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나를 부르는 방법을 아는가
이럴 때 추천해요
-문득 막막함을 느꼈을 때
-캄캄한 밤을 이겨내는 방법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 수 없을 때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잊히는 게 두려울 때
-그대의 부름에 답하여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영화 정보_
개봉일_2024.12.24
장르/국가_드라마/대한민국
배급_CJ ENM
감독_우민호
들어는 말_
참 최적의 시기 나온 영화다. 동시에 관람평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다. 재미없고 지루하다는 반응과 다시 감동한 반응, 이렇게 두 가지다. 왜... 지루하지??? 왜... 재미없지??? 나는 후자다. 빙판 위를 걸어가는 장면에서부터 그들의 사무치는 고독함과 내적 갈등, 불확실성에서 내일을 찾는 모습이 보는 내내 먹먹했다. 오히려 영화가 너무 짧게 끝나 아쉬웠다. 인물이나 사건을 깊게 다룬 영화는 정말 좋다. 다큐 좋아! 겨우 두 번 봤지만, 여유가 된다면 몇 번이고 더 보려고 한다. 영상미... 그 아름다움 때문에 일제의 잔인함이 더욱 사무쳤다. 그분들은 무서운 시간을 견뎌냈는데, 나는 얼마나 기억하고 있을까. 독립운동은 통쾌한 영웅담이 아니라, 누군가의 목숨을 건 삶 그 자체라는 것을 다시금 느꼈다. 영화의 마지막 독백이 유독 가슴을 울린다. 나도 그 정도 가치 있는 삶을 사는 후손이 되고 싶다.
OST_
이번 영화는 유튜브에 OST전곡이 다 올라와 있다. 노래가 모두 좋아서 어느 하나 추천하기 어렵지만, 나는 '기나긴 여정'이라는 곡이 유독 좋다. 힘써주셔서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다. 후손들이 그날을 기억하며 노래하고 있다고. 오늘의 노래가 바람을 타고 흘러 그날에 닿았으면 좋겠다. 멀리서라도 희미하게 들렸으면 좋겠다. 나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대, 나를 부르는 방법을 아는가
하얼빈은 중국 동북부 동경 125°42′~130°10′, 북위 44°04′~46°40′에 위치한 곳이다. 연평균 기온은 3.6도로 추운 지역이며, 1월 평균기온은 영하 19.7도라니 며칠 전의 영하 17도보다 더 추운 날이 일상인 곳이다. 지역은 ‘그물을 말리는 곳’이라는 뜻처럼 어민 몇 채가 있던 마을에서 러시아의 관할구역이던 시기에 철도기지가 들어서며 교통과 상업의 요충지가 되었다. 이렇게만 보면 하얼빈은 역사가 깊은 도시의 소개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한국인인 나도 하얼빈을 교과서로 보고 직접 가본 적은 없기에 그 장소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막연하게 생각만 했었다. 그러다 어느 날 독립운동가 양우조, 최선화 부부가 쓴 육아일기인 ‘제시의 일기’를 보게 되었다.
‘제시의 일기’는 말 그대로 육아일기다. 다만 제시가 태어난 때가 일제강점기였고 그의 부모는 독립운동가였다는 점이 다르다. 이 일기를 보면 이 가족이 얼마나 혹독하고 참혹한 환경에서 살았고 그 어려움을 버티며 독립을 염원하고 지원하고 참여했는지, 동시에 자신의 자녀에 대한 교육에도 얼마나 힘쓰고, 타국의 땅 중국에서 조선이란 뿌리를 알게 하려고 한 노력을 잘 볼 수 있다. 이 책을 읽기 전엔 역사란 이름 붙여진 사건으로 보여서, 어떤 원인과 결과의 연속이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독립운동이 어떤 인생의 특별한 시간을 내어 한 것이 아니라 삶 그 자체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 영화는 독립운동가 안중근을 통해 그분들의 삶을 제3 자의 시선이 아니라 마치 내가 그분들의 곁에 있는 것처럼 느끼게 했다. 내가 정말 궁금한 것이었던 그 시간을 보낸 그분들의 마음을 감히 짐작할 수 있었다.
영화는 보통 익숙한 독립운동가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상영 내내 그분들이 가졌던 미래에 대한 걱정과 내부의 갈등, 개인적인 고뇌와 고통, 동지에 대한 책임과 외면, 배신, 신념에 대한 믿음 등 복잡한 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줬다. 영화 속 캐릭터들은 서로를 믿기도 의심하기도 하며 상대를 위해 기꺼이 어려움을 자처하기도 했다. 각각의 캐릭터가 지닌 의미가 보여서, 왜 영화 속 안중근을 허구의 인물들과 독립운동을 하게 한 것인지 궁금했다. 그런데 캐릭터를 하나하나 살펴보니 그들이 바로 우리임을 알게 되었다.
