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블루문 Oct 10. 2023

그 곳에 가면 행복할까?

<화란>의 희망없음



학교에서 사고 친 연규(홍사빈)는 집에 가도 쉴 곳이 없다. 새아빠는 매일 술에 절어 연규를 패고 그런 연규를 감싸주는 건 이복동생 하얀(비비)뿐이다. 어느 날 일하던 중국집에서 우연히 조폭 중간보스 치건(송중기)을 만나면서 연규의 삶이 바뀌기 시작한다. 어차피 어느 곳에도 마음 둘 곳 없던 연규에겐 어디가 지옥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



무자비한 자본의 폭력은 이제 미성년 학생들에게 까지 침습했다. 사실 처음은 아니다. <비트>의 정우성이 그랬고 <친구>의 장동건도 그랬다. 하지만 홍사빈은 불량 청소년이 아니었기에 그 연장선상에 있지는 않다. 이제 조폭의 위력은 정치에서 시작해서 학원까지 연결된 전주기적 시스템을 양산한다.




필요한 돈을 융통하기 위해 뭐든지 해야 하는 연규. 처음에는 그의 합류를 반대하던 치건도 물불 안 가리고 일하는 연규에게 신뢰를 보인다. 복잡한 가정사라는 역기능을 공유한 두 사람은 하나가 된다.


"형님이라고 하지 말고 형이라고 해."


김창훈 감독의 <화란>은 칸 초청을 받은 K누아르. 하지만 기존 조폭영화와는 달리 사회성도 짙다. 계급의 모순을 적시하고 정치의 무능함을 꼬집는다. 업그레이드된 <비트> 혹은 <아수라>의 현실버전이라고도 할 수 있다.


왜 제목이 화란일까. 화란和蘭이 네덜란드의 음역 어라는 걸 아는 세대는 나이를 인증한다. 7-80년대까지도 화란이라는 말은 자주 융통됐다. 화란은 네덜란드의 다른 말인 홀랜드에서 유래했다. 일본에서는 한 발짝 더 나아가 오란다라고 부른다.


연규의 꿈은 엄마와 네덜란드에 가서 사는 것이다. 치건이 그 이유를 묻자 이렇게 답한다.


" 그 나라는 다들 사는 게 비슷하대요."


치건은 어쩌면 연규보다 더 깊은 어둠을 안고 있다. 큰 형님(김종수)이 어릴 적 거두어 키웠는데 중간보스 노릇이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총선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면서 조폭 내부에서 폭풍우가 발생하는데.


<화란>에서 조폭의 신세대가 등장했다. 기존의 정우성, 이정재 세대가 가고 송중기가 등판했는데 포스가 대단하다. 또한 조폭의 현실화가 돋보인다. 정치 위에 폭력이 군림하는 것이 가히 마피아 수준이다. 재개발 사업을 위해 정치인을 만드는 조폭이라니. <아수라>의 안남시에 이어 <화란>에서는 명안시다. 조폭들의 주 수입원은 사채였다. 원금이 7백, 이자가 7천.


이와 같은 조폭영화는 사실 현실세계의 은유로 보면 된다. 결국 사회 구조는 조폭의 뼈대와 유사하다. 다만 그 표현의 단순성과 복수의 혈투 등을 묘사하기에 조폭만한 모형이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누아르를 보며 우리의 삶과 무관하다고 따분해하는 관객에겐 상상력의 확장이 요구된다.


결국 최대 빌런은 누구인가 추궁하는 것이 무의미한 <화란>에서 우리는 K디스토피아를 본다. 그래서 영어제목이 Hopeless인 것일까. <비트>에서 오토바이로 질주했던 정우성은 26년이 지나 다시 오토바이로 질주하는 홍사빈으로 바뀌었지만 어둠은 더욱 짙어졌고 희망의 빛은 더욱 희미해졌다. G10이라고? 아니다. 인구를 감안한 평균은 세계 35위에 불과하다. 우리가 깊은 잠에서 이젠 깨어나야 한다. 악의 대물림이 코 앞에 와 있다.  

       


개봉2023.10.1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