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소개 및 와글와글
서로의 인생을 망치러 온 구원자 같은 거창한 운명이 아니다.
모질게 굴 거면 끝까지 모질고 두려우면 벌벌 떨어야 하는데
상처주다 말고 서로 사랑해 버리고, 절망하다 말고 살아내기로 선택해 버린다.
-드라마 우리영화 소개글 중
들어가는 글_
하루종일 사람에 치이고 난 후엔 평화로운 저녁을 보내고 싶다. 그래서 매일 밤 뜨거운 여름이 아닌 춥고 어두운 겨울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바깥에 펑펑 내린 눈이 잔뜩 쌓여 고요해진 밤을 상상하면서 소파에 누워 있으면 그렇게 마음이 평화로울 수가 없다.
그러다 어제 저녁 이 드라마를 보게 됐다. 남궁민이 출연하고 전여빈이 나오는 드라마라고 홍보했었는데, 그 작품 시작이 이번 금요일이었던 것이다. 아뿔사, 내가 놓칠 뻔했구나. 티저 속 남궁민의 알 수 없는 눈빛이 강렬하게 끌어당겼는데 이제는 드라마 속 전여빈의 슬픔이 뒤에 있는 밝은 얼굴이 나를 붙잡았다.
시한부 캐릭터가 등장하는 영화의 자문을 맡은 시한부라니. 슬프겠구나를 떠나서 이런 궁금증이 든다. 죽음을 다룬 다른 드라마와 어떤 점이 다를까? 결말은 어떻게 매듭지어지게 될까? 드라마는 어떻게 둘의 사랑을 이어주려고 할까? 그 사랑의 의미는 무엇일까? 남녀간의 사랑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나는 멜로 드라마라도 남녀간의 사랑을 포함해 그 이상을 보여주는 사랑을 보고싶다. 왠지 이 드라마는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사랑하지만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사랑이기 때문에. 내가 모르는 사랑을 알려주는 작품이 될 것 같아 기대된다.
또 궁금한 점. 시한부를 어떻게 그려낼까? 우리는 아픈 사람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병원이란 공간을 어떻게 그릴까? 호스피스 병동도 등장할까? 이 드라마가 말하고 싶은 것은 삶이 될까 아니면 사랑이 될까 혹은 죽음이 될까? 죽음을 바라보는 시선은 어떨까? 어떤 이별을 말할까?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영화라는 소재 속에 담아내려고 할까? 영화를 배경으로 삼은 건 정말 새롭다. 드라마 속에 영화라니. 내가 좋아하는 건 전부 들어갔네!
마지막, 진짜 마지막으로 이 드라마 추천 이유는 바로 이 캐릭터에 있다. 이 사회의 어딘가에 살아있는 사람들이 등장한다는 것. 극중 김민석 의사의 말처럼 나도 앞으로도 이렇게 우리가 잘은 모르거나 자주 잊고 살아도 어딘가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평범하다면 평범하고 특별하다면 특별한 우리 모두의 삶의 모습이 말이다. 그들의 삶을 진실되게 비추고 정성을 담아 따뜻하게 바라보는 시선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다양한 사람들의 삶과 그들이 스스로를 타인을 세상을 사랑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진짜 마지막 바람이라면, 여운이 깊은 새드앤딩을 기대해도 될까. 나는 또 한 번 잘 만든 새드앤딩을 기대한다. 그럼 진짜 완벽한데! 히힛♪
아, 그리고 이 드라마의 오프닝 영상이 정말 아름답고 아련하다.
30초 영화 같은 영상인데, 두 사람의 모습이 내 마음을 먹먹하게 푹 적신다. 이런 오프닝을 만들다니. 멋지잖아...
