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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문 Jan 06. 2024

아이리쉬 펍이 설 자리

영화 <이니셰린의 밴시>








아일랜드의 외딴섬 이니셰린. 바다가 보이는 정경은 어쩌면 바다라는 벽으로 둘러싸인 고립에 가깝다. 사는 사람이 적다 보니 일거수일투족이 이들에겐 뉴스가 된다. 어느 날 술친구 콜름은 파우릭에게 절교를 선언한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절교다. 오후 두 시에 펍에서 흑맥주를 마시며 수다를 떠는 게 유일한 낙이었던 파우릭은 멘붕상태가 되어 그 이유를 묻는데 이유는 없다고 한다. 이 소식은 마을 전역에 퍼져 심지어 신부님도 왜 절교를 했냐고 고해성사온 클롬에게 묻는다. 


음악을 좋아하는 클롬은 이제 더 이상 세상의 즐겁고 평범한 수다가 기쁘지 않았다. 시간이 아까워서 한심한 얘기가 듣기 싫었다. 그 시간에 작곡을 해야 했다. 죽고 나면 남는 건 악보뿐이니까. 그 정도로 거절하면 물러설 만도 한데 파우릭의 집착도 여간 아니었다. 왜 거절당했는지 생각하고 곱씹고 사람들에게 묻는다. 그리고 절대 찾아가면 안 되는 클롬을 다시 찾아가서 기어코 묻는다. 클롬은 간단히 말한다. 왜 사람을 그냥 두지 못하냐고. '침묵'하고 싶다고.


어쩌면 우리는 외로울 겨를이 없는 일상을 산다. 누구에게나 공유된 뉴스를 카톡으로 공유하고 그로 인한 수다가 시작된다. 직장에서는 굳이 안해도 될 회의를 하고 밥을 먹으며 또 그 뉴스를 수다의 재료로 삼는다. 그렇게 하루가 간다. 수다도 위계가 있다. 아무나 화두를 꺼내지 않는다. 윗사람이 던지면 그걸로 재잘재잘 조잘조잘 먹잇감으로 돌려 말한다. 물론 조용히 윗사람을 멕이는 수다도 있다. 밥 먹고 커피까지 마셔주면 오후 업무가 시작된다. 


언젠가부터 말이 없으면 불안한 세상이 되었다. 저 사람이 우울증에 걸렸나. 검사해 봐. 병원 가봐. 미소를 잃었어. 농담을 좀 해 줘야 살아있는 사람이 된다. 그렇게 우린 죽을 때까지 느리게 가는 시간을 때운다. 


하루 종일 당나귀와 강아지와 지내던 사람들이 인간과 소통하는 곳. 아이리쉬 펍은 그런 곳에 어울리는 쉼터다. 흑맥주 한 잔에 외로움을 달래는 곳. 폭풍의 언덕처럼 신산한 풍광에 어울리는 쓴 맛이다. 뼈져리게 외로운 사람들이 와서 맥주로 시름을 삼키고 나아가 함께 노래 부르며 쓸쓸한 삶을 견디는 곳이 아이리쉬 펍인 것이다.


도시 한 복판에 아이리쉬 펍이 우후죽순 들어서는 건 그래서 모순이다. 삶의 적막함이 없이 수없는 수다를 떨다가 또 다른 수다를 떨기위해, 단지 흑맥주를 마시기 위해 펍을 찾는 건 과하다. 사람이 너무 많아 전철에서도 거리에서도 어깨를 부딪치는 곳에서 아이리쉬 펍은 설 자리가 없다. 아니 그런 곳에 존재해서는 안된다. 펍밖에는 갈 곳이 없는 곳, 하루의 노동을 마친 오후 두 시에 당나귀가 똥싸는 이야기로 일상을 나눠야만 시간을 흘려보낼 수 있는 곳이어야만 아이리쉬 펍은 의미가 있다. 죽을 때까지 느리게 가는 시간을 어쩔 수 없는 곳이라야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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