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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유 Oct 12. 2022

지리산 천왕봉을 오르다 1

한국인의 기상이 발원되는 그곳, 지리산 천왕봉을 오른 것이 분명 10번은 넘은 것 같다.

중학생들과 함께하는 학교에서는 언제나 크고 작은 일들이 벌어진다. 특히나 기숙학교에다 전인교육을 꿈꾸며,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이 핸드폰을 제출하는 것이니 3년 내내 폭풍전야의 바람 같은 녀석들의 일탈은 늘 일어나는 일상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러나 그러한 일들을 그냥 사건 사고로 바라보고 해결하는데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배움이 일어나는 방식으로 풀어갈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것이 교사의 역할이라고 나는 믿는다.

 올해는 그곳을 오르며 이른 가을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던 너무나 아름다운 시간이어서 유독 기억에 남는다.

오랜만에 다 같이 영화를 보고 싶었던 아이들은 결국 창문을 넘어 자물쇠를 따고 핸드폰을 손에 넣었다.  머릿속이 '핫스팟'으로 가득했던 중딩들에게 '핸드폰' 그 이상의 어떤 것도 생각나지 않은 것이다. 선생님에게 도움을 요청했더라면 분명 훨씬 더 편한 방법으로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아니, 어쩌면 멋있게 창문을 뛰어넘는 박력을 보여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을지도 모른다. 그다음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면서도 말이다.

 굳이 ‘천왕봉’까지 안 갈 수도 있었다. 잘못에 대한 ‘벌칙’이 아니다.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 활동이다. 공동체 규칙 지키기 관련 캠페인, 풀 뽑기, 쓰레기 줍기 그리고 똥 푸기 까지 이미 다양한 사례가 있다. 물론 천왕봉을 오른 적도 있다. 연속 3회 정도면 딱 좋다. 하지만 그건 아이들의 문제가 아니라 다시 교사의 문제가 된다. 돌도 씹어 삼킬 10대 아이들은 천왕봉까지 축구복에 슬리퍼 신고도 달려갈 수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나를 모시고 가는 것이 너희들 미션이라고도 한다.

 이번에는 유독 뭔가 마음이 짠 했다. 몰폰(몰래 핸드폰)을 하기 위한 얌체 같은 이유가 아니라, 다 같이 영화를 보기 위해서라니 뭔가 잘못한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늘 친구 같은, 아니 친구보다 더 만만한 존재라 생각했던 선생님들에게 왜 의논하지 못했을까? 그렇다면 어떻게 저 아이들에게 너희들 곁에는 언제 어느 때든 믿고 기댈 수 있는 든든한 어른들이 있다는 걸 말해줄 수 있을까? 이 멋진 가을날 지리산의 영험한 기운이라면 이 아이들의 마음을 녹일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라야 한다. 어느 한 선생님이 아니라, 학교의 모든 선생님을 모시고 가자. 선생님들 사이사이에 한 놈, 한 놈 끼워 넣고 천천히 그리고 찐하게 지금 이 시간이, 이 힘듦이, 이 사랑이 온몸에 배어들도록 하자.

물론 현실은 달랐다.

 한 선생님은 산을 오르자마자 산 멀미를 하며 화장실만 찾다가 결국 정상에 오르지 못하고 하산했다. 마음은 이미 저 높은 돌계단을 다 올랐는데 왜 몸은 아직도 이 아래에 걸터져 있는지, 도대체 들어 올려지지 않는 허벅지를 움직이느라 안간힘을 쓰는 비루한 몸뚱이의 소유자를 기다리지 못하고 결국 앞으로 먼저 달아나 버린 사람도 있었다. 땀으로 흠뻑 젖은 티셔츠를 세 번이나 갈아입은 아이도 내려갈 때는 그저 중력의 힘에 온 몸을 맡긴 채 내달리고 싶었지만 비루한 교사의 부르짖음에 차마 달리지 못하고 엉거주춤 가다 멈추다를 반복했다. 산에서 들려주는 한 아이의 이야기는 꼭 산신령에게 소원을 말하는 나무꾼의 마음 같아서 금도끼 하나쯤 던져주고 싶을 만큼 마음이 여물어 가기도 했다.

 암벽 등반을 해야 할 때는 서로 손 잡아 주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리고 싶은 마음에 마음속 비명소리가 나도 모르게 밖으로 튀어나와 머쓱해질 때면 잘하고 있다고, 결국 우리는 해 낼 거라고 서로 격려해 주는 그런 아름다운 장면은... 역시 영화 속에서나 나오는 걸까? 우린 각자 자기 몸뚱아리 하나 건사하기도 힘들었다. 아니, 각자 잘 걸어주는 것만으로 충분히 다행스럽고 감사했다.

 몇 가지 학교 철학 중 으뜸으로 꼽는 것이 ‘자유’다. 그러한 배움의 과정 속에 있는 자들답게 우리는 각자 자유롭게 자신의 삶의 방식대로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앞으로 나아갔다.

앞에 가든 뒤에 가든 어차피 우리는 한국인의 기상이 발원된 지리산 속에 함께 있었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하늘은 더 높고 파래졌고, 빨갛고 노란 잎들 속에서 우리 아이들은 더 맑아졌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우리는 각자 자신의 행위에, 자신의 마음에 책임을 다했다.

왠지 올 가을엔 좋은 일이 많이 일어날 것 같다.    


★ 제목을 적고 나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숫자 '1'을 붙였다.

     그래, 난 곧 다시 천왕봉을 오를것이다. 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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