드라마 정보_
방영일시_2025.06.13. 금토 21:50 SBS
제작_스튜디오S, 비욘드제이
책임프로듀서_이슬기
프로듀서_신민철,박선아,윤윤선
연출_이정흠
극본_한가은,강경민
등장인물_
이번에는 등장하는 여러 인물 중 관심이 가는 인물을 중심으로 보려고 한다. 다른 인물들도 궁금하지만, 특히나 내 눈에 들어온 인물들이 있어 소개한다.
이제하 / 남궁민
한 분야에 명성을 떨친 아버지를 둔 자식의 기분은 어떤 기분일까? 같은 분야라면 부담스럽고 존경스러울까? 다른 분야라면 그저 멋있는 사람으로 보일까? 그리고 그런 아버지의 그림자를 알고 있다면? 그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아버지와 다른 길을 걷고 싶다면 어떻게 다른 사람이 되겠다는 걸까?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 걸까? 그리고 그것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을까? 다르게 살고 싶다는 건 닮은 점이 있다는 것인데, 무엇이 어떻게 닮았을까? 또 다르게 살고 싶다면서 왜 같은 직업을 선택했을까?
자식은 참 신기하다. 어릴 땐 부모님을 따라하고 다녔으면서 크고 나서는 그렇게 살지 않겠다고 해버린다. 하지만 인정하기 싫어도 그들의 피가 내 심장을 뛰게 하고 여태 날 살아있게 만들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배운 적도 없는 습관이 나올 땐 소름돋기도 하다. 나도 한때 이런 마음으로 살았었는데, 닮지 않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이 아닌 죽기살기로 노력해야 찔끔 바뀌더라. 그래서 더욱 궁금하다. 개인 이제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 건지. 대체 자신의 어떤 점을 증오하며 변화하고 성장하고 싶은 건지. 이름은 참 멋있는데. 이제하. 능글맞게 웃으며 사랑을 지킨 이장현이 생생한데, 이젠 끝을 아는 사랑을 표현할 이제하가 기대된다.
이다음 / 전여빈
왜 다음이란 이름을 붙여줬을까? 기적적으로 살아나는 다음을 가진 캐릭터라서? 혹은 현실에선 삶이 끝나더라도 영화 속에선 영원히 살아있어서? 아니면 누군가가 이 인물을 보고 다음을 꿈꾸며 희망을 품어서? 시한부 캐릭터라면 우리가 그들을 보고 생각해야 하는 점은 무엇일까? 그들이 삶을 대하는 자세와 시선은 뭘까? 어떤 시한부를 표현할까? 왜 시한부라고 설정했을까? 죽는 날을 미리 아는 것과 모르는 삶의 차이를 어떻게 그릴까? 시간의 연장선 혹은 삶의 연속성을 그려내려나? 인간의 무엇이 다른 사람의 무엇으로 남는 걸까?
사실 내가 죽을 날이 언제인지 정확하게 안다면 나는 마음이 더 가뿐해질 것 같은데, 그래서 내가 언제 어떻게 죽는지 참 궁금한데...언뜻 봤음에도 그대로 흘러갈지 확신할 수 없기에 하루하루 충실하게 살 뿐이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죽을 날을 미리 알려주지 않는 걸까. 오히려 나는 다음이와 반대의 입장이라 더 흥미롭고 관심이 생긴다. 다음이가 한 말 중에 '우물쭈물 살지 않으려고 했는데 이렇게 될 줄 알았다'와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거 묘한 쾌감이 있어요'는 정말 공감이 많이 갔던 대사다. 이다음이 앞으로 내 여름을 매년 애닳게 할 것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마음이 미어지는 걸. 그래도 마음에 구멍이 나면 바람이 잘 통하겠지.
이정효 / 권해효
딸에게 설명해준 유전이 아닌 이정효가 생각하는 유전이란 무엇일까? 의사의 시선으로 본 유전과 인간의 시선으로 본 유전은? 부모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자식에게 무엇을 물려주어야 하나? 선택할 수 없다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나? 다만 부모의 마음이란 무엇일까? 가족의 죽음을 대하는 남은 가족의 자세란 무엇일까? 자식의 마음에 상처를 줌에도 부모가 가진 자식에 대한 마음은 어떤 것일까? 부모란 무엇인가? 부모에게 자식은 어떤 존재일까?
