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폴에서의 폭우

by 빛보단 그림자

어두운 구름의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갑작스럽게 내린 비라 그런지,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우산도 없이 비를 맞고 걸어다녔다. 여기선 너무 자연스러운 현상인듯, 비를 가리지도, 그렇다고 뛰지도 않았다. 물론 우산이 없는 동네는 절대 아니다. 그저 예상하지 못한 비에 크게 놀라지 않았다는 점이다. 비를 맞는다고 바로 죽지도 않고, 밥을 굶지도 않는다. 그저 시간이 지나면 비도 그치고, 젖었던 옷도 마르고, 오히려 뜨거웠던 몸도 시원해지기 마련이다. 그리 큰일이 아니다.


여기 오기 전까진 이렇게 중국어를 많이 쓸줄은 몰랐다. 하루는 중국어만 쓰기도 하고, 하루는 영어만 쓰기도 하며 둘다 쓸때도 있다. 물론 한국어는 쓸 기회가 많이 없다. 가끔 말을 하다보면 한국어 단어가 잘 생각이 안난다. 한국에서도 가끔 그랬었지만.. 지금은 확실히 다른 언어에 대한 영향이 크다. 역시나 모든걸 다 잘하는걸 몸이 쉽게 허락해주지 않는구나.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걸까. 막연히 답을 찾지 않는 질문이다. 그저 그 의문 속에 있을때의 감정을 즐긴다. '나는 어떻게... ' 그러면서 허공을 응시하는 나의 눈빛에는 어떤 경계심도, 불안함도 없다. 그저 저 먼 우주를 꿰뚫어 보다보면 해답이 나올 것 같다.


한국에서는 잘 몰랐던 것들을 여기선 많이 깨닫고 있다. 아니 사실 한국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거기선 없었던 거 같은데, 뭔가 여긴 있지만 한국에서 어땠는지를 생각해보려고 하면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내가 이 시간대에는 어디서 무얼했었지. 아마 너무 단조로운 삶이었기에 기억이 나지 않는 걸까. 나는 항상 혼자였다. 물론 탁구장에도 가고, 피시방에도 가고. 탁구장에 있는 아주머니들과 많은 대화도 하고 웃고 떠들었지만 그건 나에게 그리 큰 이슈들이 아니었나보다. 그냥 시간과 밥만 축내는 시간들이었을까. 그렇게 몇 십년이 지난 나의 모습... 상상하고 싶지도 않다. 물론 여기서의 미래도 그리 쉽게 그려지지 않지만 말이다.


싱가폴은 한국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비교가 잘 안된다. 그냥 과거의 일들을 기억해내는게 이젠 싫다. 남들과 비교하는 삶도 신물이 나는데, 과거와 현재의 나를 비교하면서 현재의 내 삶에 만족하는 자위를 하고 싶지도 않다. 너무 지치는 일들이다. 그래도 한국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모두가 피해자인 세상이었다. 회사에 가도, 길거리를 걸어도, 사람들과 대화하고 유튜브 댓글들을 봐도 모두가 다 피해자였다. 영화 주인공도 모두 피해자들. 가해자는 없다. 그저 저 먼 피상에서 존재하는 환상의 동물인 것 처럼 가해자는 없고 모두가 피해자인 세상이 한국이다. '쟤가 저렇게 행동해서 나는 그럴 수밖에 없었어', '니가 그렇게 하다니 나는 정말 실망이야. 나도 이렇게 할 수밖에 없어' 말은 피해자처럼 하지만 행동은 항상 가해자들이었다. 모두가 피해자인 상황에서 나는 차라리 가해자가 되길 바랬다. '내가 결심했고, 내 생각이야', '나는 이렇게 하는게 옳다고 생각하고, 이렇게 하겠어...' 결국 돌아온 건 피해자들의 집단 공격 뿐이었다.


그 사람들을 비난하고 증오한다. 모두다 용서한다는 예수나 부처가 할 수 있는 말은 하지 못할 것 같다. '그 상황이 되면 그 사람들을 이해할거야', '너라고 다를거 같아? 다 똑같아' 이런말에 나는 애초에 그런 상황을 맞닿드리지도 않을 것 같다. 나는 그 사람들을 이해하지만, 나는 그렇게 행동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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