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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문 Oct 07. 2023

알고 보면 강한 민족

<1947 보스턴>의 끈기





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한 손기정은 일장기를 달고 기미가요를 들어야 하는 치욕을 겪었다. 해방이 되고 1947년 미국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 초청을 받지만, 보증금이 없었다. 여전히 서러운 시절이었다. 미군정하의 조선은 아직 대한민국이 아니었다. 그래서 미군의 최고 책임자 하지중장은 마라톤 대회 참가를 지원하지 않았다. 덕수궁 앞의 출정식을 보러 온 국민들은 즉석에서 모금을 시작하고 극적으로 재정이 확보된다(사실과는 다르다고 한다. 실제로는 미군들의 모금과 연희전문학교 이사장의 도움이 컸다).




강제규 감독의 <1947 보스턴>은 우리가 아는 마라토너 서윤복의 이야기다. 그는 효자였고 병든 어머니께 서낭당 음식을 가져다 드리기 위해 매일 산을 뛰어오르면서 허벅지의 근육이 형성됐다. 



한 많은 한반도에서 살면서 아직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국가에서 일장기 대신 성조기를 달고 달리라는 명령에 우리는 좌절한다. 그러나 오뚝이처럼 다시 도전하는 그 과정에 관객은 영화 속에서 주인공과 하나가 된다. 



이런 전기영화에서 많은 걸 기대할 필요는 없다. 다만, 1947년으로 함께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가서 낡은 운동화를 신고 달리는 서윤복 학생을 측은해하고 군용기를 타고 5번의 비행을 거쳐 며칠 만에 보스턴에 도달하는 우리 선수단을 보며 얼마나 어려운 시절을 보냈었는지 실감하면 되는 것이다.


보스턴 현지에서 실전 마라톤을 보는 듯한 로케이션에 놀라고 서윤복 학생이 후반에 역전으로 치고 나왔다는 사실에 더 놀란다. 남승룡 코치가 페이스 메이커 역할을 한 것은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고, 손기정 코치의 스파르타식 지도로 결국 세계 신기록을 만들어 낸 역사적 사실에 관객은 뿌듯함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이 영화가 주는 가장 큰 선물은 눈물샘을 자극하는 후반부에 있다. 어느 순간 두 눈에서 흘러내리는 뜨끈한 액체는 볼을 타고 아래로 뚝뚝 떨어진다. 그건 그 시절 죽을 고생으로 달렸던 서윤복 선수 개인사에서도 기인한 것이지만, 그 대책 없는 시대를 살아간 우리 할아버지들의 아픔이 손자뻘인 관객에게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서윤복 어머니도 가엾고, 돼지고기 삶아서 겨우 몸보신시켜주었던 옥림(박은빈)에게도 감동을 받고, 돈이 없어 쩔쩔매던 손기정과 남승룡의 모습에도 눈물이 났다. 그리고 마지막 결승점을 향해 내달리는 장면 이후 이어지는 실제 사진들을 보면 누선의 수도꼭지가 풀린다.


확실히 우리 민족은 강인하다는 걸 새삼 느꼈다. 악바리 근성이 있다. 그게 오늘날의 번영된 조국을 만든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 시절 그 고생 한 만큼 후세들의 노력과 성숙도 필요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눈물 오랜만이다. 단지 내가 갱년기라서 그런 건 아닐 것이다. 어떤 관객은 박수를 쳤다. 나도 치고 싶었다. 울고 싶은 분은 극장으로 가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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