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6시, 이른 알람이 울렸다. 룸메에게 좀 미안하다. 패드 진동으로 알람을 맞췄어야 했는데. 번쩍 일어나진 않았지만 조용히 짐을 챙겨서 후딱 기숙사를 나왔다. 기숙사는 매우 후덥지근 하기 때문에 나오는건 어렵지 않았다. 간단하게 패드와 칫솔만 챙겼다.
창이공항에 며칠만에 다시 왔다. 얼마전 나를 매우 괴롭혔던 유심칩에 대해서도 다시 확인했다. 역시나 100기가 정도를 주는 유심이었다. 나는 여태 데이터 하나에 벌벌 기고 있었는데. 내가 돈을 많이 벌게 된다면, 그땐 일이백에 벌벌기던 내 모습은 찾아볼 수 없으려나 궁금해졌다. 대신에 돈을 아끼는 재미도 같이 없어지지 않을까 싶다.
말레이시아 국경을 넘는 사람들은 많았다. 물론 태국에서 캄보디아를 넘듯 삼엄하고 무서운 광경은 아니었으나 국경이 주는 위압감이 조금은 들었다.
'싱가폴.. 시..민....?', '네?', 싱가폴..시민..인..?','아 아뇨, 한국 사람이고 싱가폴에서 일합니다'. 원래 목소리가 작은 사람들인건지 잘 들리지 않았다. 다행히 임시 비자를 보여주고는 심사대를 지나갈 수 있었다. 사실 일한다기보단 여행자라는 단어를 썼다. 아직 출근을 해본적도 없고, 깝깝한 단어로 표현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나는 한낱 여행자였으면 좋겠다. 평생.
사실 고민을 많이 했다. 이미 싱가포르에 온지 얼마 안됐는데 다시 또 말레이시아 여행이라니. 요 며칠 있었다고 싱가포르가 편해지면서 조금은 뻔해지던차였다. 다른 곳은 어떤 느낌일까, 그리고 지금이 아니면 쉽게 가지 못하지 않을까. 마사지도 받고 싶고. 그리고 일단 집에 있기에는, 그리고 벌써 싱가포르가 나에겐 너무 식상했다.
노잼도시라고 한다. 재미 없다고. 그럼 재밌는 도시는 또 뭐랴. 한국의 생활은 재밌었나 잠깐 생각해보았다. 주말에는 탁구만 치다가 집이 갔고, 밤에는 피시방에 갔다. 물론 출국 전에는 찜질방에 가서 책도 읽고 땀도 빼면서 여행 온 기분을 내긴 하면서 조금은 신선했으나 나의 한국 생활은, 자세히 나의 한국 직장 생활은 직장과 운동을 반복했었다. 그나마 운동을 너무 좋아해서 생활의 재미는 있었으나 직장에서의 대부분의 시간은 그저 운동을 위한 돈을 버는 시간에 불과했다. 그리고 아마 나는 그 노잼의 작은 불씨에 익숙해지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싱가폴과 한국에서의 가장 큰 차이라면 운동 비용이 좀 비싸다는 점이고, 시설이 너무 낡았다는 점이다. 그건 좀 아쉽다. 물론 가격은 여기가 비싸다기보단 내 월급이 적어서 더 격차가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복싱장을 알아보러 갔다가 가격이 너무 비싸기도 했고, 내가 여기서도 취미에만 몰두하는 인간이 될까봐 그냥 나와버렸다. 하지만 너무나 복싱이 하고 싶었다. 다시 예전의 그때 처럼 링 위에서 밝게 빛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