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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유 Oct 22. 2022

친구가 생겼다 1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보낸 나는 동물을 많이... 무서워한다. 왜 그런지 이유를 아무리 생각해봐도 모르겠다. 우리 집에도 분명 개와 고양이를 두어 마리씩 키웠던 것 같은데 말이다. 도시로 이사를 와서 고등학교 다닐 즈음에 옆집에 사는 아주 작은 강아지 한 마리가 우연히 우리 집으로 들어온 적이 있다. 열린 방문 너머로 뽀얀 털이 보이는 순간 내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높은음으로 소리를 지르며 책상 위로 뛰어 올라가던 나를 보던 온 식구들의 넋 나간 모습이 아직도 뚜렷이 기억에 남아있다.

그 시절, 애견? 반려견? 그런 말조차 없었던 그 시절, 시골 동네에는 집집마다 개 한 마리, 고양이 한 마리씩은 키우고 있어서 어른들은 일터로, 아이들은 학교로 가고 난 텅 빈 한낮의 고요한 마을은 그들이 점령했었다. 골목을 돌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잠들어 있는 개 한 마리, 어슬렁어슬렁 배회하는 고양이 한 마리는 이곳이  아주 평화롭고 행복한 마을임을 말해 주고 있는 듯했다. 그렇게 개와 고양이는 우리와 같이 살아온 가족 같은 존재였다. 물론 그들은 목줄도 하지 않았고, 주인에게 잘 훈련된 똑똑한 놈들은 한 놈도 없었다. 그 놈들은 무엇이든 먹고, 어디서든 쌌다. 시베리안 허스키? 골든 리트리버? 몰티즈? 치와와? 그때도 아마 이런 놈들이 어딘가에서는 살고 있었겠지? 하지만 분명 내가 살던 그런 시골 마을은 아니었다. 족보 있는 놈들이라 하면 진돗개나 불독 정도였을 것이다. 사실 진돗개는 문재인 대통령이 키우기도 하셨고 워낙 유명하니 잘 알지만 불독이 족보 있는 종인지 조차 확실치 않은 나다. 그만큼 동물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고 무식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그런 나에게 별난 일이 생겼다.

면소재지에서 차로 10여분 이상을 더 들어가야 하는, 길이 잘 포장되어있어 그리 깊은 산속은 아닌 듯 하지만 그래도 초행길인 사람들은 가도 가도 끝이 없더라는, 혹시 나를 어디로 유인해서 어찌하려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스멀스멀 올라올 즈음에야 만나게 되는 그곳에 나의 직장인 학교가 자리하고 있다. 매일 출퇴근하는 길은 늘 변함없는 산과 들의 연속이다. 처음 산청에 왔을 때, 5월의 푸르름과 바스락거리는 바람소리, 촉촉한 들내음에 한껏 반했던 길이기도 하다.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 고른 노래를 들으며 다니는 출퇴근 길은 어쩌면 유일한 나만의 시간, 나만의 공간이어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파란 하늘 아래서 살랑살랑 춤을 추는 나무들을 바라보며 덩달아 어깨춤을 추고, 끝없이 펼쳐진 들녘에서 뿜어져 나오는 노랑색, 초록색 향기에 코를 킁킁 대기도 한다. 주변 풍경을 온 마음으로 들였다 다시 내보내기를 반복하다 보면 지루할 틈 없이 시간이 흘러간다. 그렇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평화로운 나의 하루가 이 길에서 시작되고, 이 길에서 끝이 난다.  

 그러던 22년 봄의 어느 날이었다.

편도 1차로의 지방도를 달리다 오른쪽으로 빠지면 왼쪽으로는 넉넉한 들판이 펼쳐지고 오른쪽으로는 농협 탈곡장을 지나 작은 축사가 나온다. 그 축사를 지날 때마다 나를 반겨주는 커다란 개 한 마리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도로와 가장 가까운 축사 모서리에 목줄의 끝이 매어져 있는데 내 차가 보이기 시작하면 우선 제자리를 한 바퀴 돌고는 목줄이 팽팽해질 때까지 뛰쳐나와 몇 번이고 점프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는 쌩하니 달려가 버리는 내 차 꽁무니에 대고 몇 번이고 짖어 댄다.

