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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문 Oct 01. 2023

<어느 가족>의 연금

가족은 무엇으로 사는가



어쩌다 보니 연금수령자가 되었다. 은행원의 권유로 가입했던 개인연금을 십 년간 납부했고, 55세부터 지급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낼 때는 그렇게 아깝던 금액이 항아리 속에 담겨 있다가 큰 금액은 아니라도 종신토록 지급된다는 사실이 신기하면서도 확실히 인생의 후반으로 접어들었다는 사실에 현타가 왔다.


세 평 남짓한 공간에서 먹고 놀고 지지고 볶는 네 식구. 거기에 한 명이 합류한다. 껍질을 벗지 않은 매미 유충 같은 다섯 살 린. 가족에게 매 맞고 거의 버림받은 아이를 받아준 이 사람들의 정체는 뭘까. 2018년 칸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어느 가족>은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화두로 던진다. 삶을 이어가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는 일용할 양식과 거주할 수 있는 집이다. 그래서 할머니의 작은 집과 몇 푼 안 되는 연금은 이들이 생활을 이어나가는 가장 강력한 기반이었다.


로또복권과 연금복권 중 선택하라고 하면 난 연금복권이다. 목돈을 주면 내가 관리하다가 손실을 입기 쉬운 반면 연금형식의 지급이야말로 가장 안정된 수입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일단 연금이 나오면 거기에 맞춰 삶을 계획할 수 있다. 액수에 관계없이 수지를 맞춰 과부족에 따라 내가 얼마의 노동으로 나머지를 채울지가 명확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국민연금이야말로 생존의 마지노선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가끔씩 의문을 가질 때가 있다. 핵가족이 되면서 자녀들이 분가를 하게 되면 그때마다 필요한 집과 전자제품, 살림살이를 마련하느라 허리가 휜다. 자녀가 다섯 명이라면 다섯 가정을 세우는 비용이 필요한데 과연 이게 맞는 것일까. 옛날 대가족일 때처럼 한 가정의 인프라를 공유한다면 훨씬 경제적이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전기세와 수도세, 재산세를 각각 내면서 집집마다 세탁기와 건조기를 마련해야 하는 것이 중복투자는 아닐까. 실제로 세대분리형 구조를 가진 아파트도 있긴 하지만 영화에서처럼 할머니의 연금으로 다섯 식구가 버티는 걸 보면서 난 우리의 소비가 너무 방만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어느 가족>의 식구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진짜 가족이 아니었다. 하나같이 사연 있는 사람들로 혈연이 아닌 특별한 인연이었다. 그런데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아도 사랑과 환대가 넘치는 것이 놀랍다. 어린아이 린도 낯선 가족과 머물면서 닫혔던 마음의 문이 열리기 시작한다.


"네가 맞은 건 네가 잘못해서가 아니야.

사랑하니까 때린다는 건 거짓말이야.

사랑하면 이렇게 안아주는 거야."


할머니의 연금이 바탕이 되지만 이들은 세탁소 노동자, 건설현장의 일용직으로 일을 한다. 용돈이 부족해서 좀도둑질하는 어린이와 변태샵에서 일하는 언니는 다소 예외적인 직업이 되겠지만. 그런데 할머니와의 대화에서 관객의 정곡을 찌르는 게 있다.


"피 안 섞여도 좋잖아~"

"그래, 쓸데없는 기대를 안 해도 되지..."


톨스토이의 소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는 길가의 버려진 노숙인을 환대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통해 세 가지의 질문을 던진다. 사람의 마음속에는 무엇이 있는지,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은 무엇인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지. 사실 노숙인 미하일은 천사였는데 그는 하나님께 거역하여 벌거벗은 채 땅에 떨어지게 되었고 이 세 가지 깨달음을 얻게 되면 다시 하늘로 올라갈 수 있었다.


"제가 사람이 되었을 때 살 수 있었던 것은 스스로 자신을 돌보아서가 아니라 지나가던 사람에게 있던 사랑 때문에, 그리고 그와 그의 아내가 저를 가엾게 여기고 사랑한 덕분이었습니다. 고아들은 어머니가 돌봐서가 아니라 생판 남이지만 아이들을 가엾게 여기고 애정을 준 여인의 마음속에 있는 사랑 덕분에 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은 자신의 행복을 궁리한 덕분이 아니라 사람 속에 사랑이 존재하기 때문에 살고 있습니다." 






<어느 가족>처럼 적은 연금만 있어도 우리는 거친 세상에서 생존할 수 있다. 하지만 연금이 있어도 톨스토이가 말한 '사랑'이 없다면 우린 버티기 어렵다. 영화 말미에 다섯 살 아이는 본 대로 기억하고 받은 대로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경찰이 조사하면서 린에게 "바닷가 놀러 갔었니? 뭐가 좋았어?"라고 묻자 "점프!"라고 말하는 아이. 어린 생명은 어쩌면 동냥젖 같은 타인의 사랑을 먹고 드디어 살아갈 힘을 얻었다. 아무리 세대분리형 아파트로 공간을 공유한다 해도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사랑으로 울타리 친 곳이 가족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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