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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문 Oct 28. 2023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미야자키 감독의 필생을 건 한마디



마히토는 화재로 엄마를 잃고 나츠코라는 새어머니를 맞아야 한다. 군수공장에서 일하는 아버지의 감수성은 낮고 나츠코에겐 이미 아이가 들어서 있다. 열한 살 마히토는 학교에서도 배척을 받자 스스로 고립의 길로 들어선다. 나츠코의 저택에 일곱 할머니로부터 어느 날 신비한 탑이야기를 듣게 되고 왜가리 한 마리가 집에 들어와 말을 걸면서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급기야 나츠코도 사라져서 이를 찾기 위해 마히토는 목숨을 건 모험에 나선다.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의 마지막 작품으로 공개된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엔터테인먼트적 측면보다는 감독의 절절한 소망을 담은 영화였다.


영화는 감독의 어린 시절의 비극인 전쟁을 배경으로 시작한다. 마히토는 결국 감독 자신이기에 그는 마지막 상상력을 슬픔으로 열기 시작했다. 언제나 그렇듯이 목가적인 정경은 그의 색채를 초록색으로 감싸 안는다. 그 시작 부분부터 울컥하고 올라오기 시작했다. '아, 감독님의 마지막 작품이라니...'


마히토의 트라우마는 어릴 때 엄마를 잃었다는 것이다. 미야자키 감독의 어머니는 실제로 오랜 병을 앓았다. <이웃집 토토로>에서 지병으로 인한 엄마의 부재는 감독에겐 살면서 겪어야 할 슬픔의 원천으로 보인다.


현실에선 이모를 엄마로 맞아들여야 하는데 이는 엄마를 배신하는 게 되어 마히토를 짓누른다. 그런데 왜가리가 엄마가 살아있다고 말한다. 뭐라고? 엄마가 살아있다고?


나츠코 또한 언니의 자리를 차지한 심적고통에 눌린다. 그녀 역시 맨 정신으로 현실세계에 남아 있기 어려운 선한 사람이다. 그래서 탑의 세계로 걸어 들어간다.


감독은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세계관을 펼친다. 즉, 거울 속의 세계를 통과하면 평행우주가 진행되고 있다. 특정한 문을 열고 나가면 자신의 현실공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 이런 4차원의 세계는 기존 작품에서도 많이 사용되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하울의 움직이는 성> 등 미야자키 하야오는 몽상가였다. 하지만 그 상상력의 세계로 엄청나게 많은 동심과 어른들의 마음까지 사로잡았다.  




영화 <소울>에서 등장한 생전세계와 비슷한 콘셉트도 등장한다. 영혼들이 지구에 오기 전의 모습이 '와라와라'라는 귀여운 존재다. 태어나지 않은 영혼들이라고 볼 수 있다. 이들은 키리코가 잡아와 직접 해체한 생선(참치로 보인다)을 먹고 힘을 내서 공중으로 부양한다. 그렇지만 배고픈 펠리컨들은 이 와라와라를 잡아먹는다. 동물도 살아가야 하니까 잡아먹는 이 생태계의 실존은 지구라는 한정된 공간만이 아닌 전생에서도 벌어진다.  




왜가리는 변덕스러운 거짓말쟁이다.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골룸 격이다. 하지만 친구로 삼게 되면 아주 유익하고 특히 미지의 모험을 할 때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다. 일종의 영적인 존재, 무당정도로 보면 될 것 같다. 현실계와 이세계(異世界)를 오갈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앵무새는 그저 주어진 삶에서 남들에 따라 움직이는 존재다. 결코 모험하거나 보이는 것 이상의 세상은 없다고 보는 사람들이다. <매트릭스>에서 세상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지 않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 하지만 이들은 기울어가는 세상을 일으키는 데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큰 할아버지의 존재야 말로 감독의 분신이다. 그가 평생 일구어 온 2D애니메이션의 세계는 이제 쇠퇴의 길로 접어들고 후계자를 기다린다. 후계자는 보이는 현실만이 모든 게 아닌, 거울너머의 세계를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자라야 한다. 동시에 참된 인성을 지닌 사람이니  마히토의 이름이 한자로 眞人참된 사람이라는 점은 우연이 아니다.


'나를 배우는 자는 죽는다'라는 경구는 죽어야만 살 수 있다는 역설적 문구다. 살려고만 애쓰면 죽고, 죽음을 각오하고 덤비면 산다. 이것은 감독의 종교적 세계관과 연결된다. 윤회 혹은 천국. 우리는 불멸의 존재라는 것.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운명에 맞서라는 교훈은 언제나 그렇듯 미야자키 시리즈의 핵심이다. 그렇지만 감독은 거울 속의 세계에 머물지 말고 반드시 지구로 돌아오라는 메시지를 남긴다. 단, 그저 뱅글뱅글 맴도는 지구가 아닌 평화롭고 풍성한 지구를 만들라는 명령을 전한다. 엔딩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의 제목도 지구의(地球儀)였다. 그렇다. Terrestrial Globe. 반드시 발은 땅에 디디고 전진하라. 진흙밭을 지나 숲을 통과하면 초월의 세계로 통하는 좁은 문이 있다. 그 문으로 들어가라. 그곳에 참된 삶이 있다.


그러니 후세들이여, 남은 과업은 그대들의 손으로 완성하라.

지브리의 세계가 지난 40년간 이 세상에 평화와 정의를 전하였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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