이창섭, 그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것은 굽히지 않고 밀어붙이는 인물로 안중근과 가장 갈등하며 동시에 안중근을 위해 기꺼이 어려움을 자처하는 인물이다. 그 어떤 인물보다 더 안중근에게 솔직하며 자신의 의견을 가감 없이 전달한다. 나는 독립운동가 대부분이 이창섭과 비슷한 성격이라고 생각한다. 이창섭은 우리의 삶에서도 가끔 볼 수 있다. 나라면 주변의 눈치가 보여 말하지 못할 부당한 일을 누군가는 앞장서서 옳지 않다고 말하고 고치려고 시도한다. 그 힘은 매우 커서 때론 의견이 달라 흩어지기도 하지만, 그 힘이 가진 정의로움과 순수함은 이길 도리가 없다. 죽음 앞에서도 끝까지 옳고 거룩한 안중근을 두둔하며 그를 좋아하는 모습은 많은 독립운동가의 모습과도 겹쳐 보여 마음이 아팠다.
김상현은 당대 지식인을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아는 것이 많아 이중적이고 계산적인 면이 드러나기도 하는데, 모든 지식인이 그런 것이 아니듯 김상현 또한 초반엔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다만 김상현은 신념보다 두려움이 커 목숨이 위협받자 태도를 바꿔 고개를 숙인다. 안중근이 믿었던 측근으로서 하얼빈으로 향하는 기차 장면은 큰 배신감이 들었다. 지식인이란 놈이! 공부 좀 했다는 놈이! 내가 김상현을 보고 깨달은 것은 아는 것이 진짜 힘이 되기 위해선, 아는 만큼 보이는 두려움을 이겨야 그것이 진짜 힘이 된다는 것이다. 이토 히로부미가 지적했던 ‘어리석은 왕과 유생들’이 바로 힘에 굴복한 김상현을 뜻하지 않았을까. 그가 마지막에 단칼에 모리 다쓰오의 목을 긋는 장면에서 안도감과 동시에 부디 진짜 힘을 발휘하길, 그러니 나는 당신에 대한 시선을 끝까지 거두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우리에겐 여성 독립운동가들도 많았다. 나도 유관순 외엔 몰랐는데 여성들도 독립운동에 대한 열망이 강해 그들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열심히 참여했으며, 그중에는 직접 군인으로 활동하신 분들도 계신다. 공 부인은 그런 여성 독립운동가를 대표하면서 영화에선 안중근의 하얼빈 거사를 돕는 인물로 나온다. 러시아 말도 잘하고 화약을 구하러 가는 그 먼 여정을 이끌며 박점출을 압박하기도 한다. 공 부인처럼 가족을 잃어도 여전히 조선의 독립을 지지하고 그들을 도운 여자들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분들께서 강하게 버티고 흔들리지 않으신 덕에 그의 후손들도 계속 독립운동을 이어갈 수 있었을 것이다. 여성이 활동하기 힘든 시대에 독립운동을 하셨다니, 굉장히 멋있고 무척 존경스럽다. 그리고 공 부인이 러시아 말을 잘한다는 대목에서 나도 러시아어를 배우고 싶어졌다. 러시아어를 배워 하얼빈에 가면 공 부인과 독립운동가가 남겨 놓은 것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더불어 고려인도.
