.
시청자들은 자녀들의 초능력이 빨리 표출되어 빌런들을 쳐부수기를 기다리는데 그 부모들이 실드를 치니 이거야 원, 속 답답하다. 하지만 그들이 내 자식이라 생각하면 너무나 쉽게 그 심정이 이해된다. 남들에게 평생 아쉬운 소리를 못하던 자존심 강한 지인 K 씨. 자식문제로 문의 전화를 하는데 어찌나 어렵게 말씀을 하시는지 내가 다 송구스러웠다. 부모는 자식을 위해 한번 쪽 팔리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다만 부모님들이여, 제발 자식을 화나게 만들지 마시라. 자식은 당신의 욕망을 이뤄줄 존재가 아니올시다. 그러니 그저 응원만 해 주시오. 직장도 결혼도 그들이 선택하는 거니까. 손주를 낳든 말든 그것도 그들의 몫이요. 바로 거기서 큰 딜레마가 생기죠. 나는 너를 위해 몸과 맘을 다 바쳤는데 네가 이럴 수 있어? 이럴 수 있소이다. 끝까지 사랑하고 지원해 준 것으로 역할은 다 한 것이요. 당신은 부모에게 효를 다했는데 자식도 그래야 한다고? 그래서 낀 세대는 억울한 것이요. 그게 어려운 분들은 '무빙'을 보면서 고통의 대물림을 끊으려고 목숨을 거는 장면을 보시길. 쉿, 사실 K부모는 모두 초능력자랍니다. 지금 당신의 숨은 능력을 찾아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