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노키오>의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작년 말 공개된 <피노키오>를 뒤늦게 본 소감은 "완벽하다!"였다.
어린 시절 동화로 기억하는 피노키오. "사람이 되고 싶다. 사람이 되고 싶어..."라는 만화 주제가로도 유명했던 추억의 아이콘은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으로 부활했다. 그것도 할리우드 최고의 장인 기예르모 델 토로에 의해.
목각 예술가 제페토는 사랑하는 아들 카를로를 잃은 슬픔에 하루하루를 고통 속에 살아간다. 그러다가 술에 취한 어느 날 아들의 묘지 옆에 자라난 소나무를 저주하며 도끼로 베어낸 후 목각인형을 만든다. 그다음 날 일어나 보니 자신이 만든 인형 피노키오가 스스로 움직이며 말을 하는 게 아닌가.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른 채 그를 가두고 성당으로 향한다. 하지만, 곧바로 뒤따라온 피노키오는 성당 안에서 제페토가 만든 목각 예수상을 바라보며 신기해한다. 그러나 같은 목각이지만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차가웠다. 악마의 화신이라느니 괴물이라느니 하면서 제페토에게 압박을 가하기 시작하는데...
이야기는 귀뚜라미 크리켓(이완 맥그리거)의 내레이션으로 진행된다. 길 위를 떠다니는 영혼들을 수호신(틸다 스윈튼)이 피노키오의 몸속으로 들여와 살아있는 존재로 만든다. 사실 피노키오는 옷도 모자도 쓰지 않은 약간 기괴한 모습이다. 일종의 프랑켄 슈타인 같은 미완의 작품이라고나 할까. 이것은 감독의 의도이기도 했다.
제페토 마저도 아빠라고 부르는 피노키오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늘 죽은 카를로와 비교했다. 그래서 피노키오는 엇나가기 시작하고 자기가 짐이 되기 싫어 아빠를 떠나려고 했다. 그러다 만난 빌런 볼페 백작에 의해 노예계약에 사인하고 유랑극단을 따라 매일밤 공연을 한다. 그런 피노키오를 찾아 떠나는 제페트의 여정. 둘은 만날 듯 만날 듯 하지만 손이 닿지 않고 멀어져만 간다.
영화를 본 후 30분짜리 메이킹 필름을 보면 더욱 이 영화에 감탄하게 된다. 한 컷 한 컷이 모두 스톱모션을 촬영하여 이어 붙인 것이고, 캐릭터들의 창조기술과 수작업, 세트의 제작과 스토리텔링도 완벽하다. 전혀 끊김 없는 화면의 전개는 실사 영화로 착각하게 만드는데 그 모든 색감과 질감에 기예르모 감독의 숨결이 스며든다.
이런 작품이 만들어질 수 있는 토양이 부러웠다. 창작자들이 즐겁게 작업하고 캐릭터들을 생산해 내는 인프라. 기계적인 작업으로 인형들을 움직여 내는 시스템, 미술작업, 거기에 오케스트라까지.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이 모든 작업이 너무나 즐거웠다고 한다. 공동연출인 마크 구스타프슨이 스톱모션 애니 쪽을 담당했는데 탁월하다.
이 영화는 가족 모두가 상영할 수 있고 어린이나 어른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다. 순진무구하고 맑은 피노키오의 영혼에 의해 왜곡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오히려 구원을 받는다. 무솔리니 정권의 파시즘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고 그 안에서 펼쳐지는 모험은 <판의 미로>를 연상케 한다. 더불어 이 영화는 죽음, 삶, 영생이라는 주제도 다룬다.
피노키오 : 같은 목각인데 왜 예수 저 사람은 좋아하면서 나는 싫어할까요?
제페토 : 사람들은 잘 모르는 걸 무서워할 때가 있어. 널 알고 나면 좋아하게 될 거다.
하지만 제페토 역시 여러 가지 사건을 거치면서 피노키오를 비로소 진심으로 사랑하게 된다. 그래서 마지막 대사는 가슴을 친다.
"너는 카를로도 그 누구도 아니다. 피노키오야... 널 있는 그대로 사랑한다."
피노키오가 생명을 얻듯이 무생물인 캐릭터들을 살아있는 생물처럼 구현해 낸 감독의 솜씨, 미학적 완성도에 기립박수를 보낸다. 한마디로 전설 속에 박제된 동화 피노키오에 제대로 된 생명력을 불어넣은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피노키오가 처음으로 맛본 핫초코, 추운 날 한기를 이기기 위해 카를로가 아빠와 함께 마셨던 음료인데 영화를 다 보고 나면 당신은 핫초코 한잔이 마시고 싶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