좋아하는 배우는 많아도 존경하는 배우는 몇 없다면, 권해효 배우는 내가 존경하는 배우다. 그동안 나쁜 역할에 자주 나와서 너무 슬펐는데, 지금은 참 좋다. 생각할 만한 캐릭터를 하시는 것 같아서 이번 캐릭터도 무척 궁금하다. 하지만 벌써부터 슬픈걸... 이정효가 보여주는 아버지와 남편의 모습은 무엇일까? 오랜 시간 아픈 자식의 부모이자 의사로 살아온 사람으로서, 수많은 삶과 죽음을 본 사람으로서 다음이에게 어떤 말과 행동을 할지... 어떤 위로와 용서와 응원을 전할지. 부모를 두고 떠나야 하는 자식에게 이정효는 어떤 사람으로 남아있을까? 이정효의 다음이에 대한 사랑은 나를 포함한 많은 시청자들에게 위로가 될지도 모른다. 아, 그리고 2화에서 본 죽은 아내의 제삿상에 월남쌈을 만드는 모습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좋았다.
곽교영 / 오경화
친구가 씰룩이는 것만 봐도 다 안다는 이 친구는 어디까지 사랑하고 슬퍼할까? 한 사람과 쌓은 시간이 많은 인물을 어떻게 표현할까? 떠나보내야 하는 사랑하는 사람을 둔 인물은 어떻게 이별을 준비할까? 자신을 위해서 또 떠나는 상대를 위해서 어떤 행동을 할까? 남은 사람이 될 곽교영은 떠난 이다음을 어떻게 기억할까?
콘텐츠PD라는 설정을 보고 이 캐릭터가 어떻게 떠난 이를 기록하고 기억할지 궁금해졌다. 만약 그런 장면이 나온다면 어떤 방식일지도. 또 남겨진 사람의 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도 있는 아주 가까운 인물 중 하나라서 궁금했다. 다음이가 이마를 맞대고 깨우는 장면은 둘의 우정을 짐작할 수 있었고, 교영이의 다음이에 대한 사랑을 알 수 있게 했다. 어떤 친구가 되어 어떤 사랑을 보여줄까? 나는 남녀간의 사랑보다 이렇게 가족과 친구 간의 사랑이 더 궁금하다. 우리들의 사랑도 이렇게 깊고 애틋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드라마가 언젠가는 생기겠지? 그리고 다음이의 사랑도 듬뿍 받는 교영이도 궁금하다. 내가 다음이라면 내 친구 교영이를 무척 아끼고 사랑했을 것이다. 다음이는 교영이를 위해 무엇을 남겨줄까?
유홍 / 김은비
왜 감독이 되는 길을 선택했고, 왜 이제는 그 길을 그만두려고 하는 걸까? 그리고 어쩌다가 어떤 이유로 이 작품에 빠져들게 되는 걸까?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었던 걸까? 어떤 의미를 담고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 감독이란 무엇일까? 감독이 작품을 보는 기준은 뭘까? 어떤 일을 할까?
내가 문학적 재능이 없다는 건 진작에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감독이라던가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 유난히도 관심이 생긴다. 안 될 것을 알면서도 글을 쓰고 기웃거리고 영화를 보고 드라마를 보는 것도 그런 이유다. 좋아하니까. 어쩔 수 없다. 아무튼, 배우가 감독의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도 신선하고, 젊은 감독이란 점도 포인트다. 무엇이 작품이 되고 어떻게 그 작품을 만드는지 알고 싶다. 뭔가 진짜 감독 같은 느낌이라 반짝반짝하다.
