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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문 Dec 07. 2023

밀수 - 머무는 곳 그 어딜지 몰라도


군천에서 물질을 하며 살아가는 해녀들은 고단한 전복 캐기에 나서지만 화학공장 입주 이후에 수산물은 급감하고 생계가 막막해진다. 어느 날 바다를 통해 시도하는 '밀수'를 돕게 되고 형편이 피려고 할 때 세관이 밀어닥치면서 진숙(염정아)은 쇠고랑을 차게 된다. 그리고 배에서 탈출한 춘자(김혜수)가 자기를 배신했다고 의심하며 복수를 결심하는데...



"믿어도 되나요 당신의 마음을..."


류승완 감독의 <밀수>는 최헌의 77년 히트곡 '앵두'로 시작한다. 그 가사처럼 이 영화에서는 누구의 마음을 믿어서는 쪽박 나고 배신하면 대박 나는 내러티브가 지속된다. 하지만 배신에도 선이란 게 있다. 그리고 사람을, 아니 여자를 무시하면 어떻게 망하는지를 보여준다. 인간관계는 그렇게 상호작용한다. 기브 앤 테이크라야 하는데 테이크 앤 낫씽을 하면 벌 받는다.


한편 물질을 하는 여인네들이 바다를 유영하는 장면은 아찔하게 아름답다. 김혜수의 튼튼하고 긴 다리가 헤엄치기 위해 움직일 때 인어공주가 떠오르는 까닭이다. 혜수씨가 누군가. 17세에 태권소녀로 유명세를 타고 데뷔한 파워퍼프걸 아닌가. 그녀가 건강소녀로 등장했던 초콜릿 음료 '마일로'를 기억한다.



우리는 그 밀수라는 과정을 통해 70년대에 신문물을 경험했었다. 리츠 크래커, 포크 빈스, 스팸, 테이스터스 초이스 커피, 믹서기, 그리고 산요 TV까지. 그렇게 류승완은 중년의 추억을 저격하고 만다. 그리고 그 추억을 되살리는 주요한 무기는 가요였다. 작정하고 틀어대는 흘러간 노래들, 김트리오의 "연안부두", 나미의 "행복", 이은하의 "밤차", 산울림의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까지 듣게 되면 어느새 선명한 77년으로 돌아가 있다. 그만큼 70년대의 색감은 뚜렷했고 마치 웨스 앤더슨의 영화처럼 원색의 대비가 등장하면서 가슴이 뛴다.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느냐 그렇지 않고 낚싯대로 이용하는 가의 차이가 시작은 미약하지만 나중엔 창대하다는 걸 영화가 적시한다. 그렇게 70년대 걸크러시가 작동하는 데는 오랜 고민이 필요치 않았다. 다방에서 고단하게 남자들을 시중 했던 마담, 차가운 바다에 몸을 수시로 잠수시키며 전복을 따는 여인네들의 지난한 인생에서 남자들은 도대체 무엇이 잘났기에 군림했던 것인지를 각세우고 질문하는 이 영화는 그래서 서늘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주된 정서는 여전히 향수 어린 그 시절이었다. 전두환이라는 양아치가 등장하기 전, 박정희는 그나마 서민들에겐 절대적인 인기가 있었다. 먹고사는 길을 터주기 위해 분주히 돌아다니며 얼굴의 그을림이 식을 날이 없었으니까. 그래서 77년에 수출 100억 불을 달성했으니까. 그렇다. 영화 속 권상사(조인성)는 상남자인 박정희 장군이고 군대도 다녀오지 않은 장도리(박정민)는 상도덕이 없는 전두환에 다름 아니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고혈을 짜 먹는 장춘(김종수)은 강자에 기생하는 인간쓰레기였던 것이고. 그래서 옥분(고민시)의 외마디 절규에 전율이 인다. '같이 죽자 이 18 새퀴야‘


무엇보다 추억의 정점은 마지막에 흐르는 박경희의 노래였다. "머무는 곳 그 어딜지 몰라도"는 동경가요제 출품곡에 걸맞게 70년대의 자존감을 한껏 높여주듯 세련되고 우아했다.


머무는 곳 그 어딜지 몰라도

나 외롭지 않다네.

언젠가는 떠나야 할 그날이

빨리 왔을 뿐이네.


https://youtu.be/m9QsiB1JZ3g?si=V0YJ_rFBuDdGQp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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