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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유 May 15. 2023

필리핀 세달살이 3

 Sunday Market in Valencia

2023년 5월 13일

   

이곳 Valencia에 있는 커다란 공원에서는 매주 일요일이면 Sunday market이 열린다.

7년 전에는 어느 마을의 벼룩시장같이 아담했던 장터가 그새 규모가 10배는 더 커진것 같다.

지난 2~3년간의 Pandemic으로 누구보다 아픈 시절을 보냈을 이들에게 그 시기에도 오히려 장이 더 북적거렸다고 생각하니 천만다행이다 싶다. Negros섬 각지 뿐 아니라, 이웃 세부섬에서도 seller들이 온다고 하니 꽤 이름이 나긴 한 모양이다.

공원 아래쪽 길가에는 우까이우까이라 불리는 구제 옷가게들이 일렬로 늘어서 있고, 한 계단 높은 막 공원이 펼쳐지는 곳에는 망고, 바나나, 꿀, 브로콜리 이외에 수많은 낯선 과일과 채소들이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공원의 중심부를 향하면서 세계 각국의 음식들과 필리핀 전통 음식 부스들이 여기저기 자유롭게 흩뿌려져 있다. 마닐라 공항에서 국내선으로 한번 더 들어와야하는 작은 마을에서 세계 각국의 사람들과 그들의 음식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신기하다. 나 또한 지구촌의 어느 작은 나라에서 이곳까지 찾아왔으면서 말이다.     

오늘은 일본 타코야키와 멕시고 퀘사디아 그리고 필리핀식 브루잉 커피 한잔으로 나도 그들 속으로 들어갔다. 필리핀의 작은 공원, 그곳의 커다란 나무 아래서 세계 각국의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음식을 만나고 있는 이 순간이 너무나 소중하게 다가온다.

lala쌤의 온 가족이 전날 저녁부터 준비하고 밤새 장작불에 사르르 구웠다는 레촌맛은 정말이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우리의 부드러운 수육과 비슷하지만 한번더 오븐에 구운듯한 깊은 고소함이 있다.

고기를 사랑하는 남학생들에게 돈을 꼭 쥐어주며 레촌 먹고 오랬더니 진짜 맛있더라고 자랑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공짜로 먹었으니 정말 맛있기는 했을 것이다. 어린 중학생들에게 돈을 받기가 좀 그랬는지 지난번에 이어 오늘도 그 귀한 것을 그냥 주셨다. 아이들은 얼씨구 좋다하고, 나만 미안한 마음에 타코야키와 퀘사디아를 전해 드리고서야 마음이 조금 가벼워진다.    

지리산 천왕봉쯤 올라야 이마에 송글송글 땀이 맺히는 내가 나온지 이삼십분만에 이미 온 얼굴이 땀범벅이다. 정말 덥고, 지치는데... 참 맛있고, 참 시원하고, 참으로 완벽하다.      

이렇게 자유롭고 풍요로운 곳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저 그 속을 걷고 있는 것만으로도, 그저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너무 뿌듯해 가슴이 한껏 충만해졌다.

아무도 나를 바라보지 않는다. 나 또한 아무도 바라볼 필요가 없다. 그저 ‘나’로 있으면 된다.

이것이 ‘여행’이 ‘해외에서의 삶’이 주는 매력이다.

거리낄 것이 없다. 그저 하고싶은대로, 본능대로 하면된다.


자 이제 난 뭘 하고싶은가? 온 몸이 땀으로 젖자 오히려 더 흠뻑 땀에 젖고 싶다.

발걸음을 재촉해 숙소로 갔다. 얼른 채비를 하고 나와 마을 한 바퀴 신나게 뛰었다.

코끼리같은 소도 만나고, 고양이같은 개도, 천사같은 아기도, 아기같은 할어버지도 만났다.

그저 크다고하기에는 너무나 부족한, 하늘같은 나무 아래에서는 뛰었다기 보다... 그래, 날았다는 표현이 맞겠다. 분명 심장이 쿵쾅거리지도 않았고, 발바닥이 땅에 닿는 느낌이 너무나 가볍고 부드러웠으니 말이다.     

온몸에서 비오듯 땀이 흘러내린다.

지난시절의 나의 과오가 한점이라도 씻겨나가는 듯이 마음이 가벼워진다.

흠뻑 빠지고 싶었다.

한발만 걸쳐놓고 마치 푹 빠진 것처럼 보이긴 싫었다.

우선 내가 젖어들어야한다. 그 무엇에.

오늘은 필리핀의 아름다운 장터와 사랑에 빠져

결국 ‘나’ 자신에게 빠질 수 있었다.     

새파란 하늘에서 갑자기 비가 쏟아진다.

그럴수 있어. 여긴 필리핀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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