영화에서 가장 까칠했던 우덕순도 재밌는 인물이다. 출신이 좋지 않아 양반들의 하대와 무시에서 살며 이놈의 나라 망해버리라는 공염불을 외웠는데, 그 말에 죄책감이 들어 독립운동에 나섰다는 말은 평범한 우리의 모습과 참 닮았다. 나는 여성이지만 양반도 지식인도 아니라 공 부인과 우덕순에게 마음이 많이 갔다. 영화 속 이토 히로부미가 어려워하고 골치 아프게 생각한 조선 백성들도 우덕순과 비슷한 모습이지 않았을까. 툴툴대는 우덕순의 말투에 애정이 언뜻 비췄다. 하지만 독립운동가 중에서도 밀정이 된 사람이 있다. 우덕순은 실존 인물이지만 자료가 부족해 연구에 어려움이 있다고 한다. 밀정설이 있는 만큼 그에 대해 더욱 면밀한 연구가 이뤄지면 좋겠다. 그리고 부디 조선을 위해 밀정 활동을 했던 사람이었으면 참 좋겠다. 그가 단지동맹을 맺은 안중근과 독립운동을 져버린 사람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다른 인물은 박점출이다. 비록 허구의 인물이지만, 한때 독립운동에 참여했던 사람이 절망에 빠져 마적 떼의 두목이 된 것은 조금 화가 났다. 그렇다고 포기할 것은 뭔가. 독립이 되지 않더라도 그것이 오랜 시간을 들여 정진하면 때가 되어 이뤄질 것을, 왜 미리 지레짐작하여 포기하는가. 실제로도 이런 마음에 독립운동을 포기하고 외면한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또 한편으론 현대의 일부 사람 중 일제강점기 때의 역사를 대충 넘어가고 싶은 사람들의 모습, 아픈 역사고 이젠 좋은 관계로 나아가는 게 중요하다며 덮어놓고 싶은 사람들과 비슷하기도 하다. 회피는 방법이 아니다. 아픈 몸을 가만히 두면 저절로 낫는가? 아파도 뼈를 맞추고 신경을 붙이고 새 살이 돋게 봉합해야 한다. 곪은 피는 빼고 깨끗한 피가 돌도록 해줘야 한다. 그러니 박점출도 좌절을 딛고 일어나길 바란다. 진짜 슬픈 것은 외면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주인공 안중근 의사다. 나는 안중근 의사의 사진을 처음 보고 그가 이토 히로부미를 죽였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너무나도 선하고 맑고 총명한 눈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현빈이 연기한 안중근을 통해 헤아리지 못했던 속마음을 본 것 같아 부끄러웠다. 당당한 얼굴만 보고 그저 자랑스럽게만 여긴 나는 그 일면만 보고 있었다. 안중근 의사는 단순한 독립운동가가 아닌 교육자이자 동양평화론을 주장한 철학가이기도 하다. 그가 바란 세상은 한국의 독립과 일제의 침략 포기로 시작하는 평화였다. 이는 뤼순 감옥에서 저술한 '동양평화론'의 서와 전감 부분에서 볼 수 있다. 의사는 거사의 이유를 열리지 않은 재판이 아닌 저서를 통해 밝히고자 한 것 같은데, 안타깝게도 일본에서 허락하지 않아 완성할 수 없었다. 하지만 자서전인 '안응칠역사'는 남아있으니 그것을 토대로 미완성인 동양평화론을 완성해보는 것도 후손으로서 의미있는 행동이 될 것 같다. 왜냐하면 의사의 철학은 현 국제사회와 한일 관계에도 여전히 뜻깊은 의의와 통찰력을 주기 때문에 그렇다. 또한 자신의 행동에 합당하고도 바른 논리와 철학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도 알려주는 것 같다. 그래야 나의 행동도 정당하다 주장할 수 있겠다.
영화 초반 의사는 다른 운동가들에게 큰 비난을 받는다. 그의 생각이 다른 독립운동가들과 달라 갈등이 생겼음은 충분히 이해간다. 어려운 상황과 반대 의견에도 만국공법이란 절차를 따르고자 한 것은 매우 놀랍다. 초반에 모리 다쓰오에게 보여준 행동이 그분의 고결한 사상을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그래서 나는 이 상황에서 이런 판단을 내릴 수 있었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내 머리론 쉽게 이해되진 않는다. 나는 그 정도로 그릇이 크지도 생각이 깊지도 않다는 뜻이다. 비슷한 나이인데 참 헛살았다. 영화에선 나오지 않지만 실제 감옥에 있을 때도 이 자세는 변치 않아 주변 일본인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단다. 그분이 남기신 자서전을 읽고 남산에 있는 안중근 의사 기념관에 가봐야겠다. 내가 이것을 완벽히 이해하고 내면에 새긴다면 더 괜찮은 사람이 될 수 있을 텐데. 아직 죽지 않았으니 조금이라도 노력해야겠다. 나도 조금 괜찮은 후손으로 살고 싶어졌다.
독립운동가뿐 아니라 모리 다쓰오와 이토 히로부미를 보면서도 많은 생각이 들었다. 안중근만을 쫓은 이유를 끝까지 인정하지 못한 모리 다쓰오와 조선인의 나라에 대한 애정을 질투했던 이토 히로부미의 결말은, 내 안에 드는 불편하고 불쾌한 감정이 사실은 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알려주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 말이다. 때때론 어떤 사람이나 장면은 내게 직접 위해를 가한 것도 아니면서 이질감과 불편한 감정을 들게 한다. 다른 나라를 침략하거나 사람을 존중하지 않는 것은 옳지 않음을, 잘못을 인정하지 않음은 더 큰 굴레와 피를 흘리게 만드는 것임을, 권력에 복종하고 힘과 돈으로 유지하는 충성은 진실하지 않음을, 진정한 애국과 애민은 강제하지 않아도 나오는 순수한 것임을, 모든 시작은 못난 나부터 올바른 길을 걷고 끊임없이 다잡는 것임을, 그런 사람들이 많은 국가가 성공한 국가고 강한 국민을 가진 국가임을 그들을 통해 깨달았다. 반면교사로 삼아야겠다.