‘목줄이 저렇게까지 당겨지면 목이 아플 텐데... 왜 저리 뛰는 걸까?’

궁금하기도 또 짠하기도 하지만, 나는 그저 창문 너머로 바라볼 뿐이다. 두 아이와 함께 등교 준비를 하고 근처 초등학교에 내려주고 출근하려면 아침 시간은 늘 1분 1초를 소중히 해야 하는 법이니까. 그리고 내가 차 안에 있으니 이렇게 멀리서라도 바라보며 짠한 생각이라도 가지지 만약 내가 걸어서 이곳을 가는 상황이라면 한참 멀리서부터 개 털 하나라도 날아올까 공포에 질려 만일의 공격을 대비할 무기를 준비하느라 몸과 마음이 바빠지며 심장은 쿵쾅거려 그놈의 목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차의 안과 밖에서 우리는 매일 두 번씩 인사를 했다. 어느새 정이 들었는지 가끔 검은색 커다란 그의 집이 비어있을 때는 혹시 무슨 일이 있나 걱정되기까지 했다. 다음날 다시 반갑게 점핑 인사를 해 주는 모습을 보아야 안심을 하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런데 문득 궁금해졌다.

저 놈이 나에게만 저렇게 미친 듯이 날뛰며 인사하는 걸까? 아니면 모든 차들이 지날 때마다 저러는 걸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런 궁금증이 생겼다는 것 자체가 좀 웃기긴 하다. 축사를 지키는 길가의 개가 누군가 지나갈 때마다 반응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 일지도 모른다. 유독 내 차에만 반응할 리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다른 차들에게도 저렇게 환하게 인사해 준다면 왠지 서운 할 것 같다. 나 왠지 사랑에 빠진 것 같은데...?

결국 나는 같은 길을 출퇴근하는 동료에게 물어보았다.

“혹시 샘이 지나갈 때도 매번 그렇게 날뛰나요? ”

“어... 잘 모르겠는데요. 그랬나? 내일 한번 자세히 봐야겠네요.”

괜히 무안해졌다. 잘 모르는 게 당연하지, 차가 지나가는데 개가 반응을 한다는 것에 이렇게 반응을 하는 내가 이상한 거겠지? 심지어 다른 사람에게 넌 어떠냐고 물어보는 내가 조금 우습게 느껴져서 그냥 대수롭지 않은 듯 “아... 그렇죠.”하고 얼버무리고 화제를 돌려버렸다.

내가 그렇게 무서워하던 개에 대한 나의 집착 같은 관심, 나 자신이 너무도 낯설게 느껴졌다.

어쨌든 나는 그 길을 하루에 두 번씩 매일 달렸고, 그렇게 우리의 만남은 이어졌다. 어느 날인가 나는 그놈 옆을 지나면서 창문을 내리고 그놈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안녕” 하고 인사도 했던 것 같다.

저 놈도 오랫동안 인간과 생활을 했으니 주 5일제는 몸에 익어있으리라. 그러니 주말에 우리가 만나지 못하는 건 이해하겠지만, 학교에서 숙직을 하거나, 특별한 일로 하루를 건너뛰고 그 길을 지날 때는 어제 나를 기다리지 않았을까 미안한 마음에 창문을 열고 더 천천히 달리기도 했다. 가끔은 그놈이 없을 때도 있었다. 주인이 어떤 일로 어디론가 데려갔겠지 싶으면서도 괜히 아쉽다. 궁금하다.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지.

그렇게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한 마디도 나눈 적 없고, 한 번도 무언가를 함께 한 적은 없지만 우리는 몇 달간 매일 같은 시간에 눈을 맞추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래, 오랜만에 나에게 새로운 친구가 생긴 것이다.

나를 보고 저렇게 미친 듯이 날뛰며 좋아해 주는데 그것이 친구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점점 나이가 들면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기회가 줄기도 하고, 또 만난다 한들 서로 친구가 되기는 참 쉽지 않은 나다. 그렇기에 더더욱 내가 좋아하는 그 들길에서 만난 새로운 친구는 나에게 자그마한 기쁨을 주었다.

친구 덕분에 나의 출퇴근 길은 한층 더 풍요로워졌다.         

안녕,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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