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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문 Nov 25. 2023

'서울의 봄'을 막은 그 겨울의 사건

<서울의 봄>의 쿠데타



긴박한 141분이었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방어막과 그걸 유유히 빠져나가는 뻔뻔한 불법의 참담함으로 러닝타임은 순식간에 흘렀다. 우리가 알고 있는 12.12 군사 쿠데타를 다룬 <서울의 봄>은 실감 100%의 내란음모와 그걸 막기 위한 의로운 군인들의 희생이라는, 스릴과 감동을 모두 손에 쥔 역작이다. 김성수 감독은 <아수라>의 저평가로 인한 우울감을 완전히 해소하며 역전 만루홈런을 날린 셈이고, 그의 페르소나인 정우성은 극 중 의인인 이태신 장군의 역할을 200% 소화해 내며 정우성의 브랜드에 기념비적인 날개를 달았다.



1979년 10월 26일.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각하, 정치를 좀 대국적으로 하시지요."라며 궁정동의 총성을 통해 이루고자 했던 것이 '서울의 봄'의 기원이라고 하겠다.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은 군이 정치에 개입하는 것을 반대하면서 일부 장성들의 지나친 정치세력화를 염려했다. 그런데 합동수사본부장을 맡은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위세가 심상치 않았다. 그를 견제하기 위해 수도경비사령관에 장태완 소장을 임명한다. 이후 좌천될 것을 두려워한 전두환은 그가 이끄는 육사의 사조직 하나회를 집결시켜 정총장을 체포하려고 한다. 박대통령 시해당시 궁정동에 함께 초대되었다는 이유로 김재규와 공범으로 엮으려 했다. 최규하 대통령은 총리에서 대통령이 되었으나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세력에 포위된 상태였다. 그렇게 서울의 봄은 물 건너가 버리고 만다.



영화는 그 긴박했던 12월 초의 며칠간을 다룬다. 그리고 쿠데타 당일의 시간에 대해서는 역사의 기록을 따른다. 단, 실명대신 한 끗 차이의 가명을 이용한다. 전두광, 노태건, 정상호가 그 예이다. 그리고 장태완 장군의 가상인물인 이태신 장군에 대해서는 픽션을 많이 추가했다.



상식적인 군인이라면 이 상황자체를 이해할 수 없고 그 누가 그 자리에 있었더라도 이 치밀하게 계획된 음모를 막을 자가 없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반대로 이러한 쿠데타를 생각하고 모의했던 자들은 오래전부터 면밀하게 준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 계획된 악은 일반적인 수준의 선으로는 막을 수 없다. 그렇게 인류역사에서 악은 발흥해 왔다. 그들은 이날을 위해 계속 골몰하면서 일상의 소중함을 버렸을 것이다. 가족과 함께 하는 따뜻한 저녁식사를, 동료들과 함께 하는 인간적 우애를, 나라를 생각하며 역사를 돌이켜보는 독서를. 오로지 권력만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야만 이룰 수 있는 쿠데타였다. 인간관계 역시 그렇게 상호이익을 위해 뭉치고 배신을 용납하지 않는 조폭의 원리로 작동했음이 분명하다.



그래서 억울했고, 안타까워서 눈물이 흘렀다. 나였더라면 어땠을까, 별도리가 없었겠구나. 정승화 총장이 무기력하다고 비판했었는데 사실은 그야말로 억울함으로 여생을 살았겠구나. 장태완 소장은 더 비극적이었다. 부친은 그가 보안사에 끌려가는 걸 생중계로 보고 충격을 받아 이듬해 사망했고, 똑똑한 아들은 대학입학 후 의문의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무시무시한 군부독재에 저항했던 수많은 민간인들이 탱크와 군홧발에 짓밟힐 것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그래서 <서울의 봄>은 <남산의 부장들>의 속편이자 <택시운전사>와 <1987>의 프리퀄이다. 영화를 보고 나면 자연스레 수경사 30단(예하부대)쪽에 있던 악인들이 누구인지 찾아보게 된다. 그리고 어떻게 부귀영화를 누렸는지를 금세 확인하게 된다. 그러니 어설픈 거짓은 오래갈 수 없다.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비서실장이었던 허화평이 12.12쿠데타를 설계했다고 전해진다. 정승화를 연행했던 허삼수 대령은 그 후 양지에서 인생을 보낸다. 30단 방에서 장군들의 비위를 맞추던 대령이 우리가 잘 아는 전두환의 충견 장세동이었다. 전방에 있던 9사단의 병력을 서울로 이동시킨 주역은 노태우였다.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참담하고 암담했던 그 하루의 충격은 44년이 지난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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