김민석 / 장재호
생사를 자꾸만 보다보면 익숙해질까 아니면 생사에 대해 다른 생각하게 될까? 이정효는 의사이자 아버지라면, 김민석은 제 3자의 인물로 나오기 때문에 그의 시선이 궁금하다. 어쩌면 보통의 사람들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다음이의 입장도 이정효의 입장도 모두 알고 있다면, 김민석의 입장은 어떨까? 인간 김민석, 의사 김민석의 입장 말이다.
김민석에게 이다음은 무엇일까? 어떤 의미를 주는 환자일까? 단순히 스승님의 가족이 아니라, 환자 이다음이란 어떤 뜻으로 있을까? 그리고 훗날 이 사람에게 다음이 같은 환자가 찾아왔을 때 어떤 선택을 내려줄까? 어떤 자문을 해줄까? 어떤 의사의 소견을 줄까? 어떤 인간의 말을 해줄까?
한성호 / 한종훈
영화가 뭐라고 다들 그렇게 비장하게 하는지, 라고 써있는 것을 보면 투자자가 쓴 소개글은 아닌 것 같지만 어느 투자자가 한 말과 비슷한 말이었지 않았을까 싶다. 아니면 투자자들의 모습은 실제로 그러한가? 한성호에게 영화의 내용보단 그에 얽힌 이야기가 궁금한 모양인데, 왜 그에겐 그게 더 중요할까? 이게 곧 돈과 연결되니까? 아니면 호기심 충족?
캐릭터의 외형만 보면 정말 짜증나는 투자자인데(어눌한 한국말 정말 짜증나 그 안경까지도 악악), 왠지 보는 눈은 정확할 것 같다. 돈 냄새 잘 맡을 것 같은 관상. 더 짜증나. 저 머리카락 한 올도 안 내려온 앞머리 불가사리 모양으로 만들고 싶다. 안경알 중앙에만 손가락 자국 남기고 싶어. 와인 대신 포도당 주스 주고 싶다. 영화 보고 투자하라고! 내용 보면 뭐가 덧나냐? 돈이 날아가냐? 왕짜증. 왜 와인도 도 대충 마시지. 쳇... 한성호가 이 영화를 통해 생각이 변하게 되는 계기가 생기는지 궁금하다. 그렇다면 왜? 어떤 지점에서? 무엇을 깨달아서? 그리고 왜 영화에 투자를 하려고 하지? 영화가 큰 돈이 되나? 연예인한테 관심이 많나? 노는 걸 좋아해서? 영화 투자자들의 내면은 어떨까? 그들은 왜 영화에 관심을 갖는 걸까? 어떤 부분을 보고 투자를 할까? 아니 뭐 꼭 바뀌길 바라는 건 아니고... 바뀌면 좋고... 아니 뭐 말고... 아 몰라...
OST_
첫 번째 OST가 이렇게 나오면 다음 노래는 어떻다는 거지? 여름에 이런 드라마가 나오면 장마철에 헷갈리겠는걸? 이게 눈물인지 빗물인지 알 수 없을 거 아냐...!
티저와 함께 정말 예쁜 목소리가 나와서 좋다. 여름 장마철이 생각나는 목소리와 멜로디다. 배경은 이렇게 화창한데 물에 푹 잠긴 것 같아서 이 이야기가 얼마나 슬프게 다가올지 상상이 안 된다. 멜로디 전체에 깔린 규칙적인 소리가 꼭 빗물이 땅에 닿는 소리 같다. 웅덩이에 떨어지는 빗물 소리를 들어봤을 때와 비슷한 소리 같다. 그리고 비가 많이 내리면 꼭 귀가 웅웅 울린다. 사람들 소리도 차 소리도 조금 더 웅웅 물이 퍼지듯이 들린다. 이 노래는 그런 모습이 상상이 된다. 그래서 슬픔이 눅눅한 것 같다. 나의 다음 컬러링은 이 노래로.