이제 나는 생각해본다. 내가 독립운동가였다면 나는 어떤 철학과 생각으로 독립운동에 임해야 할까. 현재 나는 나라와 국민에 대해 어떤 생각과 철학을 가지고 있나. 나는 어떻게 그것을 대하고 있었나. 나의 어떤 태도가, 국가의 어떤 철학이 나라와 국민을 옳게 만드는가.
내 나라 땅 위에서 그분들께 감사하고 죄송한 마음만 가지는 것은 카메라에 담긴 아름다운 석양녘과 같다. 실제론 그분들의 삶은 투쟁과 희생 그 자체였다. 그래서 잠시 쉬어가는 때에 아득한 눈으로 만주가 원래 우리 땅이었다는 말과 내 몸 하나 누울 곳 없는 마당에 그런 고리짝 얘기를 하냐는 타박은 더더욱 영상미라고 가볍게 말할 수 없었다. 조선이 독립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마치 해가 지는 때 같은 시대를 부족한 내 말론 표현할 수가 없다. 저 두려움을 이겨내고 나라를 구하러 갔구나. 독립운동을 했구나. 해가 저무는 모습이 매일매일 가슴 아팠겠구나. 내일은 해가 뜨지 않을까 걱정되어 잠을 설치고 밤샌 날도 많았겠구나.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은 고작 이런 것들 따위다.
그러니 나의 삶이 죽은 동지들의 목숨이라는 것을 알게 된 이상, 이젠 그분들을 꺼내드려야겠다. 하얼빈에 가기 전 좁은 방, 그보다 더 좁은 곳에 몸을 구기고 앉아 울분을 토하고 눈물을 흘린 그분들을 꺼내드려야겠다. 해가 뜬 낮이 아니라 어둡고 컴컴한 곳에 있을 수밖에 없던 그분들을 꺼내드려야겠다. 거리를 걷지 못해 자꾸만 뒤를 돌고 주변을 살펴야 했던 그분들을 꺼내드려야겠다. 끝까지 싸우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말 하나로 자신의 모든 삶을 나라와 민족의 독립에 바친 그분들을 꺼내드려야겠다.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많은 독립운동가를 찾아 적어도, 죽기 전에 한 번은 그분들의 이름을 불러드려야겠다. 우리가 그분들의 이름을 부르면 반드시 빛이 있는 곳으로 나오실 것이다. 그분들의 이름을 잊고 그저 사진으로만 기억하며 시험의 한 줄로만 그어버린다면, ‘이대로 끝나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된다. 그리고 그렇게 만드는 사람은 누구인가. 바로 나 아닌가.
안중근은 왜 하얼빈에서 러시아 말로 외쳤을까. 그에 안중근은 답한다. 그래야 저들도 알지 않겠느냐고. 그리고 공 부인의 말대로, 안중근의 말대로 그가 외친 말 한마디에 어둠에 숨어 있던 동지들이 햇빛 아래로 모였다. 동지들은 인파를 헤치고 당당히 앞으로 나아가 안중근의 곁을 지키며 안중근의 손에 그들의 손도 함께 올렸다. 흔들리지 않고 함께 늙은 여우를 죽였다. 이토 히로부미를 죽였다. 나는 그 모습을 보았다. 안중근의 옆에 있던 수많은 동지를 보았다. 그들과 함께 한 것을 나는 보았다. 분명히 보았다. 공 부인의 말처럼 그들은 기다리고 있었다. 그 손가락으로 국기에 새겨진 그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모두 약속을 지켰다. 떠나지 않았다. 늘 곁에 있었다. 부름에 답했다.
까레아우라. 그것은 길을 찾은 자의 외침이고, 잊지 않은 우리 동지를 부르는 말이었다. 먼저 간 동지를 대신해 살고 있던 내가 잊지 않았다고, 여전히 함께 있다고, 죽어서도 약속을 지키겠다고 한 부름이었다. 처음부터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이름은 부르면 되는 것이다. 그럼 어디서든 나타날 것이다. 우리가 부르면 빛으로 다시 나타날 것이다. 우리가 영원히 길을 찾을 수 있도록 함께 걸어갈 것이다. 과거에서도 미래에서도 현재에도.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