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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릿테이블 Jul 25. 2024

한여름밤의 홈파티 레시피

숙박손님과 홈파티

나의 오래된 사촌언니는 우리 집 단골 숙박 손님이다.

그녀는 대학시절 나에게 사랑에 대해, 남자에 대해, 인생에 대해 끊임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서슴없이 말해주었고 나는 그 이야기를 3인칭 관찰자 시점에서 듣곤 했다.


그녀의 사랑은 돌고 돌아 결국 가슴속에 가장 크게 남은 남자와 행복하게 알콩달콩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간다. 때론 모든 조건을 버리고 오직 사랑 하나만을 선택한 그녀가 부럽기도 하고 대단하기도 하다.


그런 그녀가 사랑에 지칠 때 가끔 우리 집 문을 두드리면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그녀를 응원한다.

그녀는 고독하지 않은 미식가 정도는 되는 것 같다. 리액션이 좋지만 본인 입맛이 아닌 음식에는 손을 대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본인 입맛에 딱 맞는 음식을 만나면 아주 천천히 아껴먹는 버릇이 있다.

미니 단호박 가격이 저렴해지면 한여름이 왔음을 실감한다. 단호박으로 무엇을 만들까?

안목의 정욕이 있는 그녀이기에 뭔가 조금 더 근사한 메뉴를 만들고 싶어졌다. 그녀는 이런 나의 노력을 기꺼이 칭찬해 줄 따듯한 마음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래, 보여주겠어! 난 그녀가 오면 미슐랭을 꿈꾸는 상상의 요리사가 되곤 한다.

그녀를 위한 여름날,

홈파티의 첫 번째 메뉴는 단호박 크로켓이다.


단호박을 찜기에 찐 후 모차렐라 치즈를 섞어 부침가루-달걀-빵가루를 묻혀 약불에서 살짝 튀겨낸 요리이다.

함께 곁들인 소스는 마요네즈 대신 캐슈넛으로 만든 타르타르 소스이며 데코는 레몬밤으로 포인트를 준다.

함께 곁들인 사이드 메뉴는  골드 키위, 파프리카, 블랙 올리브에 레몬즙과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를 넣어 느끼함을 잡아주었다.

예상대로 그녀는 단호박의 근사한 변신을 알아봐 주었고 우리는 느긋하게 음식을 즐겼다.

홈파티의 두 번째 메뉴는

느끼함을 잡아 줄 시원한 냉면으로 결정했다.

시판용 육수를 이용했지만 냉면 면을 한가닥씩 떼어내는 귀찮은 작업과 토핑으로 곁들인 돼지불고기는 결코 간편한 레시피가 될 수 없다.

깊어가는 여름밤 느릿한 테이블 위로

음악이 흐르고 추억의 얘기가 돋아난다.

늘 같은 주제와 레퍼토리이지만 알면서도

다시 들어주는 시간들이 어쩌면 가지 못할

청춘에 대한 짙은 안부가 아닐지 생각해 본다.

그녀는 늘 청춘을 이야기하는 낭만이다.

다음 날,

그녀는 꽃게를 좋아한다고 했다.

그녀를 알고 지낸 지 많은 시간을 흘렀음에도

처음으로 알았던 사실이었다.

우리는 때론 누군가와 오랜 시간을 보내지만 상대방이 어떤 음식을 구체적으로 좋아하는지는 모르고 흘러 보내는 시간들이 많았음을 느꼈다.

한여름의 텃밭은 그야말로 모기 지옥이다.

그 지옥 텃밭에서 따온 토마토, 오이, 비타민 고추로 텃밭 한식 밥상을 차려주었다.

끝날 줄 모르는 여름날의 파티는 긴 시간을 거쳐 완성되어 간다.

좋았다면 추억이고 나빴다면 경험이기를 바라는 주인장은 오늘도 허투루 만들지 소소한 음식으로

나만의 느릿한 시간을 추억으로 쌓아간다.


여름날의 홈파티는 계속되리라, 추억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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