네가 남긴 한참을 숨어 있던 글자만으로
알 수 있어 우리가 나눈 모든 밤들과 별들
조각조각 기억을 모아 맞추어 보자 어서
달빛 아래 드리운 그림자 속에 숨은 비밀
한 줄기 바람에 실려온 네 목소리가 맴도네
Your hidden words echoes in my head I can’t get any closer
네 의미가 닿을 듯 말 듯 하지만
남겨진 마음은 자꾸 날아가 버리고
이 미미한 그리움을 바람에 태우면
언젠간 한 번쯤은 네게로 앉겠지
짙어지는 노을의 온기가 힘을 실어 주네
구름들 사이로 서늘한 곳을 찾아 쉬어 가
깊어지는 마음엔 용기가 다시 차오르네
가빠지는 발걸음 너에게로 향하는 노래
네 의미가 닿을 듯 말 듯 하지만
남겨진 마음은 자꾸 날아가 버리고
이 미미한 그리움을 바람에 태우면
언젠간 한 번쯤은 네게로 앉겠지
외롭지 않겠지
언젠간 한 번쯤은 네게로 앉겠지
-가사 출처 벅스 CIFKA, MIMI
나에게 영화란?_
인생은 영화 같다던데, 지금은 그 말이 이해가 가는 때가 된 것 같다. 완벽하게 안 것은 아니어도 그 말을 들었을 때 말없이 고개를 끄덕거릴 정도는 되었다.
내가 책을 좋아했던 이유는 수많은 사람의 생각을 보며 지혜를 얻고 시야를 넓힐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말 못할 고민도 누군가는 책이라는 도구를 통해 털어놓았고 누군가는 그것을 해결하거나 지혜를 터득할 수 있도록 설명해주었다. 그래서 생각을 넓히려면 꼭 책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오로지 책만이 나를 풍요롭게 한다고 굳게 믿었다.
하지만 내가 부족한 탓인지, 아무리 몰입해서 읽어도 내가 저자와 대화를 하거나 마음을 나누는 듯한 기분은 느낄 수 없었다. 책은 나를 마치 학생처럼 그들의 말을 읽으며 내가 이해한 것과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어떠한지 판단하도록 훈련했다. 그래서 나는 학창시절 문학이 참 어려웠다. 인물의 입장이 되어 생각을 해보라는데, 나는 그것이 도통 되질 않아 내 멋대로 생각하곤 했다. 예를 들면 소나기의 보라색 꽃을 죽음이 아닌 특별함이나 신비로움이라고 생각한다던가 하는 식이다. 그래서 나는 책을 읽으며 판단하며 보는 법을 배웠고, 저자의 생각을 통해 나의 생각을 정돈하고 다듬으며 나의 길을 만들어가는 법을 배웠다. 하지만 여전히 내 안의 갈증은 사라지지 않았다. 누군가가 내게 사랑을 해보라는데, 그걸론 어림도 없을 갈증이었다. 그냥 적당히 매력적인 사람이 채울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영화가 내게 나타났다. 내가 늘 손에 꼽는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란 영화였다. 동성애자도 아닌 나는 그 영화를 보고 마음에 무언가가 뿌리 내렸음을 느꼈다. 그걸 이해할 수 없어 몇 번이고 영화를 돌려보며 무엇인지 찾으려고 했다. 내가 혹시 동성을 좋아하는지 물어도 보고, 외로움에 사무치는지도 물어봤다. 결과적으론 그 어느 것도 아니었다. 그냥 땅 깊은 곳에서 물이 샘솟았던 것이었다. 이후에도 나는 나의 샘물이 된 영화들을 만나며 샘물이 연못이 되고 강이 되고 바다가 되어가는 것을 느끼고 있다.
