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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유 May 08. 2023

필리핀 세달살이 2

행복한 Filipino

2023. 05. 04     

산호초가 너무나 아름다웠던 바다로 기억에 남아있는 그곳, Dauin.

그곳에서 이웃집 아기의 두돌 생일파티를 한단다. 영광스럽게도 초대를 받긴 했는데...

가도 되는걸까? 간다면 뭘 준비해야하지? 음식? 선물? 돈?

가보고 싶다는 호기심과 함께 어떻게 해야할지 머리가 복잡해졌다.      

선생님 몇분에게 자문을 구해 보았더니 대답이 한결같다.

“그냥 오시면 됩니다. 함께 해 주시는 것만으로 감사하지요.”

판에 박힌 말이다. 과연 그 말 이면에 어떤 의미가 내포되어 있을까 의심할 수밖에 없는.

결국 자그마한 선물 몇 개를 챙겨 들고 가기로 했다. 나의 ‘의심’보다 ‘호기심’이 더 강하게 올라온 것이다.     

아침먹고 바로 출발했는데 이미 바닷가 작은 cottage는 알록달록 꽃으로 치장을 끝냈고, 그 옆에선 돼지 한 마리가 조용히 익어가고 있었다. (필리핀 전통음식 ‘레촌’이다) 중앙 테이블에 음식이 하나씩 올라온다. 갈비, 치킨, 튀김, 샐러드... 생각보다 훨씬 더 푸짐한 음식에 깜짝 놀랐다. 분주한 그들 사이에서 모든게 낯선 우리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Why don’t you swim?”

아니~ 수영하고 막~ 그냥 우리끼리 놀면 되는거야? 사실 하루종일 바닷가에서 어떤 파티가 열리는지 몰라, 작은 선물 꾸러미와 함께 수영복, 스노클링 등이 담긴 커다란 가방에 구명조끼까지 슬쩍 챙겨오긴 왔다. 이제야보니 다른 사람들은 이미 수영복을 입고 왔고, 어린 아기들은 이미 엄마손을 잡고 첨벙거리고 있다. 커다란 나무 아래에서 태양을 피하고는 있었지만 너무 더워서 더 이상 다른 걸 생각할 겨를도 없다. 얼른 옷을 갈아입고 바다로 뛰어갔다. 뛰어가야만 한다. 태양을 피하지 못한 모래는 너무 뜨거워 단 몇 초만에도 화상을 입을 정도였기에.

그래서 바다가 더 시원했을지도 모른다.


엄마 손을 잡은 작은 아이들, 까르르 넘치는 웃음을 주체하기 힘들어하는 큰 아이들, 더위에 지친 영혼에 새로운 생명을 부여하는 듯 진지하게 수영하는 두 세마리의 개들 그리고 파도에 몸을 맡기고 뒤뚱뒤뚱 그 위용을 자랑하는 커다란 요트까지. 완벽한 그림 속으로 우리도 입수한다. 허벅지, 배, 가슴, 머리까지 차례로 또다른 세상으로 들어간다. 바다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바다에서 바라보는 하늘은, 세상은 또 다르다. 바다에 둥둥 떠 있는 내가 한 마리 물고기인지, 한 마리 새인지, 하얀 조각구름인지 잘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이곳은 다른 차원의 세상이라는 것. 이곳의 나는 또 다른 ‘나’라는 것밖에.

빼곡한 건물들, 그 사이를 질주하는 차들, 또 그 사이를 헤매이는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넓게 펼쳐진 산과 들, 그 속에 보일 듯 말 듯 끼어 있는 나, 지금까지의 그 ‘나’는 절대 느낄 수 없었던 광대한 자유를 느낄 수 있있다. Dauin 바다에서.

끝없이 펼쳐진 바다 그리고 그 바다와 맞닿은 하늘은 더 이상 구분되지 않는다. 건물과 차와 사람과 산과 들이 하나가 된 것이다. 더이상 ‘나’도 없고 ‘너’도 없고 그저 광활할 뿐이다.

호흡이 편안해 지면서 나의 온 몸과 마음에 평화가 찾아왔다. 행복한 순간이다.    

팔뚝만한 물고기가 내 다리 아래를 헤엄쳐 간다. 그 놈을 따라 가다 아름다운 산호초 군락지를 만났다. 흑백의 세상이 갑자기 컬러풀해졌다. 쨍한 노란색, 파란색, 오렌지색 물기기가 산호초 사이를 술래잡기하듯 유영한다. 마치 내가 그 한 마리 물고기가 된 듯, 왕자님을 쫒아가는 인어공주가 된 듯 설레고 설렌다.     

파도에 몸을 맡기고 떠다니다 보니 너무 멀리 와 버렸다. 갑자기 생일 파티 생각이 나서 재빨리 파도를 거슬러 올라가려 몸을 버둥거려 보았지만 아무리 발버둥 쳐도 일직선 해변에 있던 하얀 면사포를 쓴 의자 무리에서 멀어지지 않는다. 겨우 몇 미터 갔나 싶어 잠시 몸을 쉬면 다시 제자리, 바보같다. 우습다. 참 재미있다.     

“선생님, 오늘이 생일파티 같지는 않아요. 그냥 파티죠.”

우리는 남의 생일파티에 와서 웃통 까고 수영하지는 않는다는 그 아이의 말에 웃음이 났다.

음악에 맞춰 춤을 춘다. 꽃무늬 치마가 꼭 여자들만 입는 것은 아니다. 음악에 파도에 바람에 몸을 맡기고픈 사람이면 누구나 OK다. 발리볼을 하던 공도 수영하러 바다에 들어가고, 그늘을 만들어주던 커다란 나무에 복주머니를 매달아 누군가에게 복을 터뜨려 주기도 한다. 우리 아이들을 배려한 Korean-Filipino 줄다리기에선 누구도 이기지 못했지만 우리의 웃음소리는 저 바다 멀리까지 울려퍼졌다. 시작하고 곧바로 팽팽하던 줄이 툭 하고 끊어져버렸고 우리는 동시에 모래위에 벌러덩 누워버렸으니까.     

주인공 한 사람을 위한 파티가 아니다. 함께 살아가는 모든 이웃들이 함께 자유롭게 즐기는 생일 파티다. 한 사람의 행복을 위해서는 함께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행복이 중요하다는 의미가 아닐까.

늘 나를 위한 생일파티가 너무나 부담스러워 제발 조용히 지나가기를 바라는 나같은 사람에게조차 딱 좋은 파티다.    


Filipino의 판에 박힌 말 이면에는 어떤 다른 의미도 없었다. 말 그대로 함께 즐기고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내자는 것밖에.   


나, 행복한 Filipino들과 좀 맞나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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