즉 나에게 영화와 책이란 이렇다. 책은 언어로 인간을 묘사하지만, 영화는 실제 인간이 등장해 직접 묘사한다. 책은 나를 가르치지만, 영화는 나를 깨운다. 그래서 마치 현실의 한 순간처럼 나와 타인을 같은 공간에 넣고 똑같이 느끼도록 만든다. 나는 그들과 대화를 나눌 수도 없고 그 상황에 어떤 영향도 끼칠 수 없다. 하지만 내 안의 무언가를 들추는 그들을 따라하게 만든다. 그건 분명하게도 내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영향을 끼친다. 시청각적인 방법을 통해 더욱 생생하게 느끼도록 만든다. 네 안에 이런 것들이 있었노라고 가랑비에 옷이 젖듯이 천천히 물들여준다.
그래서 책은 머리에 자리를 잡고, 영화는 마음에 자리를 잡는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화면 속 모든 것들이 내 가슴으로 들어와 섬세한 뿌리를 내리며 아래로 흘렀다. 나는 느껴본 적 없는 감정을 상상하며 정말 살아있는 것 같은 그들의 삶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시간이 지나 그들의 표정과 대사를 이해하게 되거나 그 당사자가 되었을 땐 책에서 느낀 것보다 더 깊이 다가왔다. 때론 그것을 통해 부끄러웠고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고, 뉘우치기도 미안한 감정을 느끼기도 했다. 또 설렘과 기쁨 같이 단어 하나로 표현할 수 있는 단순한 감정에서 먹물을 푼 것 같은 행복과 안개가 낀 듯한 아픔처럼 복잡한 감정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영화란 나에게 이렇다. 영화는 이미 정해진 결말을 향해 가는 제한된 인간의 삶이고, 나는 그 만들어진 인간의 삶을 통해 나를 돌아본다. 나는 때때로 그들과 같은 표정을 짓고 따라하면서 일방적인 상호작용을 하고 책에서 배우지 못한 것을 무의식 중에 배우기도 한다. 마치 아주 어릴 적 어머니와 아버지의 입모양을 보고 따라한 것처럼, 그들이 하는 행동을 따라하며 걷고 뛰며 책장을 넘겼던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좋은 작품이 나와야 한다. 좋은 작품이 곧 부모처럼 나를 풍요롭게 성장하도록 만든다.
다음이는 누군가가 자신을 기억해주길 바라서 영화를 찍고 싶다고 했다. 제하는 어머니가 남긴 하얀 사랑을 다시 해석하며 무언가를 이해하려고 한다. 누군가는 또 한 번의 성공을 위해, 누군가는 돈을 위해 영화 작업에 참여한다. 나는 내가 살아있는 동안 나를 보고 싶어서 영화를 본다. 나의 표정을 보고 나의 눈빛을 보고 먼지 덮인 내 마음을 보기 위해 영화를 본다. 모든 것을 머리와 가슴으로 느끼면서 나를 수채화처럼 물들이기 위해서 영화를 본다. 그래서 나는 이 드라마를 추천한다. 이런 드라마가 나왔다는 사실이 좋고, 배우를 포함한 여러 사람들이 이 드라마를 선택한 것이 무척 기쁘다. 이 작품이 끝날 때 쯤엔 내가 어떤 감정을 배우게 될지, 그 감정은 나를 어떻게 다듬을지, 사람들과 세상을 어떻게 더 사랑할지, 그리고 나를 어떻게 더 바라보게 될지 궁금하다. 그리고 이런 드라마가 내 생일 즈음에 나타나서 참 고맙다.
그러니 나는 다음 여름에도 또 다음이를 보러갈 것 같다. 초록빛의 뜨거운 여름이 빗물에 내 옷을 적셔가는 이 사람들의 이야기를 또 보러갈 것 같다. 다음이가 떠나기 전 나에게 남긴 것을 다시 보러 갈 것 같다. 여름은 매년 돌아오고 그래서 다음 여름도 다음 우리영화도 또 돌아올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